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나누나 [682570] · MS 2016 · 쪽지

2020-12-25 15: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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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 병장의 군수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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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올해와 저의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았군요. 이제 전역까지 11일 남았는데 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는 군생활도 이제 끝나가서 아쉽기는 개뿔 매우 기분이 좋습니다 ㅎㅎ^^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제 딱히 부대에서 시키는거도 크게 없는 한량이기도 하고 저의 생활을 추억도 해볼겸 군수썰을 일기형식으로 풀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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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은 나에게 최악의 해였다. 모든 일들을 나 말할 수 없겠지만 학업도 연애도 다른 모든 것도 다 내가 뜻한대로 안되었고 결국 난 완전히 지쳐버렸다. 가장 날 허탈하게 만든 것은 내 22년 인생 한번도 내가 진정 행복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 없이 맹목적으로 잘나고 명예로워 지는 것을 위해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었다. 원래 나는 군대를 갈 생각도 없었고 대학원을 간 후 전문연구원으로 복무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난 이러한 상태로 더이상 학교를 다닐 자신이 없었고 1학기 기말고사 시즌에 그냥 휴학을 할까 군대를 갈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 군대를 가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과방에서 친한 복학생 형들에게 군대를 조건없이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을 물어보았고 육군 추가모집이 있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 추가모집에는 상당히 많은 보직이 있었고 나는 형들에게 가장 괜찮은 보직을 물어보았다. 그러더니 거기있는 형들이 다 이 중에선 운전병이나 탄약관리병이 괜찮다고 했다. 운전면허는 있지만 장롱면허라 자신도 없었고 결국 반신반의한 상태로 7월에 입대하는 탄약관리병을 신청하였다. (만약 안물어봤으면 야전가설병 신청할 뻔 했다. ㅈ될뻔......)


기말고사를 위해 시험공부를 하는 것 조차도 내겐 너무 버거웠다. 그냥 기말고사도 치지 말고 휴학을 하고 집으로 내려갈까도 계속 고민했다. 하지만 중간고사를 상당히 잘 친 상황이었고 여기서 물러나면 현실에서 도망친다는 느낌이 들 것 같아서 끝까지 꾸역꾸역 공부했다. 사실 군대를 간다는 결정 자체가 현실에서 도망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버릇처럼 하는 말처럼 그때는 군대로 도피하는게 나의 최선택이었다. 결국 꾸역꾸역 기말 공부를 하였고, 나의 3학년 1학기의 성적표는 4.2로 나름 입학 후 최고 성적으로 마무리 하였다.


기말고사 후 많이 남지 않은 군 입대 전까지의 시간동안 나는 나의 삶에 여태 없었던 마음의 여유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예전에는 서울에서 여유 없이 살아서 느낄 수 없었던 고향으로 내려가 벌써 전역한 동네 친구들과 피씨방을 가거나 술을 마시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는 등의 일상적인 일들을 즐겼다. 그리고 한번도 해본적 없던 혼자 하는 기차여행도 해보았다. (솔직히 혼자 여행하는거 재미없다. 난 비추) 그래도 그 시간동안 빠짐없이 했던 생각은 나는 어떤사람인지와 내가 무엇을 하면 행복할지 였다. 정말 쉬운것 같은 문제이지만 정말 답하기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사실 누가 이런 생각을 하겠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량들의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하며 지금 하루하루 살아가는거도 버거운데 왜 저런걸 생각하냐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건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자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이는 어떠한 일을 하던 실패할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입대 전 후의 생각이 많이 바뀐다고 하지만 나는 결국 내가 무얼 하면 행복할지와 전역하면 무엇을 할지에 대해 어느정도의 답을 정한 후 입대를 하게 되었다.(19년에 마지막으로 쓴 글 참조)


입대날은 엄청 더웠다. 더군다나 난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갈 논산이란 곳은 왜이리 집에서 멀었는지.... 가족들이 모두 나의 마지막을 배웅해 주려고 갔다. 하지만 어머니가 길을 잘못 들어서 2시까지 입영심사대에 도착해야 했지만 시간이 촉박했다. 결국 마지막으로 짜장면을 먹고 들어가야 겠다는 나의 생각은 보란듯이 무너졌고 겨우 2시에 맞춰 1시50분에 입심대에 도착했다. 아마 군필들은 알것이다. 입대 전에 마지막으로 먹는 사회의 음식을 못 먹고 들어간다??? 이 스트레스는 말로 할 수 없었고 솔직히 마지막으로 부모님이 배웅해 줄 때 표정관리가 잘 안되었다. 하지만 그런 짜증은 엄마와 누나가 울면서 건강히 잘 다녀 오라고 한 말에 녹아 없어졌고 절대 울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이 무색하게 눈에선 눈물이 떨어졌다. 그렇게 나의 훈련소 생활이 시작되었다.


사실 훈련소는 별로 재미가 없었고 그냥 너무 더워서 힘들었던 기억밖에 없다. 분위기도 내가 살면서 느껴본 적이 없는 매우 고압적인 분위기였고, 무엇보다도 알동기들은 나에 비해 나이가 어려서인지 생각이 어려서인지 말이 잘 안통했다. 사실 서로가 살아온 세상이 너무 달랐고, 그러다보니 서로가 하는 말에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애들이라고 해봐야 거의 20살이 대부분이었고, 애들이 하는 이야기는 내가 몇명이랑 사겨봤니, 누구랑 자봤니, 고등학교때 보호감찰을 받아봤니 등의 중고딩 일찐티를 못벗어난 이야기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말이 통하는 몇몇 동생들 덕분에 나름 괜찮게 시간을 보냈다. 결국 내인생에서 가장 긴 40일이 끝나갔고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수료식도 찾아왔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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