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븐4Answer [592707] · MS 2015 · 쪽지

2021-07-26 05: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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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새벽갬성)4수생 느와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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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만나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을 기어코 만나고야 말았다. 


2015년 6월 4일, 2016학년도 6평이 있던 날. 난 이날을 절대 잊을 수가 없다. 그럴만도 한게 내가 이날 썰을 풀면 당장 주작 아니냐는 의심부터 받을 정도로 우연에 우연이 다 겹친 날이었기 때문이다. 근데 인생사 싫은 일은 다 몰아서 온다고, 난 이날의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날 만큼 이 하루의 인상은 잊을 수가 없이 강렬했다. 


나는 강남의 J학원을 2년간 다녔다. 당연히 선생님들은 물론 복도의 생활지도 선생님들까지 다 아는 네임드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3수때는 그 전에 비해 공부에 눈을 떠서, 매 모의고사에서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던 나름 학원의 유망주였다. 어느 정도였냐면, 우리 학원은 상위 몇명은 1층의 좋은 자습실을 쓸 수 있게 해줬는데, 딱 한번을 제외하고는 그 자습실에서 나간 적이 없었다. 딱 한번 쫓겨난 이유는 과탐 과목마킹 실수로 0점처리ㅋㅋㅋ


삼수 당시의 나에 대한 평가는, 당시는 나의 존재만 알고 있었던, 지금은 절친이 된 한 동생의 첫 인상으로 갈음한다. 

'저런 씹인싸 기만자새끼들이 대학은 또 잘가겠지? 에효 재수없어.'



그랬던 놈이 수능 미만 잡 빔을 처맞고 대학도 못가고 걍 찌그러져서 살고 있었으니, 자연스레 당시 친했던 사람들과도 연락이 끊겼고, 나 스스로도 연락을 피하는건 당연지사였다. 학원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았고. 당시 선생님들 마주치기가 너무나도 싫었기에. 그래서 6평 신청 당시 모교와도 같았던 J학원에는 자리가 남아돌았음에도 불구, 꾸역꾸역 다른 학원들 찾아보다가 어쩔 수 없이 중구에 있던 J학원 본원으로 갔던 것이다. 그래도 거기는 아는 선생님들 없을 것 같아서. 


특히 물리 1타 강사였던 모 선생님 단과를 다시 들으며, '너 대학 어디갔냐'는 질문만 숱하게 받아왔던 터라, 아는 선생님은 더 안만나겠다는 생각이 그 당시는 더 강렬하게 들었다.


그런데 내가 크게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평가원이나 수능 등 빅 이벤트때는 회의 때문에 모든 분원 선생님들이 다 본원에 집합한다는 사실을. 


국어를 풀며 '마 나 아직 안뒤졌네'혼자 생각하고 스스로 뿌듯해한 80분, 수학에서 막히는 문제들이 몇 개 생기며 '난 빡머가리가 된게 분명하다'생각하며 절망하던 120분이 지나고 고대하던 점심시간이 되었다. 대충 점심 뭐먹지나 생각하며 학원 밖으로 나왔다. 날씨는 더럽게 화창했다. 비타민 N충전을 위해 담배를 하나 집어물었다. 방구석 이중구 빙의해서, 시험 칠땐 치더라도 담배 한대는 괜찮잖아?를 혼자 중얼거리던 그 때...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나는 바로 눈을 피했는데, 그분들은 나를 알아보고야 말았다. 내가 기억을 못할 리가. 

삼수 당시 J학원에 처음 온 선생님이었는데, 난 그분 수업 중 나왔던 주옥같던 명언들이 아직도 기억날 정도이다. '사람은 재수를 하면서 성장한다.' '입시도 중독이다.' 등등. 지금도 그럴진데 그 당시에 그분을 못알아볼 리가 없지 않겠는가.


나는 조용히 불을 끄고 자리를 벗어나려 했지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XX이, 너 여기 왜있냐?"

왜있냐니. 하 시발.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인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6평 보러 왔어요."

"니 담배피는 모습부터 익숙하다야. 올해 또 하냐?"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네 뭐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네요."

"그래 뭐 꿈이 있으면 대학 일이년 늦는거 별거 아니다. 힘내라야."


