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촌여정(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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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학교 곁집 길가에서 들여다 보이는 방에 틀이 떠들고 있습니다. 편발(編髮) 처녀가 맨발로 기계를 건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기계는 허리를 스치는 가느다란 실이 간지럽다는 듯이 깔깔깔깔 대소하는 것입니다. 웃으며 지근대며 명산(名産) ○○명주가 짜여 나오니 열댓자 수건이 성묘갈 때 입을 때때를 만들고 시집살이 설움을 씻어 주고 또 꿈과 꿈을 말소하는 쓰레받기도 되고…… 이렇게 실없는 내
환희입니다.
담배가게 곁방 안에는 오늘 황혼을 미리 가져다 놓았습니다. 침침한 몇 갤런의 공기 속에 생생한
침엽수가 울창합니다. 황혼에만 사는 이민 같은 이 국 초목에는 순백의 갸름한 열매가 무수히
열렸습니다. 고치 - 귀화한 마리아들이 최신 지혜의 과실을 단려(端麗)한 맵시로 따고 있습니다.
그 아들의 불행한 최후를 슬퍼하며 크리스마스트리를 헐어 들어가는 ‘피에타’ 화폭 전도(全圖)입니다.
학교 마당에는 코스모스가 피어 있고 생도들은 글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간단한 산술을 놓아 그들의 정직과 순박을 지혜와 교활로 환산하고 있습니다. 탄식할 이식산(利息算)이
아니겠습니까? 족보를 찢어 버린 것과 같은 흰 나비가 두어 마리 백묵 냄새 나는 화단 위에서 번복이 무상합니다. 또 연식 테니스 공의 마개 뽑는 소리가 음향의 흔적이 되어서는 등고선의 각점 모양으로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이 마당에서 오늘 밤에 금융조합 선전 활동사진회가 열립니다. 활동사진?
세기의 총아, 온갖 예술 위에 군림하는 넘버 제8예술의 승리. 그 고답적이고도 탕아적인 매력을
무엇에다 비하겠습니까? 그러나 이곳 주민들은 활동사진에 대하여 한낱 동화적인 꿈을 가진 채
있습니다. 그림이 움직일 수 있는 이것은 참 홍모(紅毛) 오랑캐의 요술을 배워 가지고 온 것
같으면서도 같지 않은 동포의 부러운 재간입니다. 활동사진을 보고 난 다음에 맛보는 담백한 허무.
장주(莊周)의 호접몽이 이러하였을 것입니다. 나의 동글납작한 머리가 그대로 카메라가 되어 피곤한 더블 렌즈로나마 몇 번이나 이 옥수수 무르익어가는 초추(初秋)의 정경을 촬영하였으며 영사하였던가. 플래시백으로 흐르는 엷은 애수, 도회에 남아 있는 몇 고독한 팬에게 보내는 단장(斷腸)의 스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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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었습니다. 초열흘 가까운 달이 초저녁이 조금 지나면 나옵니다. 마당에 멍석을 펴고 전설 같은 시민이 모여듭니다. 축음기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북극 펭귄 새들이나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짧고도 기다란 인생을 적어 내려갈 편전지(便箋紙)- 스크린이 박모(薄暮) 속에서 바이오그래피의
예비 표정입니다. 내가 있는 건너편 객주집에 든 도회풍 여인도 왔나 봅니다. 사투리의 합음이 마당
안에서 들립니다.
시작입니다. 부산 잔교(棧橋)가 나타납니다. 평양 모란봉입니다. 압록강 철교가 역사적으로
돌아갑니다. 박수와 갈채. 태서(泰西)의 명감독이 바야흐로 안색이 없습니다. 10분 휴게시간에
조합이사의 통역부(通譯附) 연설이 있었습니다.
달은 구름 속에 있습니다. ‘금연’이라는 느낌입니다. 연설하는 이사 얼굴에 전등의 ‘스포트’도
비쳤습니다. 산천초목이 다 경동할 일입니다. 전등, 이곳 촌민들은 ○○행 자동차 헤드라이트 외에
전등을 본 일이 없습니다. 그 눈이 부시게 밝은 광선 속에서 창백한 이사는 강단(降壇)하였습니다.
우매한 백성들은 이 이사의 웅변에 한 사람도 박수 치지 않았습니다.
물론 나도 그 우매한 백성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었습니다만…….
밤 11시나 지나서 영화감상의 밤은 해피엔드였습니다. 조합원들과 영사기 사는 이 촌 유일의
음식점에서 위로회를 열었습니다. 나는 객사로 돌아와서 죽어 가는 등잔 심지를 돋우고 독서를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이웃방에 묵고 계신 노신사께서 내 나타(懶楕)와 우울을 훈계하는 뜻으로
빌려 주신 고다 로한 박사의 지은 바 「인(人)의 도(道)」라는 진서(珍書)입니다. 개가 멀리서 끊일 사이 없이 이어 짖어 댑니다. 그윽한 하이칼라 방향(芳香)을 못 잊어 군중은 아직도 헤어지지 않았나
봅니다.
구름이 걷히고 달이 나왔습니다. 벌레가 무답회(舞踏會)의 창문을 열어 놓은 것처럼 와짝
요란스럽습니다. 알지 못하는 노방(路傍)의 인(人)을 사모하는 도회인적인 향수가 있습니다.
신간잡지의 표지와 같이 신선한 여인들-‘넥타이’와 동갑인 신사들 그리고 창백한 여러 동무들
- 나를 기다리지 않는 고향 - 도회에 내 나체의 말씀을 번안하여 보내 주고 싶습니다.
잠 - 성경을 채자(採字)하다가 엎질러 버린 인쇄직공이 아무렇게나 주워 담은 지리멸렬한 활자의 꿈. 나도 갈갈이 찢어진 사도가 되어서 세 번 아니라 열 번이라도 굶는 가족을 모른다고 그럽니다.
근심이 나를 제한 세상보다 큽니다. 내가 갑문(閘門)을 열면 폐허가 된 이 육신으로 근심의 호수가
스며들어 옵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마조히스트 병마개를 아직 뽑지는 않습니다. 근심은 나를 싸고
돌며 그러는 동안에 이 육신은 풍마우세(風磨雨洗)로 다 말라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밤의 슬픈 공기를 원고지 위에 깔고 창백한 동무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 속에는 자신의 부고(訃告)도 동봉하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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