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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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가장 힘든 경우는 당연히 "이도 저도 안될 때"이다.
그럼 그 다음으로 힘든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
경험으로 비추어보면 "이도 저도 다 됐을 때"이다.
성과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어느 경우든 같이 갖고 갈 수 있는 성과가 있고 그것을 영위하기 위해 다른 성과를 포기해야만 하는 성과가 있다.
예를 들면 어려서부터 물리학도를 꿈꾸던 학생이 바라던대로 서울대 물리학과에 붙었는데 뜻하지 않게 연세대 의대까지 붙은 경우 그는 어느 한 성과를 포기해야 한다. 나는 이를 '배제적 성과'라 부른다.
반면 어느 상황에든 같이 갖고 갈 수 있는 성과가 있다. 위에 언급된 학생이 토플 시험을 봤는데 만점을 받았다든가 JLPT에서 1급을 받은 경우 이 성과는 다른 그 어느 결과와도 충돌하지 않는다. 있으면 플러스일 뿐 결코 다른 어느 하나를 포기하게 만들지 않는다. 나는 이를 '독립적 성과'라 부른다.
앞서 언급한 '그 다음으로 힘든 경우'는 바로 전술한 배제적 성과들이 중복돼 일어났을 경우이다. 그리고 이 성과들이 각각의 가치를 갖고 있어 당사자로 하여금 절대 형량에 근거한 판단을 불가능하게 할 때 더더욱 고통은 가중된다. 여기서 자신의 기호와 세간의 평가가 양립하지 않을 때 고통이 극대화됨은 물론이다. 전술한 학생의 경우 본인은 여전히 물리학과에 진학하고 싶은데 남들이 전부 의대 가라고 할 경우 본인을 이루어왔던 정체성까지 흔들리는 경우가 분명 있다. "야, 너 내 앞에서 행복한 고민 하네?" 따위의 비아냥은 일견 일리가 있지만 당사자 입장에선 그 순간만은 정말 행복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살다 보면, 이런 경우들이 가끔 일어나더라. 겪어보기 전까지는 저게 과연 힘든 일일까 의문을 나타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살면서 저러한 배제적 성과들이 충돌해 사람 정신을 나가게 하는 경우를 여럿 보아왔다. 화학박사과정 밟으며 병역을 대체하려 했는데 카투사에 덜컥 붙은 친구가 그랬고 한의사만을 꿈꿔오던 친구가 한의전과 서울대학 의전에 동시에 붙었을 때 그랬다.
가끔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혹은 이 영화냐 저 영화냐 고민하는 것도 때론 엄청난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킴을 상기하면 저들의 인생이 달린 고민에 소요되는 비용을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사태를 피하려면 처음에 계획을 철저하게 세우고 둘째로는 돼도 확신이 없다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냉정함이 요구된다.
눈치빠른 독자들은 이쯤되면 눈치 챘겠지만 이 글은 작일 썼던 내 일기를 연장하는 부연(敷衍)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통은 나같은 부류의 사람들에겐 예고된 필연이다.
사실, 이미 당신들 나이쯤 되었으면 이미 형성된 인간형은 바뀌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에 몰두해 다른 곳에 한눈팔지 않고 그냥 주야장천 그 길만 파는 '한우물 인간형'에겐 이런 일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 이거저거 다 건드리되 정말 제대로 건드리고자 하는 '르네상스형 인간형'들은 자신이 열정을 다해 여러가지 성과를 냈을 경우 십중팔구 전술한 경우를 마주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저 때의 선택이 당신의 인생지형을 크게 바꾸게 될 것이다. 피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겪게 될 것이다.
이 글을 쓴 이유는 저런 고통의 단계를 피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함이 아니라 그냥 저런 경우도 있더라 하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쓰고보니 별 것 없지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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