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단약기14)겨울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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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목을 보면서 나그네의 발자취를 떠올리는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뜨거우면서, 외로운 것일까. 나는 그것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 일반적인 겨울나목에 대한 인식은 춥고, 쓸쓸하고, 가난하고. 근데, 그런 나무의 모습 속에서 나그네를 떠올렸다는 건, 자신의 인생 전반이 열정과 고독으로 요약되었던 것.
그게 어른의 깊음이자, 푸르른 치욕이구나.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은 거구나. 자신의 삶을 아끼고 싶은 사람일수록, 그 깊음과 치욕을 인생에 더 가까이 둘 수밖에 없는 거구나. 그래서 나목을, 한 쓸쓸함을, 그것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삶이란 여행을 시작했던 나그네라고 볼 수도 있는 것.
공황에 걸려보니, 이 생각에 확신이 들었다. 삶의 중심을 세상에빼앗기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다보니, ‘나그네’로서의 면모를 유지하기 위해 살아가다보니, 필시 치욕을 겪게 되는 거구나. 다만,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삶의 진중함을 알 수 있거든. 이 깊음 속에서는. 그래서 이 깊음을 조금 더 즐기려고 한다. 우울해져도 어쩔 수는 없는 거다. 그 속에서 다시 행복을 찾아야만 한다. 그래서, 푸르른 치욕을 견딘끝에 봄의 정기를 맛보고야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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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스스로 작사 작곡을 시도할만큼 힙합장르를 사랑하지만 (작업물도 있다) 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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