동경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55628603
내가 생각하던 마루노우치 빌딩―속칭 '마루비루'―은 적어도 이 '마루비루'의 네 갑절은 되는 굉장한 것이었다. 뉴욕 브로드웨이에 가서도 나는 똑같은 환멸을 당할는지―어쨌든 '이 도시는 몹시 가솔린 내가 나는구나!'가 동경의 첫인상이었다.
우리 같이 폐가 칠칠치 못한 인간은 우선 이 도시에 살 자격이 없다. 입을 다물어도 벌려도 척 가솔린 내가 침투되어 버렸으니 무슨 음식이고 간에 얼마간의 가솔린 맛을 면할 수 없다. 그러면 동경 시민의 체취는 자동차와 비슷해 가리로다.
이 '마루노우치'라는 빌딩 동리에는 빌딩 외에 주민이 없다. 자동차가 구두 노릇을 한다. 도보하는
사람이라고는 세기말과 현대 자본주의를 비예(脾睨)하는 거룩한 철학인, 그 외에는 하다못해
자동차라도 신고 드나든다.
그런데 내가 어림없이 이 동리를 5분 동안이나 걸었다. 그러면 나도 현명하게 '택시'를 잡아타는 수
밖에―
나는 택시 속에서 이십세기라는 제목을 연구했다. 창밖은 지금 궁성(宮城) 호리[1] 곁. 무수한 자동차가 영영(營營)히 이십세기를 유지하느라고 야단들이다. 십구세기 쉬적지근한 내음새가 썩 많이 나는 내 도덕성은 어째서 저렇게 자동차가 많은가를 이해할 수 없으니까 결국은 대단히 점잖은 것이렷다.
신주쿠(新宿)는 신주쿠다운 성격이 있다. 박빙을 밟는 듯한 사치―우리는 프랑스 야시키[2]에서 미리 우유를 섞어 가져온 커피를 한잔 먹고 그리고 십 전씩을 치를 때 어쩐지 구 전 오 리보다 오 리가 더 많은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에루테루 ERUTERU'[3]―동경 시민은 불란서를 HURANSU라고 쓴다―는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연애를 한 사람의 이름이라고 나는 기억하는데 '에루테루'는 조금도 슬프지
않다. 신주쿠―귀화(鬼火) 같은 이 번영 삼정목(三丁目)―저편에는 판장(板墻)과 팔리지 않는
지대(地垈)와 오줌 누지 말라는 게시가 있고 또 집들도 물론 있겠지요.
C군은 우선 졸려 죽겠다는 나를 치쿠지(築地) 소극장으로 안내한다. 극장은 지금 놀고 있다. 가지가지 포스터를 붙인 이 일본 신극운동의 본거지가 내 눈에는 서투른 설계의 끽다점 같았다. 그러나
서푼짜리 영화는 놓치는 한이 있어도 이 소극장만은 때때로 참관하였으니 나도 연극 애호가 중으로는 고급이다. 인생보다는 '연극이 재미있다.'는 C군과 반대로 H군은 회의파다.
아파트의 H군의 방이 겨울에는 16원, 여름에는 14원, 춘추로 15원, 이렇게 산비둘기처럼 변하는
회계에 대하여 그는 회의와 조소가 크고 깊다. 나는 건망증이 좀 심하므로 그렇게 계절을 따라 재주를 부리지 않는 방을 원하였더니 시골사람으로 이렇게 먼 데를 혼자 찾아온 것을 보니 당신은 역시
재주가 많은 사람이라고 조추 양이 나를 위로한다. 나는 그의 코 왼편 언덕에 걸린 사마귀가 역시 당신의 행복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위로해 주고 나서 후지 산을 한번 똑똑히 보았으면 원이 없겠다고 부언해 두었다.
이튿날 아침 일곱시에 지진이 있었다. 나는 들창을 열고 흔들리는 대동경을 내어다보니까 빛이
노랗다. 그 저편 잘 개인 하늘 소꿉장난 과자같이 가련한 후지 산이 반백의 머리를 내어놓은 것을
보라고 조추 양이 나를 격려했다.
긴자(銀座)는 한개 그냥 허영독본(虛榮讀本)이다. 여기를 걷지 않으면 투표권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 여자들이 새 구두를 사면 자동차를 타기 전에 먼저 긴자의 보도를 디디고 와야 한다.