그렇게 선생님의 격려를 뒤로 하고,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아 갑자기 식욕이 확 사라져 버렸다. 망할. 나름 그 학원 근처가 직장인들 많은 동네라 어느 맛집을 갈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점심 탐방은 글렀군. 그 순간 수많은 맛집들이 다 맛대가리 없게 보이기 시작했다. 영어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55분, 아직 시간은 한참이나 남았는데, 그렇다고 또 학원에 먼저 들어가 그 숨막히는 닭장 강의실에 있기는 싫었다. 그래서 하염없이 길을 걸었다. 정장에 사원증을 건 차림의 직장인들이 분주히 어딘가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익숙한 감정이다. 같은 공간 속, 다른 인생.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길가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하 날씨는 또 존나게 좋네."


차라리 비라도 오지. 싱숭생숭한 마음을 뒤로 하고 주변 건물을 쭉 돌아보았다. 지금의 나와는 다르게 너무나도 생기가 넘치는 구 도심의 풍경. 나는 즉석에서 마음먹었다. 오늘 시험 끝나면 일단 쭉 걸어야겠다고. 일광욕이라도 해야겠다고. 


영어와 탐구 시간은 뭘 생각할 새도 없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이미 점심때 멘탈이 나가 있었는데 그래도 어찌저찌 문제를 풀긴 했던 것 같다. 


"자 이제 나가셔도 됩니다."


탐구 시험지를 걷어가서 수를 맞춰보는 시간이 끝난 뒤, 감독관의 이야기가 들리자 마자 쏜살같이 가방을 들고 학원 밖으로 나섰다. 초여름이라 그런가, 아직 해는 쨍쨍한 시간이었다. 어디로 갈까나...생각해보니 어디로 갈지 행선지도 정하지 않았다. 제1안. 탑골공원. 생각해보니 거기서 바둑 두는 어르신들 보면 더 울적해질 것 같으니 컷. 제2안. 참된 재수생답게 집가서 시험지 검토. ㅈ까 안해. 오늘의 나는 쉰다. 컷. 문득 여기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광화문이 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 그리고 그 옆에는 교보문고도 있었지. 


결정. 오늘의 산책 코스는 광화문이다. 나는 지도 어플도 켜지 않은 채 도로의 광화문 표지판 하나를 보고 하염없이 걷기 시작했다. 등에 땀방울이 점차 맺히기 시작했다. 그래 이게 살아있는 느낌이지. 철도 건널목을 지났다. 기차의 덜컹거리는 소리와, 그 안의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또 상념에 빠졌다. 아 나도 저 기차 안에서 어디로 확 가버리고 싶다. 근데 또 그러기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예정대로 광화문으로 직행. 


충정로와 광화문은 한 정거장 거리인데, 역 하나의 거리가 엄청나게 멀다는 것을 이때 처음으로 느꼈다. '지하철 안의 사람들은 상대성 이론에 의해 시간이 느리게 갈 텐데 왜 걷는 내 시간이 더 느린 것 같지?'와 같이 세상 쓸데없이 똥같은 생각들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덧 광화문에 도달해 있었다. 오래 걷다 보니 더위가 조금 느껴지기 시작했다. 서점 안에서 시원하게 휴식이나 해야겠다 생각하며 회전문을 쫙 미는데. 


아 왜 이떄는 이 노래가 없었을까. 그때 이 노래를 알았다면 머릿속에서 브금이 바로 재생될텐데 말이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사실 니라고 하기에는 존나 예의가 없긴 하다. 고등학생때 날 잘 챙겨주시던 은퇴 앞둔 국어선생님. 아니 왜 선생님이 거기서 나오세요. 오늘 업무시간 아닙니까? 


그 선생님도 나를 보고 잠시 말을 잊으셨다. 잠시간의 침묵이 흐른 후, 그 긴장상태를 먼저 깬 쪽은 선생님이었다. 


"아니 너는 왜 여기에 있냐?"

이거 어디서 들어본 얘기 같은데 왜 오늘 하루만에 데자뷰가 느껴지지? 사실 그것보다 이건 내가 하고 싶은 얘기잖아. 

