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등잡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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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여(寄與)
그다지 명예롭지 못한 그러나 생각해 보면 또 그렇게까지 불명예라고까지 할 것도 없는 질환을
가지고 어떤 학부 부속병원에를 갔다. 진찰이 끝나고 인제 치료를 시작하려 그 그리 보기 좋지 않은 베드 위에 올라 누웠다. 그랬더니 난데없이 수십 명의 흑장속(黑裝束)의 장정 일단이 우─
틈입하여서는 내 침상을 둘러싸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 학부 재학의 학생들이요, 이것은
임상강의 시간임에 틀림없다. 손에는 각각 노트를 들었고 시선을 내 환부인 한 점에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의사 즉 교수는 서서히 입을 열어 용의주도하게 내 치료받고자 하는 개소(個所)를 주무르면서 유창한 어조로 강의를 개시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나에게 있어서 참으로 천만의외의 일일 뿐
아니라 정말로 불쾌하기 짝이 없는 봉변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들은 대체 누구의 허락을 얻어 나를 실험동물로 사용하는 것인가. 옆구리에 종기 하나가 나도
그것을 남에게 내보이는 것이 불쾌하겠거늘 아픈 탓으로 치부를 내보이지 않으면 안 되는 그
자그마한 기회를 타서 밑천 들이지 않고 그들의 실험동물을 얻고저 꾀하는 것일 것이니 치료를 받기 위하여는 반드시 이런 굴욕을 받아야만 된다는 제도라면 사차불피(辭此不避)일 것이나 그렇다
하더라도 이 변(變)만은 어디까지든지 불쾌한 일이다.
의사의 진보 발달을 위하여 노구치 박사는 황열병(黃熱病)에 넘어지기까지도 하였고 또 최근 어떤
학자는 호열자 균을 스스로 삼켰다 한다. 이와 같은 예에 비긴다면 치부를 잠시 학생들에게
구경시켰다는 것쯤 심술부릴 거리조차 못 될 것이다. 차라리 잠시의 아픔과 부끄러움을 참았다는
것이 진지한 연구의 한 도움이 된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 할 것이요 기뻐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또 생각해 보면 사람은 누구나 다 반드시 이렇게 실험동물로 제공되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은 아니리라. 환부를 내어 보이는 것은 어느 사람에게 있어서도 유쾌치 못한 일일 것이다. 의학만이 홀로 문화의 발달 향상을 짊어진 것은 아니겠고, 이 사회에서 생활을 향유하는 이 치고는 누구나 적든 많은 문화를 담당하는 일원임에 틀림없다. 허락없이 의학의 연구 재료로 제공될 그런 호락호락한
몸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의사는, 교수는, 박사는 그가 어떤 종류의 미미한 인간에 불과한 경우일지라도 반드시 그의 감정을 존중히 하여 일언 간곡한 청탁의 말이 있어야 할 것이요 일언
승낙의 말이 있은 다음에야 교재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겠다. 요는 이런 종류의 기여를 흔연히 하게 하는 새로운 도덕관념의 수립과 새로운 감정 관습의 보급에 있을 것이다.
어떤 해부학자는 자기의 유해를 담임하던 교실에 기부할 뜻을 유언하였다 한다. 그의 제자들이 차마 그 스승의 유해에 해부도를 대이기 어려웠을 줄 안다. 또 어떤 학술적인 전람회에서 사형수의
두개골을 여러 조각에 조각조각 켜 놓은 것을 본 일이 있다. 얼른 생각에 사형수 같은 인류의
해독(害毒)을 좀 가혹히 짓주물렀기로니 차라리 그래 싼 일이지, 이렇게도 생각이 되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혼백이 이미 승천해 버린 유해에는 죄가 없는 것일 것이니 같이 사람대접으로 취급하는 것이 지당한 일일 것이 아닐까. 또한 본인의 한마디 승낙하는 유언을 얻어야 할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통상의 예를 갖추어 주어야 옳으리라.
나환인(癩患人)을 위하여─첫째 격리가 목적이겠으나─지상의 낙원을 꾸며 놓았어도 소록도에서는
탈출하는 일이 빈빈히 있다 한다.
만일 그런 감정이나 도덕의 새로운 관념이 보급된다면 사형수는 의례히 해부를 유언할 것이요
나환자는 자진하여 소록도로 갈 것이다.
'내 치부에 이러이러한 질환이 발생하였는데 일찍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듯하오니 아무쪼록 여러
학자와 학생들이 모여 연구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나서는 기특한 인사가 출현할는지도 마치 모른다. 그렇다면 여러 학생들 앞에 치부를
노출시키는 영광을 얻기에 경쟁들을 하는 고마운 세월이 올는지도 또 마치 모르는 것이요, 오기만 한다면 진실로 희대의 기관(奇觀)일 것은 기관일 것이나 인류 문화의 향상 발달에 기여하는 바만은
오늘에 비하여 훨씬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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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나
필력이 너무 좋으십니다 선생님
이런 글은 맛폰이 아니라
마치 창호지 옆에서 찬 바람을 맞으면서 호롱불에 비춰서 읽어야 될 것 같아요...
정말 간드러지는 표현이군요ㅎㅎ 이상 작가님이 이 댓글을 본다면 분명 흐뭇해 하실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