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대 예과생을 위한 글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37273773
3년만에 오르비에 들어온 것 같다.
시험기간이라 속에 쌓인 게 많아서 글로써라도 뱉어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에 들어오게 되었다.
예과때 나는 지독한 한까였다.
한까에서 본과2학년까지 무사히 오게 된 데에는 수많은 사유와 고뇌가 있었지만
이 글에선 그걸 다루고자 함은 아니고
적당히 한의대에 와서 반수 생각도 없고 그렇다고 맹렬한 한빠도 아닌
그냥 평범한 한의대 예과생을 위한 글이 될 것 같다.
해주고 싶은 말이 많다. 특히 과거의 나에게......
이 글의 핵심 결론을 먼저 말해야겠다.
☆ 예과 때도 공부해야 된다.
내가 한의대 입학하고 예과 때 수도 없이 들은 말이 있다.
예과 때는 놀아도 된다.
나아가서, 학부생 때는 적당히 놀아도 된다.
학교 내용과 임상은 하늘과 땅차이다.
뭐 이런 류의 내용들이었다.
이런 말을 즐겨 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바로 학점이 중위권 이상은 된다는 것이다.
'공부를 한다'의 개념은 상당히 거쳐야 될 난관들이 많다.
순서대로 1. 수업을 듣는다. 2. 수업 내용을 이해한다. 3. 시험기간에 공부를 한다.
나는 초, 중학교 때 단 한번도 학교수업을 들어본 적이 없고, 고등학교는 자퇴를 했고, 수능 공부는 90%를 인강, 책 위주로 했기 때문에
1번부터 그것을 수행할 능력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제한기일까지 과제를 제출해야된다는 사실조차도 항상 친구들에게 물어봤어야 했다.
그 상황에, 예과 때 놀아도 된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마음이 편했는지 모른다.
바로 1번부터 걸렀다.
그리고 예2때 10개 전공과목 중 8개 과목에서 F를 받고 유급을 당했다.
(예1 학점 : 1학기 - 1.82 / 2학기 - 1.81. 난 생존 전문가였다.)
놀아도 된다 라는 말의 정의는 개개인이 살아온 역사와 습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특히 정시 n수로 온 친구들에게는 더욱이 주의해야할 말이다.
그리고, 대학 공부의 단계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예과 1학년 때 배우는 한의학 한문, (우리 학교는 맹자를 이용했다.) 이것부터 살펴보자.
이 과목을 공부하는 데에 있어서는 무, 소, 중, 대 의 4가지 단계가 있다.
無 : 안 한다.
小 : 한자를 익힌다. ( 이 단계부터 진급이 가능하다. )
中 : 한문을 익힌다.
大 : 내용을 익힌다.
소의 단계.
한자를 익힌다. 간단하다.
한자를 알고 들어오는 한의대생의 수는 극히 적다.
가끔 1, 2급 따고 들어오는 친구들은 1년을 편하게 지내지만, 대다수는 숫자 1~9도 한자로 쓸줄 모른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맹자에 나오는 한자 정도만 익힌다. 보통 이 정도만 해도 D~D+ 정도의 학점으로 진급이 가능하다.
중의 단계.
한문을 익힌다.
한문과 한자는 다르다. 영단어와 구문의 차이 정도 되겠다.
다만 더욱 ㅈ같은 건, 한자는 뜻 언어이기 때문에 뜻을 알아야 한문을 익힐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은 구문 해석을 통해 문장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는데, 한문은 반대로 전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야 해석이 가능하다... 매우 ㅈ같다.
그래서 수업이 필요하다. 또한 어조사에 대한 이해와 자주 나오는 유형의 문법 또한 익혀야 한다.
이 단계를 거치면, 대충 아는 한자로 이루어진 한문에 대해 적어도 해석 흉내라도 낼 수 있다.
대의 단계.
내용을 익힌다.
맹자 1권 1장은 인의를 강조하며 백성을 이끄는 주도자로서의 이상적인 덕목을 제시한다.
1권 3장은 호연지기 파트로, 개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되는가에 대한 이상적인 길을 제시한다.
