앳 띡 [988605] · MS 2020 (수정됨) · 쪽지

2021-06-15 01: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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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칼럼] 내가 조언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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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고3 시절, 주변 친한 선배 중에 대학 잘가는 선배가 없었다. 친구들 중에도 많이 없었다. 내가 그런 애들이랑만 어울려다닌 거 아니냐고? 그런가? 아니다. 아무튼, 우리 학교는 경기도 남부 지역의 흔히 말하는 ㅈ반고 남고였고, 지역의 분위기 자체가 공부와 대입에 큰 뜻이 없는 분위기였다. 그런 분위기에서 자라는 학생들이 뭐 대학이고 뭐고 관심이 크게 있을리가. 


 나는 어릴 때부터 머리 좋다는 얘기, 공부를 안해서 아깝다는 얘기를 자주 듣고, 그 얘기를 듣는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살던, 공부에 의지도 없고 의욕도 없던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다, 대입을 앞둔 고3이 되고 나니 내가 머리가 좋다는 소리만 듣고 이룬 것 하나 없는 그런 사람인 것을 깨달았다. 두려웠다. "내가 공부만 했으면 서울대 그냥 갔지"라는 헛소리나 지껄이고 다닐까봐.


 그래서 수능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제대로 공부해본 적 한 번 없이, 수능은 고사하고 입시 자체에 대한 지식이라고는 하나 없이 공부를 시작한 나는 막막했다. 어떻게 하는 거지? 매번 고심하고 또 고심했다. 아니, 사실 고심하는 척이었다. 대충 공부하는 척만 하다가 금방 흥미 잃고, 아니다 싶어서 하다가도 또 흥미를 잃었다. 그리고 입에는 "재수나 하지 뭐"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렇게 수능 전, 마지막 10월 교육청 모의고사가 찾아왔다.


 대참사였다. 수학은 7등급이 나왔다. 그날 바로 학교에서 집까지 혼자 걸어가는 길에 엄마한테 전화를 걸고 '엄마 나 논술이라도 준비해야 할까?' 라는 말과 함께 이런저런 걱정과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날 저녁, 엄마가 바로 나를 데리고 그래도 나름 우리 지역의 학원가에 있는 국어 학원에 나를 데려갔다.


 학원에서 테스트를 봤다. 좋은 점수가 나올리가 없었다. 원장 선생님이 나에게 시켰던 건 실모 양치기. 학원에 남아있던 바탕, 상상, 봉소모의고사를 하루에 하나, 많으면 두개. 수능 이틀 전까지 매일 그렇게 했다. 바탕은 1년치를 다 풀었고, 봉소는 반 정도 풀었던 것 같다. 


 수능날, 그 해 6월과 9월 평가원과 똑같은 점수가 나왔다. 국어만 빼고. 20 수능 1컷이었다. 당시 어려웠던 경제지문의 고난도 문제를 맞혔던 게 기억난다. 내가 그런 문제를 맞혔다는 게 기뻐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점수로는 내가 생각했던 그런 대학들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당시 내가 원서를 써볼만하다고 추천 받았던 학교는 광운대, 명지대, 고려대 세종, 연세대 미래. 솔직히 말해서 아쉬웠다. 1년 더하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을 설득하는 게 관건이었다. 나는 나를 너무도 잘 알았고, 당시 내가 있던 환경과 개인적인 상황에서 도망치고 공부에만 집중하고 싶었기에 기숙학원을 원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너 중고등학교 다니면서 공부 제대로 안 하고 놀기만 하는데 어떻게 믿고 거기를 보내냐"고 하셨다.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내 계획과 생각을 정리해서 부모님과 식탁에 앉아 계속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 서운했던 나머지 "지금 나를 엄마 아빠가 안 믿어주면 누가 믿어줄 건데"라며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랍에서 뭔가를 꺼내오셨다. 여러 장의 종이 뭉치. 기숙학원들의 브로슈어였다. 강남대성기숙학원, 양지메가스터디기숙학원, 서초메가기숙학원, 러셀기숙학원 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주변에 있는 유명한 기숙학원들의 브로슈어였다. 뭔가 싶었다.


" 이미 여름에 엄마 아빠가 학원들 다 돌아봤어 "


엄마의 이 한 마디를 듣고 그 자리에서 울었다. 고맙고 미안했다. 너무 죄송스러웠다. 몇몇 학원에는 이미 상담까지 하고 오셨다고 하셨다. 저 중에 한 학원을 골라서 상담을 하고, 선행반으로 입소했다.


 중요한 것은 여기부터다. 학원에 들어가서, 나는 신세계를 보았다. 우리 반에는 나처럼 벼락치기로 수능 성적을 올려서 들어온 학생은 거의 없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미 작년에 수능을 위한 공부를 열심히 제대로 했던 학생들이고, 수능만 못 봐서 온 학생도 있고, 무엇보다 수능과 수능 공부에 대해서 나보다 너무나도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충격 받았다. 아, 나는 너무 모르고 살았다. 그때부터 이것저것 접해보고, 수능 공부에 대해서 더 알아가기 시작했다. 오르비도 이때 알았다.


 나 같은 학생들이 없었으면 한다. 뒤늦게 깨닫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나는 조언하는 선배가 되고 싶다.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최대한 도움이 되고 싶다. 다락방의 아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https://orbi.kr/00038045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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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위 링크의 글이 그 도움의 시작이 되길 바란다. 


혹시라도 많이 부족한 제 조언을 듣고 싶으시다면 언제든 성심성의껏 가능한 선에서 답변해 드리니 댓글이나 쪽지로 질문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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