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하소연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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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 보시다시피 평범한 재수생입니다.
고등학교는 지방에서 별볼일 없는 사립고를 나왔습니다. 사실 집 자체가 지방 촌인지라 중학교에서 내신 따기도 수월했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공부를 잘했다기보다는 암기를 잘했죠.
고등학교 1~2학년 때는 내신을 열심히 챙긴 것도, 또 그러지 않은 것도 아니라서... 한마디로 일진도 모범생도 아닌 그냥 찌질이였죠. '아, 그럼 내 돌파구는 수시가 아니라 정시구나.' 하고 마음 먹었는데, 고2 11월 모의고사에서 수학이 60점대가 나와버리더라고요. '아 역시 난 사고력 따윈 없는 암기 기계였어'하는 생각을 했죠.
그 충격도 잠깐, 부랴부랴 기말고사 준비하고 학교 축제 때문에 논다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기말고사 끝나고는 기숙사에서 밤마다 친구들끼리 모여서 3~4시까지 놀았습니다. 방학이 시작되고 잠시 귀가 기간이 있었는데, 너무 놀다보니 집에 가자마자 몸살이(...) 났습니다.
'집에서만 쉬고 진짜 학교 가면 공부 열심히 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가족들이 저에게 많은 눈총을 보내더군요. 고3으로서의 위기의식이 안느껴진다고나 할까? 특히나 저희 형 같은 경우는 꽤 학벌이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더 그러더군요.
"너희는 공부하는 기계다. 기계가 멈추면 잘못인 것처럼 너희도 공부를 멈추면 죄 짓는거다."
뭐 이딴 이상한 소리를 들어가지곤... 학교 교감 선생이란 사람이 한 소리라는데;; 여튼 집에 있는 내내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가족들이 너무 싫었고, '젠장, 진짜 내가 더러워서 공부한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귀사 날 아침 6시에 일어나서 7시발 버스를 타고 학교로 갔습니다.
정말 열심히 한 공부는 이렇게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부터 시작된 것 같습니다. (뭐, 다들 그렇잖아요?) 방학인지라 학교 등교는 8시까지였는데, 매일 6시 반에 일어나서 1시에 자기를 반복했습니다. 열공하시는 분들께는 별거 아닌 스케줄이지만, 전 정말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나도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다는 거요.
아침 식사 시간 이후 점심 식사 시간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점심 식사 시간과 저녁 식사 시간 사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쉬는 시간 20분은 (방학이니까요) 영어 단어를 틈틈히 외웠고요. 겨울방학인지라 정말 논다고 생각했던 친구들도 공부했고, 저 역시도 그런 친구들에게 고무받아 더욱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 흘러 어느덧 고3 교육청 3월... 고3이 되어 처음 치는 시험이었습니다. 참패했습니다. 전 항상 수학이 가장 큰 적이었는데, 계산 실수를 엄청나게 자주 해서;; 그게 3월에 터지더라고요. 허무했지만, 아직 내가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하고 다시 마음을 잡았습니다. (사실 제 고3 생활은 수학과의 싸움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만)
사이사이에 있는 4월, 각종 사설 모의고사를 그럭저럭 치고... 6월 평가원이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너무 긴장해있었거든요. 특히나 제가 장이 좋지 않아서, 그날따라 배까지 난리였습니다. 또다시 참패했죠. 담임 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넌 문과 과목만 잘하고 이과 과목은... ;;
여름방학 때도 고2 겨울방학처럼 머리 싸쥐고 공부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끼고, 집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날씨도 더웠지만... 하지 않으면 대학을 가지 못한다는 생각이 그래도 계속 공부를 하게 하더라고요.
그리고 9월 평가원... 아시다시피 수학이 너무나도 쉽게 나온 시험이었습니다. 왠지 전날부터 마음이 편안했던 터라 다행히도 그 못난 수학 실력을 갖고도, 실수 하나 없이 말끔하게 풀었더라고요. 처음으로 잘 친 시험이었습니다. 이어서 10월 교육청까지 쉽게 나오면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수업 들어오시던 국어 선생님이 애들한테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일이 잘 풀릴수록 조심하라' 왠지 저한테 하는 말 같아, 특히나 여름방학 이후 체력이 자꾸 떨어지는 시점에 그말을 자꾸 되새기며 공부했습니다. 그런 느낌 받으신 적 있으실 거에요. 잘되서 불안하다는거.
