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쥬✨ [979083] · MS 2020 (수정됨) · 쪽지

2020-11-07 17:3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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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 단약기11)공황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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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웹사이트에 나의 병에 관한 일지들을 기록해가다보니, 가끔 공황장애에 걸린 수험생들이 나의 도움을 구할 때가 있다. 이런 증세도 공황일 수 있느냐, 요즘 기분이 이러이러한데 우울증 증세냐.. 여러가지 아픈 질문들. 사실, 별것도 아닌 사람인데도, 다급한 감정과 어조로 나의 상황이 지금 우울증에 해당하냐고 물어보는 것이 너무 고맙기도 했고, 한편으론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정말, 이것이 모두에게 통용되는 길일 수 있을까란 생각을 요즘 하게 된다는 것. 공황장애는, 심장 두근거림, 오한, 구토, 두통과같은 증상이 복합적이면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이상현상을 말한다. 따라서,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 함은, 매일 2-3차례 1시간 30분 정도 지옥불을 견디는 것이다.


그런 아픔을 겪을 수도 있으며, 또 개인적 상황에 따라서는 그를숨겨야만 함을 요구하는 이 사회 체제가 옳은 것인가. 요즘 들어선 그런 생각이 든다. 건강했던 사람들이, 누구보다도 밝았던 사람들이 이 수능 시험이라는 관문 앞에서 처절히 무너지고 있는 것을 보니, 이 길에 대해서 회의스럽지 않을 수 없다. 


젊음이 머금은 ‘Identity’가 통용되는 사회. 그것이 자본의 원료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가 앞으로 우리 사회의 모델이어야 한다고 본다. 지금의 교육엔 ‘정체성’이 결여해있다. 교육의 목적이 표면적인 레테르가 된 지는 너무나도 오래되었고,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공부를 하는 사람보다는, 이 세상에서 처절히 살아남기 위해 공부하는 환자들이 압도적으로 늘어난 지도 너무나도 오래되었다.


그렇게 해서, 대학에 가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천만에. 취업 전선이란 또 다른 전쟁이 기다리고 있고, 그 전쟁에서 ‘대학 입시’의 승리는 큰 기여를 보태지 못한다. 그렇다면 젊음들이 이 전쟁에서 상처받아야 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그런 건 없다. 그저, 원인없이 다가오는 아픔을 어떻게 견뎌내어 무찔러야 하는 지를 공유하는 게, 나로선 최선인 성싶다.


공황에 걸려보니 한 가지는 깨달았다. ‘불안’이라는 것은 인간이느낄 수 있는 최고의 심정성이라는 것. ‘불안’하다는 것은, 내가 나를 살아가는 내내 문제시 한다는 증거 중 하나이다. 즉, 탁월한 심정성이다. 대부분 불안의 맥락은 다음과도 같다.


‘내가 -할까봐 두렵다.’ ‘내가 -하지 못할까봐 두렵다.’ ‘누군가가내게 -할까봐 두렵다.’ 불안이란 심정성은 모두 ‘나’ 자신을 문제시한다. 즉 다시 말해, 나의 개시성을 증명하는 감정이다.


불안하다는 것은, 어디로든지 갈 수 있는 내가 ‘여기’ 있다는 방증이다. 곧, 불안하다는 것은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 불안을 남들보다도 더 마주하는 공황장애 환자들은 분명,이 병을 극복해냄과 동시에 자신만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불안을 이겨낸 사람은, 자기 자신이 어디로든지 갈 수 있다는 걸 안다. 그 불안 증세를 이겨내면 이겨낼수록, 자신의 자유는 비례해서 커진다. 그래서, 이 세상의 틀을 꿰차고 나갈 수 있다.


나에게 시도때도 없이 다가오는 불안을 나의 현현으로 여기고, 그것에 굴복하기 보다도, 그것을 이용해서 나 자신을 터득하면 터득할수록 사회의 틀은 환상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이 공황이란 아픔을 감내하면서까지 수능에 목 메달지 않아도 된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있다. 결국 공황이란 불안의 강도와 빈도를 삶에 더 끌고 오는 것. 그 속에서 잠시 나의 비본래성을 제쳐두고, 나의 본래성을 깨달아가면 더 나은 삶의 섬광으로 건너갈 수 있다. 이 불안을 한 번 이겨내면, 분명 그 탁월한 깨달음이 몸에 자리잡을 거니까. 그 이후에 수능을 준비한다면 더 구체적인 목표가 스스로에게 제시되므로 행복한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아픔을 감추면서까지 수능에 목 멜 이유는 없는 것.


그래서 내게 공황을 호소하며, 고민을 털어놓는, 나와 나이가 비슷한 빛의 젊음들에게 말해주곤 한다. ‘미리 축하한다고’.


수능이란 세계에 던져진 사람들은, 그저 그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태로 공부할 뿐이다. 그 안에서 마주하는 불안이라는 아픔. 그것에 우리 자신이 있고, 진정한 우리의 삶이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불안이란 감정선을 기준으로, 두 부류의 사람으로 나누어진다. 불안을 이겨내어, 자기 삶으로 기획투사(Entwurf)하는 사람과, 불안에 굴복하여 세상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는 사람. 나는, 본래적인 기투를 하는 사람들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말하고 픈 것은 도대체 아니다. 아파도 청춘이란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아프면 어때, 이겨내면 더 밝은 청춘이 되어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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