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 '가능하다'의 의미는 무엇일까?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40029261
철학과 전공 수업만 이번 학기에 4개를 듣고 있는데, 시험 공부를 하던 중 수능 수험생들도 알면 좋을 내용일 것 같아 정리해봅니다. 이 글의 내용을 무의식적으로나 의식적으로 알아야만 수능 국어를 푸는 것에 어려움이 없을 것 같습니다. 막 어려운 얘기는 빼고 작성했습니다. 오류가 있다면 제보 바랍니다.
'가능하다'라는 진술은 여러 종류로 구분될 수 있는데, 가령 '논리적으로 가능', '물리적으로 가능', '기술적으로 가능'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 중, 수능 국어에서 요구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가능한가?', '논리적으로 참인가?'를 판단하는 능력입니다.
'논리적' 참, '논리적으로' 가능
1. 모든 사람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2. 확통 선택자의 수학 공통 평균이 기하 선택자의 수학 공통 평균보다 높다. 기하 선택자의 수학 공통 평균이 미적 선택자의 수학 공통 평균보다 높다. 그러므로 확통 선택자의 수학 공통 평균은 미적 선택자의 수학 공통 평균보다 높다.
1번 예시의 경우, 올바른 논증의 예시로 흔히 쓰입니다. 전제가 참이고, 논증 형식이 타당하므로 결론도 참입니다.
2번 예시의 경우는 조금 이상합니다. 논증의 형식 자체는 타당하지만, 전제와 결론이 거짓입니다. 그럼에도 두 예시 모두 논리적으로 올바릅니다. 2번 예시와 같은 논증을 논리학에서는 타당(valid)하지만 건전(sound)하지 않은 논증이라고 말합니다.
논리학에서 다루는 것은 논증의 올바름(타당함)을 판단하는 것뿐이고, 그 전제나 결론이 현실에서 참인지는 다루지 않습니다. 수능 독서 지문에 나오는 논리학 지문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2019학년도 수능 '가능세계' 지문을 예시로 들어보겠습니다.
가령, '다보탑은 경주에 있다.'와 '다보탑은 개성에 있다'는 둘 다 논리적으로 가능합니다. 전자가 사실이고, 후자가 사실이 아니지만, '논리적으로는' 둘 다 '가능'합니다. 가능하다고 해서 '실제로 그렇다'는 얘기가 따라나오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 다룰 '가능하다의 의미'를 잘 모르는 학생은 '다보탑이 개성에 있는게 어떻게 가능해?'라고 생각하며 멈칫멈칫 했을 겁니다.
반면 'P이면서 P가 아니다'같은 명제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어떤 명제가 가능하지 않다는 얘기는, '그 명제의 거짓'이 필연적이라는 얘기입니다. 곧, 'P이면 P이다'는 필연적입니다. 이를 철학에서는 '동일자의 필연성'이라고 부릅니다.
'변이 네 개인 삼각형' 같은 것도 논리적으로 불가능하지요. '삼각형'의 정의와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경우, 현실적으로도 반드시 거짓입니다.
만약 무언가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물리적으로도 가능합니다. 물리적으로 가능하다면 논리적으로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면 물리적으로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면, 기술적으로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 두 문장은 곱씹어보면서 꼭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아래 기출의 예시들을 보겠습니다.
'현실에서 위양성이나 위음성을 배제할 수 있는 키트는 없다.' (2019학년도 6월 모의평가 '키트')
'키트' 지문의 예시는, '위양성이나 위음성을 배제할 수 있는 키트가 있다'라는 명제가 논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는 가능할 지 몰라도, 기술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충돌회피성이란 특정 해시 값을 갖는 서로 다른 데이터를 찾아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6학년도 9월 모의평가A '해시함수')
'키트' 지문과 마찬가지로, '특정 해시 값을 갖는 서로 다른 데이터를 찾아내는 것'이 논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는 가능할 지 몰라도, 기술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상호 배타적인 상태의 공존을 적용함으로써 초고속 연산을 수행하는 양자 컴퓨터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는 양자 역학에서 말하는 상호 배타적인 상태의 공존이 현실에서 실제로 구현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2018학년도 9월 모의평가 'LP')
지문에서 '상호 배타적인 상태의 공존'은 20세기 양자역학에 의해 과학적으로(물리적으로) 가능하다고 주장되었는데, 이제는 기술적으로도 가능해졌다는 얘기를 하는 부분입니다. 이 지문의 경우 쓰신 교수님이 '논리적 가능성', '물리적 가능성', '기술적 가능성'의 개념을 의식적으로 고려하시면서 작성하신 것 같습니다. 지문에 그 세 가능성이 모두 나오고, 각각의 가능성이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이 서술되어 있거든요. <보기>의 양자 컴퓨터 문제가 뜬금없다는 학생분들도 계시고, 심지어 강사분들도 <보기> 문제가 억지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철학에서 다루는 '가능성'의 개념을 모른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엔 지문의 구조상 '기술적 가능성'을 다루는 문제가 반드시 하나는 나와야 했습니다.
확장
수능 국어 문학에서 다루는 것 역시 '논리적 가능성'입니다. 실제 작가의 의도나, 실제의 정확한 의미를 문제로 물어보지 않아요. 주어진 지문, <보기>를 읽고 '논리적으로 가능한' 선지를 옳은 것으로,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선지를 틀린 것으로 골라내면 됩니다. 피램 문학에서 강조하는 '허용 가능성'이란 도구가 이런 점에서 수능에 적합한 훌륭한 도구인 것이죠.