낮의 긴자는 밤의 긴자를 위한 해골이기 때문에 적잖이 추하다. '살롱 하루' 굽이치는 네온사인을
구성하는 부지깽이 같은 철골들의 얼크러진 모양은 밤새고 난 여급의 퍼머넌트 웨이브처럼 남루하다. 그러나 경시청에서 '길바닥에 침을 뱉지 말라'고 광고판을 써 늘어놓았으므로 나는 침을 뱉을 수는
없다.
긴자 팔정목이 내 측량에 의하면 두 자가웃쯤 될는지! 왜? 적염난발(赤染亂髮)의 모던 영양(令孃) 한 분을 30분 동안에 두 번 반이나 만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영양은 지금 영양 하루 중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소화하시려 나오신 모양인데 나의 건조무미한 이 프롬나드는 일종 반추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교바시(京橋) 곁 지하 공동변소에서 간단한 배설을 하면서 동경 갔다 왔다고 그렇게나 자랑을
하던 여러 친구들의 이름을 한번 암송해 보았다.
시와스(走師)―섣달 대목이란 뜻이리라. 긴자 거리 모퉁이 모퉁이의 구세군 사회 냄비가 보병총처럼 걸려 있다. 1전, 1전만 있으면 가스로 밥 한 냄비를 끓일 수 있다. 이렇게 귀중한 1전을 이 사회 냄비에 던질 수는 없다. 고맙다는 소리는 1전어치 와사만큼 우리 인생을 비익(裨益)하지 않을 뿐 아니라
때로는 신선한 산책을 불쾌하게 하는 수도 있으니 보이와 걸이 자선 쪽박을 백안시하는 것도 또한
무도(無道)가 아니리라. 묘령의 낭자 구세군, 얼굴에 여드름이 좀 난 것이 흠이지만 청춘다운 매력이 횡일(橫溢)하니 '폐경기 이후에 입영(入營)하여서도 그리 늦지는 않을걸요.' 하고 간곡히 그의 전향을 권설(勸說)하고도 싶었다.
미츠코시(三越), 마츠자카야(松坂屋), 이토야(伊東屋), 시로키야(白木屋), 마츠야(松屋)[5] 이 7층 집들이 요새는 밤에 자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속에 들어가면 안 된다.
왜? 속은 칠층이 아니요 한 층인 데다가 산적한 상품과 무성한 숍걸 때문에 길을 잃어버리기 쉽다.
특가품 격안품(格安品) 할인품 어느 것을 고를까. 그러나저러나 이 술어들은 자전에도 없다. 그러면
특가 격안 할인품보다도 더 싼 것은 없다. 과연 보석 등속 모피 등속에는 눅거리가 없으니 눅거리를 업수이 여기는 이 종류 고객의 심리를 이해하옵시는 중형(重形)들의 슬로건 실로 약여(躍如)하도다.
밤이 왔으니 관사(冠詞) 없는 그냥 '긴자'가 출현이다. '코롬방'의 차, 기노쿠니야(紀伊國屋)의 책은
여기 사람들의 교양이다. 그러나 더 점잖게 '브라질'에 들러서 스트레이트를 한잔 마신다. 차를 나르는 색시들이 모두 똑같이 단풍무늬 옷을 입었기 때문에 내 눈에는 좀 성병(性病) 모형 같아서 안됐다.
'브라질'에서는 석탄 대신 커피를 연료로 기차를 운전한다는데 나는 이렇게 진한 석탄을 암만
삼켜보아도 정열은 불붙어 오르지 않는다.
애드벌룬이 착륙한 뒤의 긴자 하늘에는 신의 사려에 의하여 별도 반짝이련만 이미 이 카인의
말예(末裔)들은 별을 잊어버린 지도 오래다. 노아의 홍수보다도 독가스를 더 무서워하라고 교육받은 여기 시민들은 솔직하게도 산보 귀가의 길을 지하철로 함께 하기도 한다. 이태백(李太白)이 놀던 달아! 너도 차라리 십구세기와 함께 운명하여 버렸었던들 작히나 좋았을까.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뭐가 문제지 0 0
평가원은 그나마 14152122 빼고는 풀만했는데사설오니깐 20 13 이런걸...
-
필력 낮음, 글 못씀 주의 . . [무료배포] FOCUS 모의고사!! _ 수학...
-
나홍진 호프 기대된다 0 0
곡성 느낌이라는데 예고편 때깔 좋음
-
아 ㅅㅂ 도파민 ㅋㅋㅋ 2 0
축제 기간 개재밌네 지금 내 쪽지 뽑은 여성분이랑 디엠중인데 내가 만날 급이 아닌데 하 ㅅㅂ
-
금일도 극기훈련 겸 구보 ㅇㅈ 1 0
오늘도 하체 조질겸(?) 구보 으랏찻차 ㅋㅋ
-
형님들 현재 4등급 국어 허수 입니다. 6모 들어가기 전 국어 연계 공부를 하고...
