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좀한의? [266857] · MS 2008 · 쪽지

2020-12-06 19:09:48
조회수 4,405

오랜만에 로그인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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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욤. 아마 절 아는 분은 아무도 안 계시겠지만 현재 공보의 하고 있는 한의사입니다. 


요즘 누가 수능 본다길래 궁금해서 오랜만에 오르비 들어와 봤는데 여기 분위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비슷하군요.


별건 아니고 지금 수능 망했다고 막 절망하시는 분들이 보이셔서 위로가 될 진 모르겠지만 썰 하나 풀려고 합니다.


전 외고 출신입니다. 지방 출신인데 우연히 외고 시험 붙어서 내가 엄청 잘나서 외고 붙은 줄 알고


펑펑 놀아도 주변 애들 다 연고대네 서성한이네 중경외시는 줘도 안가네 그런 분위기에 휘말려서


나도 그냥 있어도 알아서 연고대, 못해도 서성한은 가는 줄 알고 있다가


현역 수능 수학 3등급 나와서 강제 재수행을 택했습니다.


재수해서 또 당연히 잘나올 줄 알았는데 수능날 순열조합에서 전부 계산 삑사리 나는 바람에 6평 전과목  1개 틀렸던 놈이 지방교대권 나왔고


대학 걸고 삼수 했을때 빌보드도 계속 올라가고 해서 당연히 이번엔 대학 가겠지 했는데 국어부터 멘탈 흔들려서 현역때부터 한번도 한개 이상 안 틀려봤는데 처음 수능에서 2등급 맞아 봤습니다. 수학 2번 틀리는 병신이 어디 있나 했는데 저였습니다. 94점 2등급 나왔습니다.


결국 대학 다시 돌아가서 공무원 시험 준비하다가, 마지막이다 하고 휴학해서 8월부터 딱 3개월하고 다행히 어느 정도 점수가 나와서 목표하던 한의대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쓰지만 당시에 멘탈붕괴 엄청 심했습니다. 삼수 때 연고대 체육학과 쓰고 결국 실기보러 안갔습니다. 어떻게든 연고대 타이틀을 따보려고 지랄을 했었는데 마지막에 이건 아니다 싶어서 결국 실기 안 보러 갔죠 (봤어도 못 붙었을게 뻔하고. 그냥 원서 한 장 날린거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면 그때 힘들었던 기억은 그냥 그랬었구나...하는 추억으로만 남아있습니다.

그땐 진짜 죽을만큼 힘들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래도 그 때 이런 건 재밌지 않았었나? 하는 가끔 미친 생각도 들어요.


여러분 인생 길게 보세요.


지금 실패한 거 마음 쓰리고 죽고 싶은 생각이 드실 겁니다. 저도 그랬고 아마 여러분은 저보다 더 완성된 삶을 사시다가 갑자기 실패해서 더 그러실지도 몰라요.


근데 나중에 보면 진짜 힘들었던 건 생각 안 나고 잘했던 선택만 떠올라요.


매년 그렇겠지만 시험 잘본 소수는 행복할 거고 못본 다수는 괴로울겁니다. 내 노력에 비해 안나온게 억울하기도 할 것이고, 다 원망스러울 거고...


근데 인생이 다 그래요. 저도 대학와서 처음에는 그때 순열조합에서 멘붕 안했으면....국어 시간에 멘탈 안흔들렸으면...쟤는 나보다 세살이나 어리네 좋겠다...이런 생각 했었는데 지금 와서는 그냥 그래요. 쟤보다 3년 더 살지 뭐 하는 생각으로 웃고 넘깁니다. 


다시 도전하시려는 분들에게 행운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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