저도 일개 철학과 학부생일뿐, 논리학 자체는 제가 막 엄청 전문적으로 아는 분야가 아니라서 글이 중언부언 했는데, 위에서 예시로 든 기출들이 헷갈리셨던 분들에게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혹시나 글에 지적할 부분이 있다면 댓글이나 쪽지 주세요. 빠른 피드백 반영하겠습니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아시는 분… 제발요ㅠㅠ 제가 맨날 한문제 차이로 1이안떠요….. 실수도 그만큼...
-
2시까지 할랬는디 넘 피곤하네 난 글렀어 다들 바이바이
-
ㅇㅇ예?
-
81 9 1 하면 81/10나옴 천잰가 하면서 몇분꼴다가 극값이 3개인걸 발견함
-
과제 ㅅ발아
-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
예전에 가속도 존재해 있기 때문에 속도가 미분가능 조건 쓸수 있다 해서 속도가 미분...
-
아가 자야지 4
모두굿밤
-
공붛래야되는데 1
고민만하다가 새벽한시되니까 진짜 기분 ㅈ같다
-
1학년때 1.12 받고 2학년에 1.72 정도 나왔는데 국수영과만하면 1.50 정도...
-
미적 확통 다풀어서
-
진짜임
-
그렇더라... 고정 100점에 가까운 외계인들은 제외하고..
-
"시대인재는 어떻게 사교육 시장을 장악했나?" 인터뷰보니 배울거 많고 기존 이론과 연결 가능 대우석
-
어렵네 1년을 이렇게해와서.. 실전에서만 해야하는데 문제풀때도 이럼 요즘 그래프...
-
3모확통손풀이구요20번은귀찮아서패스했습니다 그냥심심해서만들어봣슴다 15번에 선지...
-
제가 현강을 하나 듣고 있고 그 선생님이 잘 맞아서 김기현T 인강만 추가적으로...
-
이게뭐지 10
겁도없네 이사람은
-
제적 사태는 진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함 ㅇㅇ 구제해줄지는 그 제적되는 인원수에...
-
젭알
-
02라던데... 그나이에 벌써 시대에서 한 과목 전체를 담당하고 있다니... 수업때...
-
안녕하십니까 햄들 저 내년에 수능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3모 집에서 최대한...
-
그때는 틀리는걸 무서워하지 않았어... 지금은 틀리는게 무서워
-
수출보국(輸出報國) 수출로 나라를 부강하게
-
이번에 내신기간에 역학특강 여는데 꼭 들어야할까요? 이범에 물리 50이었습니다 3모...
-
항상 손부터 나감 그래서 100이 잘 안나오는 듯
-
ㅇㅇ
-
내일점심뭐먹지 3
혼자먹어야댐..
-
이제 고2 올라가는 08 남학생인데 정시로 틀지 수시로 어떻게든 올려서 도전해볼지...
-
걍 고쟁이 푸는것처럼 범위나누고 기함수여서 1이랑 -1 좌표로 형태그리고...
-
알아두기만 하고 그게 숏컷이라도 2순위로 두는게 맞을까요? 체화된 풀이랑 달라서 괴리감이 너무 큼
-
쇤베르크 지문은 8
내용이 되게 추상적이던데 이런건 보통 어떻게 처리하심? 지문 이해를 잘은 못할거같아서
-
확통런 미적표점 0
미적 중하위권이 다 빠져나가서 미적 표점 높아질 확률 있을까요??
-
ㅈㄱㄴ
-
seori - full moon(이두나 ost) 릴리 - pray for...
-
학평 알레르기 0
6,9,수능 시험지는 ㄱㅊ은데 학평시험지 꺼냈다하면 재채기하고 코로 숨쉴때 간지럽고...
-
국어황들 질문 14
이번 3모 혈액지문에 비례 반비례가 ㅈㄴ 나오는데 이거 다 첨읽을때 표시만 해두고...
-
이 시간에 2
뭐 해야 할까요
-
옷이 없어요 23
으악
-
화잘주스, 강대 크럭스 이렇게 있는데 어떤게 퀄이 더 좋나여?
-
물생vs물화 0
둘다 내신해봄
-
쌤들 말 들어보니 수학적이 아닌 교육적으로는 인정한다고. 조금만 노력하면 92를...
-
현제 일반고 고3 인데요 제가 공부를 1,2학년때 뒤지게 안해서 지금 내신이...
-
덕코주세여ㅠ 7
6월 학평 1등 상금 10만덕으로 올리고 싶어요
-
기적의 미적분법 1
여러분들은 절대 이러지 마세요
-
죄책감드네요 속이려한건 아닌데
-
선택이랑 예전 기출들은 나중에...
-
내일은 0
7시부터 바로 공부 시작하자 꾸준함을 나만의 무기로 삼자
-
독재 + 단과인데 단과 다니면서 다닐건데 거리가 제일 중요할까요? 에듀셀파 대치 다...
-
미적은 보법이 다르네 보기만해도 개어려워보임
방금 만점의 생각으로 LP지문 공부하고 왔는데 바로 두번 복습하게 해주시다니 역시 ㄷㄷ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냥 님이 비문학 지문 써도 될듯...필력 미쳤다
문학 허용 가능성 넘 어려움 ㅠㅠㅠ
같은 글을 읽어도 정말 아는 만큼 보이는 것 같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당
요약: 불가능하지 않으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