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쥬✨ [979083] · MS 2020 (수정됨) · 쪽지

2020-11-12 12:4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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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를 치르며 불편했던 것 - 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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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얘기를 수능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선에서 꼭 한 번은 하고 싶었답니다. 잠시, 인생의 굳건한, 운명 아닌 운명 속으로 빠져들기 전에 생각할 것이 몇 가지는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근데, 길고 길었던 내 입시 생활을 기준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보려고 합니다. 불편하신 분들은, 반박하실 분들은, 잠시 내 얘기를 충분히 듣고 이 이후에 말씀 주세요.


#0. 오르비의 아픔 

여긴, 수많은 자료가 있고, 수많은 공부 비법들이 있지만, 동시에 수많은 아픔과 외로움이 존재하는 곳이라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고3, 재수, 삼수 내내 이 사이트에 몸 담으면서, 내게 찾아왔던 친구들을 보면 압니다. 죽기 직전의 상황에서 당신의 말을 듣고, 당신의 생각을 보고, 조금은 용기가 생겼다고 순수하게, 그리고 정성스레 마음을 전해주는 그 친구들을 보면은요. 그리고 입시와는 거리를 멀리 두고, 삶을 살아가는 씬들을 공유하는 지금도, 그런 고마운 인연들이 여전히도 찾아와주시는 것을 보면은요. 


난, 이 아픔의 근본이 결국은 "수치"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죠. 0.5%는 서울대, 1~2%는 연고대, 2~3%는 서성한, 4~6% 중경외시 / 건동홍. 우리가 받은 성적들, 우리가 보내온 과정들, 시간들이 엄격한 수치로 변화되어, 결국 수험생활을 치르면서 문득 느꼈던, 무엇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쓸쓸한 감정과 외로운 감정,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감, 어쩌면 강박? 더 나아가 나 자신이 내게 주었던 자부심과 자존감? 그 모든 것들의 순수함을 의심하게 되지요. 내가 받은 숫자가 낮아지게 되면 말이에요! 그래서, 이 사이트에 삶을 살아가는 얘기를 조금 감정 섞여 얘기하거나, 공유하거나하면 몇몇은 욕했던 것입니다.. 대치동에서 느꼈던 외로움과 아픔을 기록하는 것이, 여기 계시는 몇몇 사람들에겐 "수치"와 전혀 관련없는 에피소드이므로, 하나의 "똥글"로서 치부되었던 것.


뿐만이 아니라, 때론 이 수치 가지고 싸우지 않나요?


건동홍숙이니, 숙카이니, 숙중경외시니, 결국 치열한 토론이라는 그럴 싸한 미명 아래 감춰진 숫자 놀음에 불과하지요.

이를 바라보는 수험생들의 기분이 과연 어떨까. 물론, 하루 동안 공부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어내기에 이같이 좋은 떡밥도 없겠지요. 하지만, 한편으론 분명 "허탈"하실 겁니다. 우리가 이토록 치열하게 살아내는 목적이 무엇일까.

정말, 이 대학 간판만을 위해서일까. 수치의 업그레이드를 위해서일까. 이런 고민을 하시면서요. 


#1. 지금에서야 보이는 길

나 또한, 수치의 고저가, 내 젊음의 질을 책임져줄 거라 굳게 믿었습니다. 대학의 간판을 따서, 더 좋은 대학교라 평가받는 곳에서, 내 젊음을 펼쳐내면, 그 값과 가치가 정말로 높아질 수 있다 믿었던 것이지요. 2017년도 당시부터 나를 알았던 사람들은 조금 의아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때 당시에 내 글엔 분명 "대학이 다가 아니다"란 말로 가득찼었는데.

결국, 그렇게 얘기했던 나도 속으론 다른 이상 아닌 이상에 매료되었던 것이지요. 


대학 그 이후에 펼쳐지는 삶. 그것들 또한 좋은 수치로 채울 수 있다면, 정말로 나의 젊음은 빛날 것이다.


근데 그게 아니었던 것 같아요.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겪으면서 다시 한 번 진실되게 깨달았습니다. 삶의 행복, 그리고 만족? 그건 숫자로 설명되지 않더라구요. 내 우울과 공황을 치료해줄 정도의 행복은 길고양이들에게 있었구요, 내 마음의 진심에 있었구요, 하루를 고단하게 살아감에 있어 감사함을 느끼는 그 솔직함과 선함에 있었지요. 그리고, 나의 자존감, 자부심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얘기들. 


좋은 대학에 가는 것도 물론 좋습니다. 다만, 못 가면 어쩔 건데요? 못 가면 삶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하나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수치에 굴복해야 하는 족속들인가요? X.


이 입시를 준비하면서 느끼는 감정들 있죠? 그리고, 그 감정들로부터 오는 자신의 순수, 실체있죠? 그게 결국 그 이후의 삶에서 당신에게 만족을 가져다 줄 거에요. 잘 한 번 생각해보면 좋을 듯해요. 수능이 며칠 안남은 이 시점에서 내게 다가오는 그 불안감이라는 적을 하나의 "아군"으로 만들어보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 난 그 사람이 진짜 대학에서 멋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봐요. 그 사람은, 단순히 자기 자신에게 다가왔던 감정을 쓰레기로 여긴 것이 아니고, 수치의 반역자로 여긴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조각으로 여긴 거니까요. 또 그 조각에서 진정한 자기자신을 찾은 거니까요.


단순히 불안감이라는 감정만 그럴까요? 아니에요. 슬픔, 허탈감, 외로움, 아픔, 우울감, 기쁨, 등등의 모든 감정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낼 수 있어요. 그래서 난 수능의 의의가 무엇이냐, N수의 의의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이 감정들을 조금 더 진솔하게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더 주어진다는 것을 꼽습니다. 재수생들은 아실 텐데요. 이 쯤 되면은요. 무엇으로 설명은 못하겠지만, 내가 정신적으로 더 성숙해진 것 같다는 걸요.


사실 그 실체가 나는, 자신의 "감정" 공부에 있노라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세계의 삼라만상이 나를 건드리지 않으니, 나의 시선은 자연스레 나에 맞춰지게 되고, 그 과정에서 나의 감정, 나의 색깔, 재능, 순수 따위의 것들을 공부하게 되었을 거고 - 물론, 입시 공부도 많이 했겠지만 -, 그 결과 이전보단 나의 성격, 모습이 더 자세히 보이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 길을 부끄럽지 않게 걸어왔단 것만으로도, 나는 승자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이 시기에서 얻어가야 할 것은 다 얻어간 거니까요. 입시 결과가 따라주면야 더할 나위없이 좋은 거고, 따라주지 않더라도 기 죽을 이유가 전혀 없다고 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공황과 우울을 이겨내면서 내게 새로운 길이 보입니다. 나. 내 자신이 그곳을 향해서 나아가라고 말합니다. 위기감, 불안감이 있어도 어쩔 수없다고 말합니다. 이미 심장은 그리로 뛰고 있다고, 이미 생각은 그리로 향하고 있다고, 그러니 세상이 말하는 수치에 상관쓰지 말고, 여기 곤두 서 있는, 굳건히 서 있는 젊음의 빛을 감상하라 말합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이 빛을 보고 싶습니다. 당신도, 부디 이 빛을 볼 수 있길 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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