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 [966253] · MS 2020 (수정됨) · 쪽지

2020-11-24 01: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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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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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하나 보잘 것 없는 나라는 인간은

지난 8개월 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다


죽을만큼은 아니지만 

10시간 미만으로 공부 안한 적이 없었고


학원을 갈 형편도 지리적 여건도 되지않아서

인강에만 의존해서 공부해왔다


나는 별 생각없이 살아서 몰랐는데


사실

나는 노래 듣는 것도 좋아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도 좋아하고

낙서하는 것도 좋아하고

부모님과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는 것 또한 좋아한다

또 나는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하고

드라마 보는 것도 좋아한다


또 돈은 많이많이 벌어서

인생의 목표를 이루는게 내 꿈이다


나는 지금껏 살면서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해왔다

공부의 재미도 재수를 하면서 알게 됐고

취미생활이 뭔지 드디어 알게 됐다

어렸을 때 부터 게임에 빠져서 시력도 완전 나쁘고

시골 촌구석에서 용이나는 경우는 드물다 생각해서

그냥저냥 하루벌어 하루먹고 살겠지라는 생각으로

공부도 안하고 놀기만을 좋아하고

툭하면 대들고 싫은 소리 하고

항상 이기적이였고 이중적이였다

밖에서는 가면을 썼고 집에서는 짜증을 냈다


또 나는 태어났을 때 의사 선생님들이

두개골이 벌어지지 않아서?

하여튼 모종의 이유로 얼마 못산다고 했다


내가 태어났을 땐 주위 어른들의 환호가 아니라

한숨과 눈물로 태어났다

누구보다 사랑받았어야 할 내가

누구보다 연민을 받게 된 것이다


심지어 엄마는 나를 낳기 전 삼신 할머니 꿈을 꾸셨고

삼신 할머니는 썩은 복숭아를 건네주셨다고 한다


그렇다 나는 썩은 복숭아다

우리 부모님은 날 남부럽지 않게 키워줬는데

난 스스로 날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어렸어서, 세상을 몰랐어서 라고 변명하기엔


그당시 나도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침대에 누우면 그날 하루동안 내 잘못이 뭔지 알고 있었지만,

고치겠다는 다짐은 하루를 넘어가지 못했다


그렇게 썩은 복숭아처럼 살았는데


2020년 올 한해는


나에게 너무도 많은 선물을 줬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뭔지 진짜 알게해줬고

내 인생의 목표를 세울 수 있게 해줬고

내 모난 마음과 성격을 조금이나마 유들유들하게 바꿀 수 있게 해줬다


그래도 나는 지금 존나 무섭다

내 그간의 노력이 하루만에 평가받는다는게

그리고 내 결과를 내가 어느정도 짐작이 간다는게

내 노력의 씨앗의 결과가 발아하기엔 아직 많이 부족해서

분명 난 그날 밤 혼자 울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너무 행복하다


사는게 뭔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뭔지

하루하루가 너무나 새롭고

시간이 가는게 너무나 아깝다


이런 감정의 영향이 내 대학 입학에는 못미칠지라도

앞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좋은 영향력을 미칠거라고 굳게 믿고있다


엄청 역설적이지만

내 수능은 망할거다 사람들은 속으로 피식 웃고 지나갈 것이다

거봐 공부가 쉽나라는 소리도 들을거고 난 동네에서 쪽이란 쪽은 다 팔것이다


수능은 실패해도 내 인생이 실패하진 않았다

8개월 공부하면서 올라간 성적과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순간들

육체적으로 얻은 잔병치레들


그냥 이 모든게 2020년 이라는 전쟁을 끝마치고 남은

흔적이고 상처고 후유증이고

이것들을 그냥 훈장쯤으로 간직하고 싶다


전쟁이 끝나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서 강대국이 될거다


난 지금 현재가 너무 만족스럽고


누군가 내 노력의 시간들을 인정해줬으면 좋겠지만

스스로도 얻은게 많아 만족스럽고


남들보다 늦게 인생을 의미있게 사는걸 시작하지만


누구보다도 돈 많이 벌어서 한살이라도 젊을 때

다 갚아주고 싶다


이 지긋지긋한 빚더미와

나를 괴롭히는 열등감에서


이제 나는 더이상 썩은 복숭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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