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u Roman. [69422] · MS 2004 · 쪽지

2014-11-05 21:07:21
조회수 6,369

PD 합격수기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5000721

진로에 관심있을 수험생 여러분을 위해 친구들의 수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옮깁니다.

모든 글은 Snu Roman.의 편집을 거칩니다.






  방송사 프로듀서 김연타.

  이름만큼 되는 게 없는 인생인지라 연타석 홈런은 커녕, 안타도 못 쳐본 내가 결국 마지막 홈인은 했다. 생각해 보면 3년여에 길친 긴 여정이었다. 첫 시험 MBC 기자 시험에 덜컥 응시해 최종면접까지 갔던 그 기억. 역시 나의 식견과 필력이면 방송사 언로고시 쯤 식은 죽 먹기구나 하고 자만했을 그 시절. 오히려 나는 최종면접에서 안 된 것에 위안을 삼았다. 벌써 되기엔 즐길 인생이 너무 많이 남았으니까.

  그렇게, 학교를 계속 다니며 다음 해였던 2012년 방송사 시험을 다시 봤다. 한 곳은 아나운서로, 한 곳은 예능 프로듀서로, 한 곳은 기자로. 아나운서는 최종면접까지 갔고 예능 프로듀서 역시 필기를 통과했다. 기자는 필기에서 탈락했지만 이미 한 번 검증받은 덕 아닌가. 난 천상 방송인인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 이게 고난의 시작이었다.

  언론인으로서의 자질과 관련해 보유했던 내 강점은 무엇이었을까. 첫째로, 무엇이든 글과 말로 옮기는 전언, 전필능력. 나는 뭐든 글로 썼고 무엇이든 말하였다. 말 많고 글 많았지만 그 덕에 나의 언변과 필력이 한결 보드라워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난 누구보다 내가 아는 콘텐츠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는 데 자신 있었다. 둘째로, 무엇이든 읽어 제끼는 능력. 텍스트홀릭(Text Holic)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나는 무엇이든 읽었다. 엘리베이터 탈 때도, 버스를 기다릴 때도 무엇이든 읽지 못하면 못 견뎌 했다. 그런데 읽을 게 뭐가 있겠나. 매일 만화책을 들고 다닐 수도 없고. 결국 뉴스를 읽었고 칼럼을 읽었고 책을 읽었다. 이렇게 많이 읽다 보니 무엇이 늘었냐면, 속독력은 하나도 안 늘었고 반대로 지식이 늘었다. 정말 많은 지식이 늘었다. 하나의 문장, 하나의 문단을 완성하기 위해 짜내고 짜낸 그들의 지식을 눈길 한 번으로 습득하는 것은 정말 경제적인 활동이었다. 읽고 또 읽어라. 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해주는 교어(敎語)다.

  내가 나의 언변과 필력을 방송사로부터 인정받기 시작할 무렵, 나의 강점이던 전언(傳言)과 전필(傳筆), 독해에 대한 중독은 점점 엷어져갔다. 나태해졌다. 남들은 아카데미다, 스터디다 뭐다 하며 돈과 시간을 쏟아부어도 필기 하나 통과한 그 시험들을 나는 평소 내 생활습관 외에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모두 최종까지 가 봤기에 자만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시점을 변곡점으로 나의 독해량은 눈에 띄게 줄었고 말도 줄었으며 글도 줄었다. 자연스레 필기 통과가 어려워지더니 급기야 서류마저 안 되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기 시작한 것이다. 나이 제한이라니.

  2013년. 나의 마지막 해였다. 이제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라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노력은 하지 못했다. 나는 우선 하고 싶은 것을 정하고자 했다. 글로 세상을 까발리는 기자? 말로 상대를 녹이는 아나운서? 그것보다 나는 렌즈로 세상을 보여주고 말로 다시 시청자를 후려치는 프로듀서를 하고 싶었다. 웃기거나 몰입시키는 프로듀서가 아니었다. 예능/드라마 PD가 아닌 시사교양PD로서의 꿈을 꾸게 됐다.

  그러나 낙방은 가깝고 합격은 멀었다. 이제 서류통과 쉽지 않았다. 절망과 좌절을 반복하던 그 때 어느 한 방송사의 서류에 합격하였다. 그래, 마지막이다. 이번이. 라고 생각했지만 합격자 발표는 시험일로부터 겨우 5일 전.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미친듯이 했다. 공부시간은 20시간을 잡았다. 20시간만 하고, 내 꿈을 이루는 거다. 언론인 카페에 가서 시사상식과 방송학 지식을 취합본 만들기에 참여했다. 방송학개론 취합본을 1시간 보고 방송학 개론을 빨리 한 번 훑었다. 총 4시간이 걸렸다. 개요가 잡혔다. 이후 시사상식 취합본 2개를 연달아 빠르게 읽었다. 밑줄을 그었고 머릿속에 되뇌였다. 총 4시간이 걸렸다. 다시 1시간 들여 방송학개론을 정리했다. 또 1시간 들여 시사상식을 정리했다. 정리한 키워드를 다시 한 번 쭉 읽으며 외웠다. 여기에 1시간이 들었다.

  이제 남은 9시간. 이 중 8시간엔 글쓰기에 시간을 할애했다. 먼저 기출문제를 보고 기출문제에 대한 답을 쭉 써봤다. 첨삭은 받지 않았다. 나를 믿었으니까. PD저널리즘의 역할에 관하여, 방송사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다큐 에피소드에 관하여,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방송사 기획안에 대하여 하나씩 썼다. 내가 봐도 명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지금 이 시대의 PD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글을 썼다. 여기에 썼던 역량을 써가면서 내가 어떤 부분을 갖고 있고 못 갖고 있는지 반추했다. 이렇게 쓰니 PD라는 직업에 대한 얼개를 대충 그렸다. 글당 1시간씩 걸려 썼고, 1시간씩 걸려 자료조사를 했다. 마지막 남은 1시간은 앞서 정리했던 방송학과 시사상식 정리하는 데 할애했다.

  그렇게 필기를 통과했다. 필기 통과한 마당에 면접은 쉬웠다. 정말 쉽게 통과해 이 자리에 섰다. 드디어 나는 내 꿈을 이루었다. 시사교양 프로듀서 김연타. 연타석 홈런은 한 번 홈런을 쳐야만 이룰 수 있는 제한적 과제다. 그리고 난 그 제한적 과제를 풀 수 있는 아주 제한적인 기회에 섰다. 난 분명 운이 좋았던 것 같다. 1주일 만에 이러한 기적을 이루었으니까. 하지만, 1주일 만에 누구나 이런 기적을 이룰 수는 없다. 나는 최근 10년간 일간지 2개와 주간지 4개 월간지 4개, 해외 주간지 하나를 거의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봐 왔다. 내가 본 주/월간지만 수천권이다. 이 정도 읽고 그대의 생각을 정리했다면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제 끝났다. 그리고, 끝이 시작이다.

김연타 약력

MBC 기자 4차 불합격
조선일보 기자 3차 불합격
SBS 아나운서 최종 불합격
JTBC 예능 프로듀서 3차 불합격
일간스포츠 최종 합격
한겨레신문 최종 합격

현 방송사 현직 프로듀서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