"아니 선생님 오늘 학교 안가셨어요?"

선생님은 사람좋게 허허 웃으셨다. 

"은퇴 앞둔 사람인데 뭐. 책이나 좀 사러 왔다. 너는 뭐하러 왔냐?"

"저도 책사러 왔죠. 것보다 더워서 안에서 좀 쉬려고요."

"요즘 대학은 잘 다니냐?"

대학 이야기 발작버튼이긴 한데, 그렇다고 솔직히 말하기는 좀 그랬다. 나는 잠시간 머리를 굴리다가 그냥 얼버무렸다. 

"아 뭐 학교 다니다가 쉬고 싶어서 땡땡이 치고 왔습니다."


그래 거짓말은 하지 않았지. 학교를 하루 다닌거 팩트. 땡땡이친거 팩트. 여기 온거 팩트. 와 팩트밖에 없는 이런 솔직한 학생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래 대학은 어디 다니고? 서울대냐? 맨날 컴공, 뇌과학 노래를 부르지 않았냐"

아니 선생님 제발 그런 디테일한건 좀 기억하지 마시라고요...왜 졸업한지 3년된 놈 지망 대학애 전공까지 기억하시는 겁니까 젠장. 학교 선생님이고, 학원 선생님이고 만나기 싫어서 여기까지 온건데 오늘 참 무슨 날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다시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하면 대학 얘기를 빠져나갈 수 있을까. 


"하하 서울대는 아니고요. 뭐 공대 다니다가 의대 갈까 생각 들어서 반수도 고민중이에요."

사실 의대 생각 추호도 없었는데, 생각해보니 이만한 핑계가 떠오르지 않았다. 

선생님은 날 지긋이 보시더니 악수를 건네셨다. 


"그래 요즘 취업때문에 의대간다는 친구들 많더라. 잘 생각해봐라. 넌 뭘해도 될놈이니까 열심히 하고."


이거 참 팔자에도 없는 격려를 오늘 두번이나 받는구만. 날이구나 날이야. 나는 사라져가는 선생님께 인사를 꾸벅 하고 그곳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참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차라리 그놈의 서울대 생각 말고 고삼때 수시 잘 써볼걸 그랬나. 시부레 이미 수시도 다 막혔고, 내신도 대체내신인데. 하 뭐하러 내신 그렇게 땄을까 시부레. 그렇게 잠시간 재밌었던 고딩 시절을 회상하며 상념에 잠겼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와 보니 나는 땡볕에서 육수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아 덥네. 얼른 문을 통과해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 서점 안 카페로 가 대충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를 시켰다. 아 오늘은 할 이야기가 좀 많을 것 같다.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받지 않는다. 피곤한가보다. 


가만히 있다가, 당시 안산에서 삼수 중이던 아는 동생에게 전화했다. 오늘은 도저히 못견디겠다. 


"어이 형씨 왜 전화했어."

"황태, 오늘 술한잔 하실? 씨발 도저히 술 없이는 못배기겠다."


동생은 심심했던지 바로 오케이를 날렸다. 집에다가 연락해 오늘은 일이 있어서 고시원으로 바로 가겠다고 해놓고, 동생에게는 내 고시원 근처로 오라고 했다. 그렇게 잠시간 몸을 식히며 주중 저녁의 분주한 사람들을 뒤로 한 채 지하철을 타고 내 쪼매난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날 있었던 일이, 일전에 글로 쓴적 있었던 전설의 게이사우나 썰이다. 그야말로 요단강 목전까지 노크하고 염라대왕이랑 탭댄스 추다 온 날이었다고 지금의 나는 감히 평가할 수 있는 하루였다.

https://orbi.kr/00012060819


이렇게 파란만장한 하루를 보내고, 곧 있을 강대 6야 개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망의 6야 개강일, 나는 또 하나의 인연을 만들게 되었다. 지금도 나의 유튜브 편집자이자, 매니저이자, 이 나의 분노발작 급발진이 있을 때마다 사이드카를 걸어주는 매우 고마운 친구를 이날 만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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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힘든 과 실습을 돌때만 글이 이렇게 잘 써지는 걸까요. 것보다 피곤한데도 새벽에 왜 잠이 안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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