이 과정 속에서 인,의,예,지 와 氣에 대한 이해로 나아갈 수 있다.
즉, 내가 어떤 의사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척 의문과 사유로까지 넘어갈 수 있다.
문제는 뭘까? 무의 단계는 처음에 설명한, 나의 경우와 같이 아무것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소 중 대 의 단계.
예과 2학년으로 넘어가면 또 한의학 한문 과목이 있다.
여기서 핵심적으로 필요한 능력치는, 맹자에서의 중의 단계부터 시작한다.
본과 1학년으로 넘어가면 황제내경이 있고, 본과 2학년으로 넘어가면 상한론이 있다.
여기서부터는 맹자에서의 대의 단계가 이 과목에서의 소의 단계로 가게 된다.
즉, 최소 '중의 단계' 정도는 해두어야 다음 커리큘럼에 해당하는 과목에서 기본은 칠 수 있다.
그런데, 예과 때 놀라는 말을 듣고, '소의 단계' 정도의 공부만 하게 된다면
다음 학년이 되었을 때 고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근데 이건 원전 커리큘럼에 해당하는 예시고.
이런 커리큘럼이 5~6개는 되는데.
1학년 기초화학, 기초생물학 -> 2학년 생화학 -> 본1 생리학 미생물학 -> 본2 병리학 약리학 등등
그리고 또
한의학개론 -> 한의학원리론 -> 한방생리학 -> 한방병리학
이거 예과 과정 때 한의학적 사고 방식? 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사유하는 시간이 없으면
(이게 개론에서의 중의 단계에 해당한다.)
본1 때 한방생리학, 본2 때 방제학, 병리학같은 거 하면서
뒤늦게 이 개 무당 내용 왜 공부하는 거지? 이런 생각하게 된다.
이제 슬슬 감이 올 것이다.
'중의 단계' 에 해당하는 정도의 공부를 해야 한다. 매년.
비단 한의대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당장 내가 있는 학번에 해당하는 과목의 필요성은 보통
그 다음 학년이 되어서야 느끼게 된다.
내가 당장 3년 전의 나에게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갈 수 있다면 이 말을 해주고 싶다.
그리고 임상에 나간 한의사들이 학교 내용은 임상과 다르다고 하는 말...
이건 나도 아직 학부생 찌끄래기라 와닿지는 않지만.
결국 임상에서는 자주 오는 환자들은 대충 무슨 병에 걸려 오는 게 정해져 있고.
그에 맞는 처방만 잘 알고 있으면, 그래도 의사 노릇은 할 수 있다.
학교 때 별의별 쓸데 없는 거 공부해봤자 결국 임상에서 쓸모 없다...
뭐 이런 의미인 것 같다.
맞는 말같다.
근데 내 생각은... 학교 공부는 폴더를 만드는 것이다.
임상에서는 수많은 환자와 접하면서 여러 가지 파일들이 생기게 된다.
그 파일들을 넣을 폴더가 정리가 되어있으면 되어있을 수록 임상에서 쌓은 데이터들의 축적 효율이 확연히 다를 것이다.
폴더가 대충 정리되어 있어도
국시 쳐서 어쨌든 면허 받은 한의사들이라면 바보들이 아니기에
임상 뛰면서 자체적으로 폴더를 정립할 수 있는 건 당연한 소리다.
그래서 학부생 때 공부를 대충 해도 상관이 없다는 건데...
모르겠다. 적어도 손해 볼 일은 없지 않을까?
내가 한의대 적성과 관련해 고민할 때
아버지가 아는 지인 한의사 분들 3명을 소개해주셨다.
다들 월에 순수입 4~5천은 되는 분들이었는데, 특징이 있었다.
진료 시간 끝나고 공부를 ㅈㄴ 열심히 하신다...
사실 임상에 나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은 학교 지식만 있는게 아니다.
사람 다루는 능력, 경영 능력 등등 뭐 많다.
그러니까 학교 다닐 때 대외활동 많이 하면서 사람 많이 만나 보라고 하는 건
내가 생각해도 피와 살이 되는 조언같다.
근데... 그걸 나같은 인간은 '공부 안해도 된다'라는 단편적인 내용만 수용해버리니까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인간들이 유급생이 된다. 나처럼...