뭐 그렇게 마지막에는 5개년 기출, EBS 교재 정도를 정리하고 수능을 치러 갔습니다. 마음을 편하게 먹으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결국... 재수생이 되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수학에서 계산 실수가 너무 많이 나버린겁니다. 정말 매기고 나선 눈물도 안나오고 허탈했어요. '이 짓을... 한 해 더...?' 거기다가 학교에서 맨날 노트북 갖고 놀고 자던 '머리 좋은 녀석'은 제가 꿈꾸지도 못할 성적을 받고, 꿈꾸지도 못할 대학으로 갔습니다.
11월은 그야말로 트라우마에 빠진 달이었습니다. 사실 고3이 되고나서는 잠을 되게 편하게 잤는데, 수능 이후부터 잠을 깊게 자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꿈 한번 꾸지 않던 저였는데, 날마다 꿈을 꿨고... 그것도 주로 악몽이었으며; 자다가 자주 소리를 질렀습니다.
제 코 안의 대가 약간 비뚤어져서 비염에 자주 걸렸는데 수능을 치고 수술을 받고 입원해있었는데, 병원에서는 자다가 "아, 시X!'하고 소리를 지른 일도 있었습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노래 하나 듣고 울고, 울고... 수능날 못 흘린 눈물이 그제서야 나오더라고요.
집에 있는 내가 너무 한심해서 재수학원에 선행반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이렇게 실의에 빠져있느니 뭐든 하는게 낫겠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재수학원 정규반까지 쭉 갔고... 지금 현 시점에 있습니다.
대학이나 가서 이런 글을 쓰지, 왜 이 상황에 이딴 글이라 싸지르냐고요?
사실 지금 성적은 꽤나 잘 나오는 편입니다. 작년에 공부했던 게 다행히도 완전히 날라가진 않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수능 이후에 참 나쁜 생각을 갖게 되버렸습니다.
'지금 성적 잘 나와봤자 결국 수능은 머리 좋은 놈들이 잘치겠지. 그리고 대학은 열심히 공부한 녀석보다는 그저, 자기 대학에 와서 많은 것을 빠르게 배울 수 있는 머리 좋은 인재를 원할 테고'
한번의 좌절이 작년만큼의 열의가 생기지 않게 하네요. 남들은 재수생들은 정말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줄곧 생각해보건데 작년만큼 열심히 하기가 정말 힘든;; 그저 작년의 공부량에 얹혀 가는 한심한 재수생이더라고요.
열심히 공부했지만 재수하시는 분들 많을 겁니다. 그리고 저랑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열심히 하신 분도 계실 겁니다. 그리고 저처럼 계속 실의에 빠진 분도 계시겠죠.
다 같이 한번만 믿어보자고 하려고요. 공부한만큼 나올 수 있다고요. 물론 수능은... 완벽히 공정할 수 없는 시험이지만;; 적어도 그렇게 믿는게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더 낫지 않겠냐고요. 100여일 남짓 남은 시점. 수능은 우리가 공부한만큼 보답한다는 믿음을 갖고 하자고요.
재수생 및 N수생 여러분들 모두 화이팅입니다.
p.s. 그냥 쓰면서, 작년의 행적을 돌아보며 다시 작년처럼 열심히 해보자고 쓴 글입니다. 글이 두서없이 길어져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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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소연은 이 글로 다 털어버리시고, 지금부터 남은 여름과 겨울은 굳건하고도 겸손하게 공부하셔서 원하는 점수 쟁취하시길 바랍니다. 대학 간 이후에는 더 겸손해야 하구여 저랑 비슷해서 글 남겨 봅니다 파이팅!
단순히 하소연 하는 글은 아닌 것 같네요. 적어도 이 글을 쓰는 동안에는 자신을 잘 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을거에요.
간절히 믿고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화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