-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7 0
내일도 화이팅
-
내가미쳤나봐자존심도없는지 0 0
수능으로돌아와쳇바퀴돌듯이
-
스투반수반 vs 강대온택트 0 0
언미화1생1 작수: 12222 작6: 21121 둘 다 우선선발로 합격인 상태이고...
-
오르비 책이 예뻐서 사고싶다 1 0
구름이 곧 글인가...
-
태양앨범 많관부 1 0
아주 신나는걸로가쟈와서 맛도리임
-
문제가 있음 이미 전 주인이 탈주한 이유가 다있는거임
-
아니 말했는데도 안바뀜 과자봉지 뜯어서 씹어먹고 펜지우개 쾅쾅 내려놓고 한숨...
-
하루씩 오르다 체험단 후기 0 2
한줄로 요약하자면 매우 평가원스럽게 깔끔합니다 오르비북스의 는 국어 비문학(독서)...
-
송도 반수 1 0
연세대 송도에서 반수중인 1학년분들 보통 어디서들 하나요? 킬캠 서울대 5모 사문...
-
오늘 adhd약 안먹었네 7 1
이러니까 19번을 틀리지 ㅅㅂ 내일 2배이벤트 해야겠다
-
오늘 진짜 좀 마음에 큰 감동으로 다가오네..
-
부담스럽지 않나요? 요즘은 전번을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인스타를 편해하는 거 같은데...
-
컨관님 1 2
싸이버거 주새요
-
공부하라고 말해줘 7 2
열품타 해야지...라고 말해ㅑ줘...
-
지인선s2 vs 설맞이s2 5 1
공통기준 둘중 뭐가 더쉽나요??
-
앱 배포하면 쓰실분 있나요? 3 3
만들어서 혼자 쓰고있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아서요 다크모드 지원하고 6,9,수능 디데이...
-
오늘 수학한거 2 1
요즘 본인이 공부에 재능이 있는 지 없는 지 감이 안 옴 시간이 존나 걸리긴 하는데...
-
개별 문제들의 선지들을 사후적으로 뜯어서 분석해서 뼈대 없이 그냥 수학 기출분석같은...
-
28 정시 질문 0 0
2학년 2학기부터 5등급제 내신 2.x 무난하게 받으면서 정시 공부할 것 같아요...
-
일반상대성이론 물1때도 맨날 1틀하면 특상이었는데
-
고1 국어 모고 대비 3 5
인강 들으려고하는데 추천 부탁드려오
-
설치빨리 되라거 1 0
10분째 60%는 씹
-
ㅅㅅㅎㄱㅅㄷ 3 1
ㄲㅈㄱ
-
탱크데이 논란 의미없는 이유 2 0
탱크로 시민들 안 밀었으면 됐잖아?
-
속슬 대풀롱 2 1
돈이 마구마구 들어와
-
국어 사설 지문만 읽기 1 1
사설 특유의 느낌때문에 문제는 풀기싫음..
-
하 2 2
으엉...ㅠㅜ
-
이미지 모고 0 0
답 있으신분 답좀 ㅈㅂ 풀엇는데 답지가 없음 ㅜ
-
꼬맨틀 0 0
-
이분은 진짜 따라가기 힘든것같다
-
헬스...헬스가 하고싶다 4 2
미친것같구나
-
국어 실모 옛날꺼 3 0
승리쌤 커리타고 있는데 Tim 1개 빼고 다했어요. 이제 막 실력이 올라오고 있는...
-
그냥 눈감고 누워있을까 4 2
생활패턴을 돌려야함.
-
쿼들 1 0
-
본인은병이하나잇음 4 1
선뎀을못함
-
뭔가 리트풀다가 간쓸개푸니까 0 3
왜케 오히려 더 저능해진거같지
-
마치 둥근사각형을 떠올리는 것처럼
-
양극성마냥 업이있으면 분명 다운도 있는법 그냥 하자 평온하게 항상성을 유지하자 아무...
-
오공완 7 1
점점 국스퍼거 농도가 짙어지는 중
-
야무지게 먹었다 3 0
애피타이저로 샐러드 메인디쉬로 부대찌개 디저트로 초코빵
도쿄가고싶다
나고야 ㄱ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