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想 [870531] · MS 2019 · 쪽지

2022-03-02 09:31:31
조회수 718

산촌여정(2)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55215608

 3 


팔봉산 올라가는 초경 입구 모퉁이에 최○○ 송덕비와 또 ○○○○ 아무개의 영세불망비가 항공우편 포스트처럼 서 있습니다. 듣자니 그들은 다 아직도 생존하여 계시다 합니다. 우습지 않습니까? 


교회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역을 수만 리 떨어져 있는 이 마을의 농민들까지도 

사랑하는 신 앞에서 회개하고 싶었습니다. 발길이 찬송가 소리 나는 곳으로 갑니다. 포플러 나무 밑에 염소 한 마리를 매어 놓았습니다. 구식으로 수염이 났습니다. 나는 그 앞에 가서 그 총명한 동공을 

들여다봅니다. 셀룰로이드로 만든 정교한 구슬을 오블라토로 싼 것같이 맑고 투명하고 깨끗하고 

아름답습니다. 도색(桃色) 눈자위가 움직이면서 내 삼정(三停)과 오악(五岳)이 고르지 못한 빈상을 

업신여기는 중입니다. 


옥수수밭은 일대 관병식(觀兵式)입니다. 바람이 불면 갑주(甲胄) 부딪치는 소리가 우수수 납니다. 

카민 빛 꼬꼬마가 뒤로 휘면서 너울거립니다. 팔봉산에서 총소리가 들렸습니다. 장엄한 예포 소리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곁에서 소조(小鳥)의 간을 떨어뜨린 공기총 소리였습니다. 그러면 

옥수수밭에서 백, 황, 흑, 회, 또 백, 가지각색의 개가 퍽 여러 마리 열을 지어서 걸어 나옵니다. 

센슈얼한 계절의 흥분이 코사크 관병식을 한층 더 화려하게 합니다. 


산삼이 풀어져 흐르는 시내 징검다리 위에는 백채(白菜) 씻은 자취가 있습니다. 풋김치의 청신한 

미각이 안약 ‘스마일’을 연상시킵니다. 나는 그 화성암으로 반들반들한 징검다리 위에 삐뚜러진 

N자로 쪼그리고 앉았노라면 시야에 물동이를 이고 주저하는 두 젊은 새악시가 있습니다. 나는 

미안해서 일어나기는 났으면서도 일부러 마주 보면서 그리로 걸어갑니다. 스칩니다. 하드롱 빛 

피부에서 푸성귀 냄새가 납니다. 코코아 빛 입술은 머루와 다래로 젖었습니다. 나를 아니 보는 

동공에는 정제된 창공이 간쓰메가 되어 있습니다. 


M백화점 미소노 화장품 스위트 걸이 신은 양말은 이 새악시들의 피부색과 똑같은 소맥(小麥) 

빛이었습니다. 삐뚜름히 붙인 초유선형 모자, 고양이 배에 파스너를 장치한 가뿐한 핸드백 - 이렇게 도회의 참신하다는 여성들을연상하여 봅니다. 그리고 새벽 아스팔트를 구르는 창백한 공장 소녀들의 회충과 같은 손가락을 연상하여 봅니다. 그 온갖 계급의 도회 여인들 연약한 피부 위에는 그네들의 

빈부를 묻지 않고 온갖 육중한 지문을 느끼지 않습니다.                




4 


그러나 가난하나마 무명같이 튼튼한 피부 위에 오점이 없고 ‘추잉껌’ 


‘초콜릿’ 대신에 응어리는 빼어 먹고 달짝지근한 꽈리를 불며 숭굴숭굴한 이 시골 새악시들을 더 나는 끔찍이 알고 싶습니다. 축복하여 주고 싶습니다. 교회는 보이지 않습니다. 도회인의 교활한 시선이 

수줍어서 수풀 사이로 숨어 버리고 종소리의 여운만이 근처에 냄새처럼 남아서 배회하고 있습니다. 혹 그것은 안식을 잃은 내 혼이 들은 바 환청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조밭 한복판에 높은 뽕나무가 있습니다. 뽕 따는 새악시가 전공부(電工夫)처럼 높이 나무 위에 

올랐습니다. 순백의 가장 탐스러운 과실이 열렸습니다. 둘이서는 나무에 오르고 하나가 나무 밑에서 다랭이를 채우고 있습니다. 한두 잎만 따도 다랭이가 철철 넘는 민요의 무대면입니다. 


조 이삭은 다 말라 죽었습니다. 코르크처럼 가벼운 이삭이 근심스럽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오 - 비야 좀 오려무나, 해면처럼 물을 빨아들이고 싶어 죽겠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금(禁)한 듯이 구름이 없고 푸르고 맑고 또 부숭부숭하니 깊지 못한 뿌리의 SOS가 암반 아래를 흐르는 지하수에 

다다르겠습니까? 


두 소년이 고무신을 벗어 들고 시냇물에 발을 잠가 고기를 잡습니다. 지상의 원한이 스며 흐르는 정맥 - 그 불길하고 독한 물에 어떤 어족이 살고 있는지 - 시내는 대지의 신열을 뚫고 벌판 기울어진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을의 풍설(風說)입니다. 


가을이 올 터인데 와도 좋으냐고 쏘근쏘근하지 않습니까? 조 이삭이 초례청 신부가 절할 때 나는 

소리같이 부수수 구깁니다. 노회한 바람이 조 잎새에게 난숙(爛熟)을 최촉(催促)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의 마음은 푸르고 초조하고 어립니다. 


조밭을 어지러뜨린 자는 누구냐? 기왕 안 될 조이거늘, 그런 마음으로 그랬나요? 몹시 어지러뜨려 

놓았습니다. 누에, 호호(戶戶)에 누에가 있습니다. 조 이삭보다도 굵직한 누에가 삽시간에 뽕잎을 

먹습니다. 이 건강한 미각은 왕후와 같이 존경스러우며 치사(侈奢)스럽습니다. 새악시들은 뽕 

심부름하는 것으로 몸의 마지막 광영을 삼습니다. 그러나 뽕이 떨어졌습니다. 


온갖 폐백이 동이 난 것과 같이 새악시들의 정열은 허둥지둥하는 것입니다. 


야음을 타서 새악시들은 경장(輕裝)으로 나섭니다. 얼굴의 홍조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뽕나무에 

우승배가 놓여 있습니다. 그리로만 가면 되는 것입니다. 조밭을 짓밟습니다. 자외선에 맛있게 그을은 새악시들의 발이 그대로 조 이삭을 무찌르고 스크럼입니다. 그리하여 하늘에 닿을 지성이 천고마비 잠실 안에 있는 성스러운 귀족 가축들을 살찌게 하는 것입니다. 콜레트 부인의 「빈묘(牝猫)」를 생각게 하는 말캉말캉한 로맨스입니다.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