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쥬✨ [979083] · MS 2020 (수정됨) · 쪽지

2020-11-29 22:28:50
조회수 317

잘자라구해주세요 + 잠깐 얘기 들어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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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그 추위를 다시 느끼는 것 같아요. 서늘하면서도 춥고, 추우면서도 따뜻하고, 따뜻하면서도 설렜던 공기. 서울이란 곳에 처음 올라와서 내가 얼마나 작게 보이는지를 막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하는 감정보단 뜨거운 의지가 더 앞섰던 바람.


수능이 끝나도 세상은 돌아간답니다. 


그러기에, 당신의 인생도 여태껏 그러하였듯, 흘러가겠지요. 우리는 젊음이란 시공간을 지나는 사람들이니까, 추위 속에서도 뜨거움을 볼 수 있고, 한없이 슬퍼보이고 작아보이는 자기 자신 속에서 기쁨을 볼 수 있다고 믿어요. 그게 젊음이 흘러간다는 의미겠지요. 더 나아가 우리의 삶이 흘러간다는 의미일 겁니다.


내가 그 때 느낀 그 겨울 회기의 숨결과 바람은, 20대를 막 시작한 한 소년이었기에 느낄 수 있었어요. 수능은 분명 추운 시험이에요. 날씨도 그렇고, 결과에 따라 운명이 지어지는 그 잔악무도함도 그렇구요.


그럼에도, 결과 그 너머의 것들을 사랑하고, 또 존중할 수 있었으면 해요. 가장 중요한 건 보이지 않는 것이랍니다. 성적표에 적힌 등급과 숫자들만이 중요한 것이라고 세간은 떠들어 대겠지만, 정말 내실이 단단해서 이 세상을 바꾸는 데에 크게 기여하는 사람들은, 그 이후의 것들을 통찰하고 고찰하지요.


난 그 바람을 떠올릴 때면, 겨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재수를 막시작했던 고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따뜻함이 앞선 답니다. 내가 잘났다, 세상을 바꿀 인간이다, 뭐 그런 얘기를 하려는 건 도대체 아니고, 중요한 건 어쩌면 당신 속에 있을 지도 모른다는 거에요.


수능 못 보고 와도 돼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앞으로의 삶에서, 당신이 행복을 거머쥐기를 난 그저 바랄 뿐이랍니다.


오늘도 코로나19라는 대재앙 속에서, 당신의 젊음을 일궈놓은 것에 대해서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잘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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