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쥬✨ [979083] · MS 2020 (수정됨) · 쪽지

2020-10-29 19:17:12
조회수 800

공황장애 단약기10)내가 미친놈처럼 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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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주위사람들로부터 어떤 측면에선 비난을 받는 삶을 산 것 같다. 남들 다 하는 야간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을 고등학교 2년 내내 신청하지 않았었고, 고3 때 수능 보기 2달 전부터는 학교도 나오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이랑 싸우기 싫어서 그냥 생기부에 무단결석 60일 박힐 각오를 하고 안 나왔었는데, 감사하게도 현장체험학습 2달간 인정해줄테니 편히 니 시간 보내고 오라고 하셨다.


재수 때도 이 라이프 스타일은 바뀌지 않았던 것 같다. 수능을 철저히 잘 보기 위해 모든 집중이 등급 하나만을 향해있는 러셀에서 나는, 항상 책장에 시집과 소설을 두었다. 수능을 망치는 지름길이란 걸 알았으면서도, 꼭 읽어내고 싶었다. 국어를 풀다가, 감정에 적셔지는 날이 많아서, 내게 문득 스치듯 들어오는 그 아픔의 실체를 알고 싶었으니까.

이 기회가 아니라면, 이 시간이 아니라면, 이 인연이 아니라면, 나는 평생 그 책을 펼치지 못할 것 같았다. 으레, 감정이란 먼지와도 같아서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날아가버리니까. 


삼수라고 달라질까. 재수 때, 나만의 생각을 가지는 시간을 넓히면서,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지평이 확장되었음을 느끼고, 더 많은 생각과 더 많은 감정을 기억하기 위해서 "나"라는 과목에 시간을 투자하는 양을 더 늘였다. 여담이지만, 그 시간에 만났던 책 속의 이야기들과 주인공들은 아직까지도 내 가슴 속에 깊이 새겨 있다. 


그리고 지금. 우울과 공황에 걸려, 세상이 나를 부정하는 그 기분에 사로잡혔음에도, 그 라이프 스타일을 이어나가고 있다. 관심도 없는 과목의 학점을 굳이 이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면서까지 따야하냐는 질문도 때론 교수인 아버지 앞에서 던지질 않나, 대학은 갔더라도, 졸업은 최대한 늦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질 않나... 



근데 이 역사가 내가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난 재능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지금 당장은 어른들이나 친구들에게 비난 많이 받겠지. 취업은 언제 할 거고, 군대는 또 언제 갈 것이며, 무엇으로 돈을 벌어 먹을지, 주어진 길 말고, 너만의 길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 


근데 솔직히 말하면, 그걸 왜 고민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내가 "나"라는 사람을 존중하다보면 언젠가 큰 돈은 자연스레 따라오고, 큰 성취는 자연스레 따라온다고 보는 주의라서. 그냥 "내"가 군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시기가 오면 가는 거고, 그냥 "내"가 대학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기가 오면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하는 거고, 그냥 "내"가 가고 싶은 기업이 생겼을 때, 취업 준비를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내 스스로 이유를 만들어가는 것이 삶 아닐까? 그렇다면 고3, 재수, 삼수의 역사는 결코 미친놈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지 않나? 실패자는 가차없이 병신 취급하는 학교의 분위기가 싫었고, 공부를 잘하는 새끼들만 인간 취급하는 한 국어 선생이 너무 싫었고, 문학 속의 주인공들이 느끼는 감정을 최대한 공감하고 싶었고, 나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싶었고. 그 모든 것들이 결국 모여, 내 우울과 공황을 치유해주었고.


세상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서 공부하지 않는다. 다만, 옆 사람들, 앞 사람들의 취향은 진짜 열심히 공부한다. 유튜버, 연예인, 정치인들에 관한 에피소드는 전부 다 알고 있다. 근데, 정작 나 자신의 진중한 에피소드에 대해선 모른다. 적어도 지금의 세상은 그런 아픔을 가지고 굴러가고 있다고, 나는 보고 있다.


