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올해 너무 많은 것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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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시작 전에 이 문장을 읽어보자.
노력의 양을 무지막지하게 늘려야 겨우 결과로 나온다.
성취를 해본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정말, 죽을 각오로 노력의 양을 무지막지하게 늘려야 겨우 결과로 나온다. 단순히 수능이 아니라 어떤 것이든. 내 아버지는 연탄 가스에 소리소문 없이 죽을 뻔한 일이 2번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병원을 보낼 돈이 없어 온갖 민간 요법으로 다행히, 정말 다행히 무탈하게 살아남으셨다. 아직도 그 지독한 가난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하신다. 정말 내 앞에서 내 동생과 닮은 그 울음을 보이신 적이 있다. 나에게 그렇게 큰 거인 같던, 불굴의 ENTJ이던 아빠가. 그러했던 아버지의 유년기. 아버지는 책을 가족의 돈으로 단 하나도 사지 않는 채로, 친구들의 버린 책만을 뒤져 가며 공부하셨다고 했고 실제로 우리 친할머니 집에 가면 모든 책에 익숙치 않은 이름들이 보인다. 그 치욕. 그 치열. 그 끝엔 서울대와 의대가 있었고 아버지는 역시나 서울 갈 돈은 마련 못한다는 말에 지방 의대를 가셨다. 이후 아버지는 내 어머니를 만나셨고, 21세기에 난 태어났다.
내 얘기를 해보자면, 난 암산을 남들보다 객관적으로 '훨씬' 잘하는 편이지만 그 사고 속도를 위해 그 '남들'보다 수백 배 많은 시간을 자동차 번호판 보며 살았다. 8살부터 더하고 곱하고 나누고 소인수분해하는 게 단순히 재미있었으니까. 초등학생 시절 친구들은 내가 왜 폰이 아닌 창밖을 바라보며 수학여행 버스에 5시간 동안 앉아 있었는지 의아해 했을 거다. '저 ㅄ. 폰이나 보면서 게임할 것이지.' 지금 내 초등학교 동창들 중엔 구구단을 모르는 친구들도 있다. 먼 나라 얘기 같겠지만 정말 그렇다.
작년 수능을 통해 내가 배운 건 한 가지. 내가 겪었던 유일한 실패라는 것. 오만해 보이겠지만 난 천성적으로 내 일에 불 같은 성격을 그대로 도입하는지라 그동안 실패한 적이 없었다. 그 어떤 것이든 간에. 그 치열한 학교에서도 내가 원하는 경시대회 상이 있다면 어떻게든 참가했다. 수학 경시 대회를 1학년 때 2등했던 것이 너무나도 분해 그날 잠을 못 잤고, 2~3학년 때는 5개의 수학 경시들 중 3개에서 1등을 했다.(어느 학교인지는 비밀)
그렇지만 작년 수능은 완벽한 실패. 275라는 점수가 누군가에겐 원하는 점수일 거고 누군가에겐 코웃음나올 점수겠지만 나에겐 완벽한 실패.
하지만 그 분한 감정 속에서도 의심하지 않은 게 있었으니, 바로 내가 노력한 양과 나의 방만함이 공존했다는 것. 그동안 내가 온 힘을 다해 노력한 수많은 것들 중 유일하게 방만한 감정이 있었고, 유일하게 실패했다는 것.
수능 망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평소보다 2개만 더 틀려도 내 앞으로 100명이 훅 지나간다. 275점으로 많은 대학들을 뒤져 봐도 정말 간신히 대학별 환산 등수로 이과 기준 1200등이 왔다갔다거렸다. 이렇게나 추락했다니....
6평과 9평을 285점 가까이 받던 내가 갑자기 10점이 떨어졌던 2020년 12월 3일, 난 흉작임을 확신했다. 의대 정시가 1000명가량이었으니 말 그대로 운과 가산점, 여론에 의지해야 했다. 의대 지역인재나 국립의 중 펑크날 가능성 있는 곳들, 2과목 가산 대학들을 고대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후 입결을 까보니 내가 지원 가능했던 더 높은 대학들도 있었으나 그걸 지방에서 혼자 예측할 수는 없었다.
난 만족하지 못했다. 나 자신이 너무나 싫어졌다. 3달을 우울한 감정으로 보냈다. 겨우 정신을 차린 건 3월.
그 후로 정신없이 재점화해 달렸던 올해는 어떠했는가. 옆자리 경쟁자들에게 처참하게 깨지고 또 깨졌다. 현역 때 학교에서와는 공기의 냄새가 달랐다. 산골의 은행 냄새가 아닌 잉크와 종이향이었다.
누군가는 수능을 빨리 뜨는 게 정답이라고 한다. 당연히 그게 맞다. 그러나 수능은 정교했다. 나를 죽이지 못한 시련은 나를 강하게, 그리고 독하게 키웠다. 난 올해의 이 반수를 통해 배운 삶의 태도가 내 앞으로의 삶을 통째로 바꾸어놓으리라는 기분이 강하게 든다. 오만했던 나를 깨기 위해 장마를 견디고 또 견디며, 그 순간에서도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뿌리를 붙들고 있었으니까.
