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odocijelq [982823] · MS 2020 · 쪽지

2021-06-12 13:5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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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의 공정은 어떤 점이 잘못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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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이 가지고 있는 공정에 대한 낮은 인식 수준은 매우 위험하다고 본다. 그는 분배적 공정성과 절차적 공정성을 혼동하고있으며, 필요의 원칙과 평등의 원칙에는 침묵하고 있다.


공정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배 정의를 이야기할 때 "기여도에 비례한 보상"을 이야기했다. 현대의 공정도 이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보면 된다. 아담스(Adams)의 공정성 이론에서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닌, 상대적인 비교를 통해 공정함을 느낀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공정성 이론은 현대에 들어와서 절차 공정성이 추가되고, 필요의 원칙과 평등의 원칙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필요의 원칙은 보상의 수혜자가 필요로 하는 자원의 양에 맞춰 사회적 자원이나 보상, 책임 등을 분배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노력이나 자본의 투여에 관계없이 평가된다. 필요의 원칙은 주로 구성원의 복지, 개인의 능력 개발 등이 필요할 때 주로 사용된다.


평등의 원칙은 한 집단 내의 수혜자들이 기여도나 다른 지위 특성 요인에 영향을 받지 않고 결과에 대해 모두 동등한 가치를 보상받는 원칙을 뜻한다. 형평의 원칙(기존의 분배공정성)이 구성원 간 경쟁을 통해 성과를 높이는 효과를 내는 반면,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구성원들 간 상호존중을 약화시키는 경향이 잇다. 평등의 원칙은 주로 구성원 간 기여도, 사회적 지원 등의 영향력을 최소화시킴으로써 조직 구성원 간 조화와 화합을 꾀하거나 유지시키는 데 유리한 원칙이다.


공정에 대한 이론적인 이야기가 이준석식 공정과 어떤 차이가 있느냐를 살펴보면 수십가지 문제점이 발견된다. 왜냐하면 이준석은 이렇게 fm대로 공정에 대하여 학습한 것이 아니라 에펨코리아나 야갤에서 퍼오는 공정에 대한 얕고 무식한 생각들을 차용했기 때문이다.


이준석은 "공정한 경쟁이 보수의 가치"라고 말했다. 공정성은 원래 과정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분배의 결과에도 주목해야한다. 그러나 이준석은 절차적 공정성만 지켜지면 분배적 공정성은 지켜진 것이다, 이렇게 앵무새처럼 이야기할뿐 평등의 원칙에는 기가 막힐 정도로 입을 닫고 있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본인 입맛에 맞는 공정의 원칙을 차용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준석의 머가리 속에는 공정이 보수의 가치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준석이 말하고 있는 능력주의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인 입장이다. 능력주의가 반드시 나쁜 사상은 아니며, 우리나라에서는 인적 자본을 기반으로한 고성장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그러나 이준석이 말하는 능력주의는 적어도 위험하다. 그가 한 말을 되짚어보면, "본인의 입시는 완벽하게 공정한 입시"라고 주장했다. 완벽하게 공정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완벽하게 공정한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공정성의 가장 취약점으로 제시되는 것이 정확도, 또는 주관성이기 때문이다. "기여도"에 따른 "보상"을 말하지만 기여도와 보상을 정확하게 측정해낼 수 있는 도구는 없다. 또한 아담스는 우리가 상대적으로 비교하여 공정성을 확인한다고 말했는데, 상대적 약자가 보상을 많이 가져갈수록 기여도 역시 실제보다 과소평가되는 경우가 많다는 식의 논문이 많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준석은 본인의 입시만큼이나 완벽한 공정을 꿈꾸고 있고, 그 밑바탕에 능력주의가 있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준석은 "능력주의가 계층이동성을 보장한다"는 틀린 명제에 기대어 서민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저 위에 올라가게 해줄테니, 그 대신 패배하면 간쓸개를 뺏어도 뭐라 하지말라는 식의 협박이다. 그러나 능력주의가 계층이동성을 보장한다는 명제는 이미 여러 번 틀렸다고 반박된 명제이지만, 그렇게 믿는 사상을 '능력주의 신화(meritocracy myth)'라고 한다. 왜 수많은 국민의힘 정치인들조차도 이준석식 엘리티시즘과 능력주의에 대해서 비판했는지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이다. 이준석은 능력주의 신화에 기대어 능력주의의 당위성을 호소하고 있지만 그것이 완벽하게 오늘날 어긋났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능력주의는 불평등과 세습제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보수정당의 전략은 매혹적이며 조국 사태에서 면면히 드러난다. 교육자본의 세습적인 측면과 승자독식주의에 대한 비판(시스템적인 측면) 대신, '절차적 공정성'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개인을 공격한다. 그러나 시스템의 문제를 개인으로 치환하려는 노력의 부작용은 이미 우리나라가 겪은 내용이다. '노오력 드립'과 '헬조선' 모두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유행어 아닌가? 불평등의 문제를 불공정으로 치환하고, 시스템의 문제를 개인에게 전가시키고자하는 것이 보수 정당의 현재 전략이다.


결과적으로 현재 이준석이 제시하고 있는 공정한 경쟁은 과거회귀적인 태도로 귀결될 수 밖에 없으며, 시스템이 아니라 너희들이 잘못됐다는 일종의 도발이다. 거기다가 공정의 취사선택, 능력주의의 심화버전인 테스토크라시(시험만능주의)는 덤이다. 이러한 도발에 대한 국민의 선택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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