우리네 젊음은 긴 것 같지만서도, 분명 짧다고 생각한다. 탁구장에서 40-50을 바라보고 계시는 어른들이 나의 젊음을 그토록 부러워하고, 어느새 늙어버린 자신을 한탄하는 것을 보면 느낄 수 있다. 이 밝음은 금새 없어지는 찬란함이란 것을. 그러기에, 나는 최대한의 효용가치를 이 시기에 만들어보고 싶다. 


한데, 그 방법은 참으로 간단하다고 생각한다. "나"에 집중하는 것. 학벌이 좋든 말든, 집이 잘 살든 말든, 그런 기준 아닌 기준에 시간 팔아먹지 말고,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를 공부한다. 그 공부가 진행되면 될수록, 내게 좋은 집과 명예는 따라온다. 굳이 그것을 위해서 내 젊음을 다른 이에게 맡길 이유는 전혀 없다.


예전에 수능을 공부하면서, 국어를 가르치던 은사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학사경고를 안 받는 새끼는 대학생이 아니라고. 난 이 말에 어느 정도,, 아니 솔직히 존나게 공감한다. 사고 한 번 안치고 남만을 공부하는 이 세상에서 나를 어떻게 굳건히 공부하려고? 쌍욕 정도는 먹으면서 나를 공부해야 진짜 그게 오래가는 배움이 되는 거 아닌가.


그래서 이왕이면, 앞으로 더 많이 미친짓을 하고 싶다. 나를 위해서. 내가 원하는 행동을,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는 현실적인 "선" 안에서 하는 게 나쁜 일은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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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sshoman 더콰큐 · 962597 · 20/10/29 19:22 · MS 2020

    정말 조금만 탈선하자마자 비정상으로 모는 사회는 너무 잔인한 것 같아요
    돈만 있으면 그냥 하고싶은거 하고서는게 지나고보면 가장 청춘을 잘 보낸 것일 듯..

  • ✨공쥬✨ · 979083 · 20/10/29 19:25 · MS 2020

    개또라이처럼 살아야 됨. 그래야 성공하는 것 같아요. 성공의 기준이야 사람마다 천차만별인데, 10억 100억을 벌고 싶진 않아요. 벌 거라면 1000억, 조를 벌어보고 싶어요. 근데 그러려면, 삶을 과감하게 살아내야 할 것 같더군요. 남들의 말은 참고만, 나의 말은 진리처럼 여기면서 내면에 집중해야 할 것 같아요. 그게 이 세상에서 과감하게 살아낸다는 말의 동치인 성싶습니다.

  • ✨공쥬✨ · 979083 · 20/10/29 19:29 · MS 2020

    대표적인 예시) 빈지노
    미대나오고 갑자기 음악 길로 빠짐 결과는? -> Illionaire signs up!

  • Isshoman 더콰큐 · 962597 · 20/10/29 19:38 · MS 2020 (수정됨)

    일리네어 사인s 업!ㅎㅎㅎ

    사실 저번에 자신의 얘기를 하며든 예시
    빈지노가 서울대미대를 중퇴하고 마이크를 잡았을때
    사람들은 성공을 하고 난 뒤에야 그 행동을 용기있는 영웅다운 면모라고 극찬하지, 성과를 보기 전까지는 포기자로 치부한다, 그런 사회가 너무 싫었다 라는 식으로 하셨던 그 말이 정말
    제 마음을 뭔가 콕 찌르는 것 같았어요

    공감되는 한편,
    저 역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할 수 없는 것 같아 찔리더라고요

    정작 나도 나자신에게나,친구에게나,
    결과를 보고 과거의 행동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나 싶었어요

    굥쥬님 글을 볼때마다
    내가 지금 하고있는 생각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게 되고, 타인과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지는 않는지, 좀 더 주체적인 나라면 어떻게해야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 ✨공쥬✨ · 979083 · 20/10/29 19:41 · MS 2020

    :D 내가 원하는 자신을 그릴 줄 알기 때문에, 누군가가 원하는 누군가를 존중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내가 좋아서 하는 행동인데, 뭐 어쩌겠어." 라는 식의 이야기가 삶에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세계를 더 폭넓게 인식할 수 있다 믿습니다.