나는 결코 흐리멍청한 눈을 가진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다. 허나 내가 내 작년의 성과에 만족을 해 버리고 대학을 그대로 갔더라면, 올해의 이 경험이 없었더라면 나도 비참한 존재가 되었겠지.
그런 면에서 작년의 실패한 나에게 참 감사하다. 내가 바친 건 추가의 1년이지만 그 대가로 너무 많은 것을 얻었다. 내가 버린 건 약간의 자존심이지만 그 대가로 참 많은 것을 얻었다.
올해 나의 수능은 실패일지 성공일지, 모르겠지만 참 많은 것을 얻었다. 이 글을 보실 몇 안 되는 분들(모아보기에서 안 보일 테니 팔로워 1263명만 보는 게 가능하겠지요. 메인도 못 갈 테니.). 전 여러분만 챙기겠습니다, 그냥.
하나만 물을게요. 11월 19일 이 글을 다시 따올리게 될 때, 나의 2021년 방만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아, 내가 실패한 원인이 여기저기에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자신 있으신가요? 분명 실패하면 제 글이 기억에서 튀어나올 겁니다. 그때 다시 여기로 돌아와 다짐하십시오. 치욕의 시간을 겪는 게 낫지, 난 결코 이 실패의 결과를 남들처럼 쉽게 수용하지 않으리라고.
불안한 감정 가지신 분들 많아 보이셔서 제 생각을 읊어 봤습니다. 모아보기에서 금지 처리당하니 차라리 편하네요, 일기장 같고. 일부러 학습자료 칸에 올려둡니다, 어차피 여기 올라올 자료로 공부 제대로 하시는 분들은 지금 이 시기엔 없을 듯하여.
모두가 실패하고, 모두가 열등감을 맛보는 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견디셔야 합니다.
'무지갯빛 미래를 기다리며 장마를 견디는 나무 한 그루. 여러분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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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감동추... 이 글 지우지 마세요 두고두고 볼 거에요... - 애기 고2 올림
푹 자라.
아 ㅋㅋㅋㅋㅋ
ㅋㅋㅋ
자라 왜이리 푸근하지ㅋㅋㅋㅋ
자라
정독해서 쭉 읽어보았는데 마지막 문단에 뜨끔하네요... 믿지님 근황글 볼때마다 점점 성장하고 계신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예요...! 지금 남은 시간동안 얼마나 더 열심히 할 지 스스로에게 회의감이 좀 드는데... 일단 마지막까지 달려보겠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에효....올해는 잘 마무리해야죠 ㅎㅎ 감사합니당
남은 기간동안 같이 더 열심히 합시다!
키야 글쟁이네 ㅋㅋ
진짜 수능 30남기고 퍼진 나에게 확실한 충고의 글이다..
제가 작년과 올해 가장 큰 차이가 바로 지금 이 50일이었던 것 같아요. 더프 10모 291 받고 그냥 놀았거든요. 정시로 성의 간 친구는 그 더프 망치고 혼자 학교에 남아 문 닫고 나갔고, 전 대학 겨우겨우 붙여놓고 다시 수능 치는 사정이 되었네요.
잘 판단하셔서 수능 ㅎㅇㅌ!
감사합니다..! 올해 수능도 목표를 향하여 화이팅 하시길 바래요~
모!밴 먹어도 26이 되네ㅋㅋㅋ
저도 몸무게를 많이 얻었답니다
참 어려운 주제인거같네요. 수험생활이 끝나고, 목표를 향해 전력질주하던 삶이 잠시 휴식기를 맞을때 또 생각이 한번 크게 변할거에요. 노력을 많이 했던만큼, 현타도 제법 쎄게 올거고. 결과가 좋든 안좋든 말이죠. 근데 그렇다고 이악물고 달리던 순간들이 의미없다곤 생각안해요. 1년간 대한민국의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봤던 경험은 여러모로 본인을 크게 성장시켰을테니
나는 할 수 있고 해낼 것이다 그게 뭐든 늘 언제나 그랬듯이.
린킨 파크 노래 진짜 좋았는데 너무 아쉽 퓨ㅠ
ㅠㅠ 아시는구나 ㅠㅠ 저도 팬이었다는
체력의 중요성도 깨달은 거 같아요
모~밴임…?
왜 나한텐 메인글로 보이지... 팔로워라 그런가
밑에 멘사는 뭐에요?? 멘사회원이신가요?? 워..
레어를 산 거라는 ㅎㅎ
와 번호판 더하는게 도움이 되는구나..그래서 내가 계산 실수를 안하남

노력을 통해 결과를 얻으려면남들보다 압도적으로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항상 말조심해야한다는 것도 아마 깨닫지 않으셨을까 싶네요. 수능 응원합니다 화이팅.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이런거나올줄알앗넹
님 볼때마다 이런 사람들이 메이저,인설의 가는거구나 싶어서 시무룩해짐여ㅠㅠ 그래도!!! 전 문 닫고라도 들어갈거니까 딱 기다리세요 ㅋㅋ
....오늘 수능 끝나면 나도 님도 웃고 있어야 할 텐데....ㅠㅠ
ㅎㅇㅌ!!
글 너무 잘쓰심
감동받음
수험생이신진 모르겠지만 맞다면 올해 수능 고득점도 같이 받으시길....ㅎㅇㅌ
그냥 머리 좋다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적으셨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