그리고 본2인데 어제 경혈학 공부하는데 본1때 했어야 될 기본 지식들조차도 없어서
애 많이 먹었는데... 자괴감 들어서 쓴 글이다.
결론은 공부하자.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학교 오기 전 셔츠 없어서 중학교 셔츠 입음 와서 외투 잃어버림 학원 가려는데...
-
kbs 리비에스 0
리비에스 좋다고 개씹 goat라고 하는 말이 많던데 김은양 안듣는 사람이 볼정도로...
-
요즘 수학 해설강의 보는거보다 해설지 보는게 더 편함 나만그럼? 1
맞춘 문제든 틀린 문제든 해설강의 틀면 집중 안되고, 잡생각 ㅈㄴ들고 흐름 놓쳐서...
-
작수 14 15 20 21 22 틀렸구요 미적은 28 29 30 틀렸습니다 수학...
-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구독하려고 지갑 꺼냄
-
내 맘은 그대론데 떠나는 그대는 왜
-
정말 어떻게 국어를 올려야할까요 재수하고 인서울 공대갔다가 미련남아서 2년만에...
-
씹수의 레전드 수업 1 11
시작하자마자 온갖짜증내면서 너네 출결점수 0점이니까 앞으로 다 만점받아도...
-
g(t)->f(s)로놓고 미분하는거 ㅈㄴ 어지러우면 다시 통런해야됨?
-
안녕하세요, 오르비 전자책 "만31" 저자 콩콩이입니다....
-
군휴학 질문 0
26학년도 정시 원서 쓰고 합격 뜨는거 보고 군대를 26년2~3월쯤에 입대하고...
-
2025.03.26(수) 실시된2025학년도 3월 고3 모의고사 수학영역...
-
이거 시발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수학 노베고 3월 중순부터 레알비기너스 듣고있고 5월부터 프로메테우스 하려고 하는데...
-
2025.03.26(수) 실시된2025학년도 3월 고2 모의고사 수학영역 손해설...
-
[FIM] 41번 문풀(생소한데 간단하다 with 171121) 0
난이도: 6.8/10 구간을 나누고 절댓값이 필요하고 미지수를 풀어내는 식이...
-
왜 뎊콘역할을 이사람이하냐 이제
-
질문 들어와서 보는데 시가 좀 어려운 듯… 근데 소거법 쓰면 답 내긴 어렵진 않은듯
-
ㅋㅋㅋㅋㅋㅋㅋㅋ 0
-
수1인데 수2 같은 문제도 있네 던지고 드릴 풀까
-
4일연속 음주 0
내 간…
-
벚꽃 이펙트 뭐노 ㄷㄷ
-
계획을 깨버림
-
만우절 2
천우절 백우절 십우절 우하하
-
감기 언제 낳지 2
-
상대 성격이 워낙 연락도 귀찮아하고 뭐든 혼자 하는걸 선호하는 타입이라..어떻게...
-
헷갈리네 냉찜질 맞죠?
-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수능 영어 문제 풀이 라고 하면 여러 스킬이...
-
[속보] 원/달러 환율 주간 종가 1472.9원…금융위기 이후 최고 1
[속보] 원/달러 환율 주간 종가 1472.9원…금융위기 이후 최고
-
허들링 0
인강으로 스블 듣고 있는데 허들링은 인강 안될 거 같아서 현강 대기신청 걸어놨는데...
-
팔로우를 몰래 누르고 도망가시는 분들이.. 저는 도움이 되지않는다구욧
-
생2는..? (08입니다) 만점이 목표입니다 지구는 해야할거같구요 생지가 정배일까요
-
착한 오르비언 구합니다^^
-
병원가기 귀찮은데 그냥 며칠 조심하면 낫나요? 절뚝거리면서 걸을 순 있습니다.
-
실물 본 고대생 계신가요..ㅠ
-
대체 누가 그런 말을 한 거지 그랬으면 좋겠긴 한데;; 재수생 파워 어케 이김;;
-
학원가야지... 0
오늘은 3월학평 지1 해설 할 수 있겠지...?