    좋은 말씀 너무 고마워요. 나도 힘이 나네요.

  • 보성전문학교 · 987901 · 20/10/29 19:24 · MS 2020

    '내 스스로 이유를 만들어가는 것이 삶' 이라는 말 정말 좋은 것 같아요.. 공쥬님 글을 읽으면 제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지게 되네요. 지금은 수험생이라는 신분에 묶여있지만 저에 대해 깊이 깨닫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어요. 항상 감사합니다.

  • ✨공쥬✨ · 979083 · 20/10/29 19:28 · MS 2020

    나중에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읽어보세요. 이 주제에 대해서 얻어갈 것이 많을 겁니다. 원문이 너무 시적이고 솔직히 너무 개판이어서, 서울대학교 철학과 박찬국 교수님께서 해설을 일일이 달아주신 <존재와 시간, 강독판> 추천드립니다. 시중에 32000원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치킨 안 먹으면 살 수 있습니다.

    고민하실 때, 하이데거의 위로와도 같은 철학을 곁에 두시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요즘, 이 책에 다시 흠뻑 빠져보고 있네요.

  • 보성전문학교 · 987901 · 20/10/29 19:32 · MS 2020

  • 하늬바람° · 910816 · 20/10/29 19:27 · MS 2019

    저는 살면서 나 자신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건 오래되지 않은거 같아요.. 공쥬님 글을 읽을때마다 정말 의미있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셨다는게 느껴져요. 진짜 제 롤모델로 삼고 싶은 분.. 오늘도 좋은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좋은 저녁되셔요
  • ✨공쥬✨ · 979083 · 20/10/29 19:29 · MS 2020

    아이고, 과찬이십니다. 저는 그저 저의 소리에 따라 움직이는 얌체같은 사람일 뿐.. 하늬바람님이야말로 충분히 멋지신 분이라고 저는 늘, 생각한답니다. 감사해요 :>

  • 칠수셍 · 969082 · 20/11/05 18:11 · MS 2020

    독해력이 딸려서 의도를 잘 파악한지 모르겠지만.. 남의 말을 듣지 않아온 걸 너무 내 고집만으로 여기고 이제 조금 타협을 하고 하란대로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그렇다고 공쥬님처럼 무언가를 엄청 열심히 해온 건 아니고 게임하고 싶으면 게임하다가 유튜브도 보다가 .. 쓸데없는 곳에 정신 팔린 게 대부분이었던 거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걸 찾는 거 내 내면에 귀기울여보고 .. 늦었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네요
    늦었다는 건 남들의 기준이 전제되어있다는 거니까.. 그걸 당연시여겨온 저를 되돌아보게 해주는 글이네요 !

  • ✨공쥬✨ · 979083 · 20/11/07 00:15 · MS 2020

    이제야 보았습니다. 때론 그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여유의 경험이 곧 미래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원자재가 되기 때문이지요.

    사실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남들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게 되더라구요. 우리네 삶은 우리네의 것입니다. 그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세상의 소용돌이에 빨려들어갈 뿐이겠지요...

    우리가 진짜 원하는 우리 자신을 그려보아요 :) 괜찮아요. 우리 아직 젊잖아요.

  • 연대사회학과가즈아 · 990373 · 20/11/09 01:54 · MS 2020

    나를 찾는 공부라.. 어렵네요 저도 본능적으로 항상 느끼고 있던건데.. 뭐부터 시작을 해야할지..

  • ✨공쥬✨ · 979083 · 20/11/09 08:32 · MS 2020

    자기 감정에 솔직해져보는 것부터! 이렇다 저렇다 할 정도로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길을 어느 정도 걸어온 사람으로서 말씀드려보면,

    내가 슬플 때 그 슬픔을 그저 단순히 넘기지 말고, 그 이유를 글이나 생각으로 정리해보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나’가 찾아올 거에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 예쁜 마음가짐이 제일 중요한 것이니까요. 이미 잘하고 있어요.

  • 연대사회학과가즈아 · 990373 · 20/11/09 12:44 · MS 2020

    넵 감사합니다 노력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