-
고3 평가원 교육청 기출부터.. 참 다양하다
-
몇 등급 나올까? 작년에는 대참사였는데
-
수능용이 아니긴하지만 풀어보신분들 어떠셨나요???
-
환율 ㄹㅈㄷ 3
대통령 없이 계속가면 1500원 넘겠는데 빨리 뭐든 해봐라
-
6모 신청 0
잇올도 실패하고 모교도 일찍 마감되면 어디서 봐야할까요.. 그냥 성적표만 나오면 되는데..
-
이 y=x와 fx 교점 + 그 y 값인 fx의 x 맞나
-
여자랑 연애하면 성향이 양성애자(남자를 더 좋아하긴함)->이성애자로 바뀔까?
-
지난 1회 공모전 https://orbi.kr/00069328804 에 이어 2회...
-
의대 궁금한점 6
1.등록만 하고 수업거부 계속하는건가요? 2.증원백지화가 아니라 26정원만 일단...
-
그래야 노예 공급이 많아져서 싼가격에 노예 부릴수 있거든 그리고 생존본능 가진...
-
5만원 애미 아니 여기 사람들 다 피는데 ㅋㅋㅋㅋㅋ
-
어떻게 할까요ㅠ 0
제가 재수생인데 부모님(엄마)이 간섭 받을거면 지원해주고 안 받을거면 집 나가라고...
지피지기님이십니까
극 공감... 본1본2때까지 기초과목 대충 공부하다가 임상과목 공부하려면 기초 열심히한 동기보다 수십배는 노력해야 비슷한 수준이되고 결국 임상에서도 학교공부가 베이스가 되는데 그걸 등한시해버리면 술기만 쌓여가지 기초가 없고 방향성이 곧게 가지 못할듯...
'놀아도 된다' ㄹㅇ 공감ㅋㅋㅋㅋ정시 n수에게 노는건 출석조차안하는건데
수시러의 놀아도된다랑 정시러의 놀아도된다는 많이 다른거같음ㅋㅋ
딱 수시러의 노는거죠 특히 학종수시러의 노는 느낌
놀라는게 적당히 평균은 될 정도로 공부하면서 놀라는건데 말 그대로 걍 놀아버리는 애들이 늘 보임
ㅜㅠㅠㅠㅠ공부 하나도 안해서 벼락치기 하고 있던 예1 깨달음 얻고 갑니다 열심히 살아야겠네요....
현재 서울대가 아니라 한의대 재학 중이신가요?
너무궁금해서그러는데 아버님께서 소개해주신 한의사분들이 진료시간 이후에 하시던 공부가 대략적으로 어떤 공부인지 궁급합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생존전략에 대해 글 쓰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사실 모든학문이 그렇듯..그뒤과정에 앞에 배운것이 필요한경우가 많은것같아요
한까에서 무사히 오게된 그 과정도 듣고싶어요
글쎄요 .. 저는 유급만 면하고 탱자탱자 놀면서 (항상 하위 20%안쪽) 마지막 학년까지 왔는데 후회는 없어요 학교 공부는 진급하면서 얻은 지식만으로도 충분한거 같아요
차라리 사람 많이 만나고 다양한 경험하고 정 공부하려면 참관가거나 다른 임상 공부 하는게 나은거 같네요 가치관의 차이죠
제대로 공부하면 당대에는 잘 몰라도, 졸업하고 필드에 나갔을때 모르는게 나오면 어디에 뭐가 있다는 정도는 앎
소소소소소로 졸업하면 기본적인 변증조차 하나도 못해서 한약 처방 자체가 불가능하죠. 근육 공부도 학교 시험에서 해놔야 그걸 밑천으로 근육학적 침 치료가 가능하구요.
하......., 중간고사까지 놀았는데 이제 공부해야겠네요ㅠㅠㅠㅠ
아... 오랜만에 오르비 구경왔다가 뼈 뚜드려맞고 공부하러 갑니다.. 감사해요ㅜㅜㅜ
모든 메디컬에 해당하는 이야기인듯
중간고사 망하기 전에 올려주시지ㅜ

이걸 몇달전에 봤어야 하는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