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보내는 오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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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뜻한 나의 몸 전체를 누가 당겨버리는 기분. 아마, 나는 일어났나 보다. 시야에 몇 시간 전에 내 귀로부터 도망친 무선이어폰 1쌍이 침대 구석에 숨은 걸 보니 확신이 들었다. 추운 날씨. 조금은 더 잘까. 이불을 덮고 잠시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의 소리를 듣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우울과 공황에 걸렸을 땐 바람이 두드리는 소리 마저 차단되었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 지옥이라도 떨어진 듯 몸을 벌벌 떨고 있었기에. 어쩌면, 이 바람의 소리를 내 귀가 허락해주었다는 건, 내 뇌 속에도 점점, 행복 호르몬이 차기 시작했다는 방증일 지도 모를 일이었다.
바람 소리를 더 듣자. 그런데, 맞다! 오늘 해야할 일과 공부는 정해져 있지 않은가. 씻기는 씻어야 겠지 하며 슬며시 일어난다. 욕실에서 얼굴에 물을 뿌리며 곤히 생각에 젖어든다.
"오늘은 어떤 일을 먼저.."
당장 떠오르는 건 역시, 공부다. 그런데 또 다시 부메랑처럼 날 찌르는 질문.
"무얼 위해?"
그러고 보니, 친구놈들도 나랑 같이 다 바쁜 날들을 지새고 있었다. 군대의 시간, 직장의 시간, 학교의 시간, 학원의 시간. 그 종류만 다를 뿐, 그 공간 속에서의 그네들 삶의 변위는 증가하고 있었음을 난 간간히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보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군대 동기들과의 사진, 이름 모를 카페의 음료 옆에 놓인 과제더미 사진, 대학 캠퍼스에서의 연애 사진.. 다들 바빠 보였다. 글쎄, 가끔 그 어플리케이션에 모습이 비춰지는 지인들의 웃는 얼굴을 보아도, 결코 웃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결국, 너도 바쁘고 힘든 건 마찬가지 아니야?"
"그럼 무얼 위해 그렇게 살아가는 거야..?"
근데, 이런 질문을 바깥에서 하면 안 된다. 4차원의 세계에 빠져 살고 있는 놈이라며 욕을 먹기 일쑤니까.
그냥, 욕실에서 내 몸을 한가로이 적시는 중이라서 생각해 본 거야. 어차피, 이런 질문을 던지는 나도 바쁜 일상을 꾸리기 위해 움직이려고 하잖아. 이유따윈 잘 묻지 않으면서.
씻고 나니, 무기력해졌다. 그래, 오늘은 그냥 집에서 책을 보자. 그리고 지금 이렇게 결국 글을 쓰게 된다.
우울과 공황을 이겨낸 자의 특권이 난 이 여유라고 보고 있다. 그들을 내 삶에 끌어 당기며, 나는 한 가지 중요한 걸 깨달았다. 삶은, 내 중심대로 흘러가야 한다는 것. 오늘은 공부를 하는 것이 내 운명은 아닌 거다. 내 삶이 그를 허락지 않으니.
학점, 성적, 입시, ... , 직업, 취업 모두 중요한 가치이고 관념들이지만, 그것을 머금어야 하는 존재는 '나'임에 틀림없다.
내가 그들을 지금 받아들일 필요가 없거나, 어떤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 잠시 그들로부터 떨어지는 것은 잘못된 게 아니다. 대학 좀 늦게가면 어떻고, 학점 좀 못 받으면 어떤가. 이유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삶보다, 이유를 만들어가는 느린 삶이 더 끌리는 요즘이다.
결국, 오후를 집에서 보내기로. 그리고, 오늘 갑작스레 다가온 그 무기력을 책으로, 운동으로 달래려고 한다.
간만에 내가 히나와 호다카를 펼쳐보았다. 날씨의 아이. 신카이 마코토 세계관은 참으로 기묘한 측면이 있다.
<너의 이름은>의 미야미즈, 타치바나. 모두 판타지 세계 속의 인물들이라지만, 실제 세계보다도 더 선명하게, 불편한 현실을 그네들로부터 볼 수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내가 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결국 그것 아닌가? 그렇게 따지고 보면, 국적은 달라도 신카이 마코토는 내 문학 선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명준을 직접 내가 도와줄 수는 없는 데도, 이명준의 이야기를 듣는 이유는, 주위에 이명준과 같은 청년이 있다는 최인훈 작가의 외침을 느끼기 위해서다. 그 과정에서 문학을 감상하는 능력의 성장으로 말미암아서 학점도 잘 딸 가능성이 있겠지만, 뭐. 그건 진짜 부차적인 것이다.
문학을 공부한다는 건, 결국... 이 세계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기른다는 것. 그 다양성을 가능케하는 것이 공감이다. 나는 분명, 히나와 호다카에게 공감하고 싶었다. 기존의 세계 속에서 남다른 색깔을 만들어내고, 그 색깔대로 살아가는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 나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는 소년과 소녀가 있다는 신카이 마코토의 외침을 사랑한다.
느긋한 햇살이 창문에 부딪쳐, 나를 두드린다. 밝아지는 나무들, 동시에 그늘 진 나무들. 그래 보아야, 나뭇잎들은 모두 한가로우니 걱정하지 말라며 나의 시선을 컴퓨터로 되돌린다. 집에서 보내는 오후, 그렇습니다. 집에서 한가로이 보내는 오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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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 되게 좋아하시네요
별의 목소리는 보셨나요?
아직 보지는 못했네요. 별의 목소리는 어떤가요?
너의 이름은이 대중을 의식하고 정제된 느낌이라면, 별의 목소리는 날것 그대로의 감성이라고 할수 있죠. 감독의 취향을 더 잘 느낄 수 있는듯..?
그렇군요. 곧 시간을 내어 한 번 봐야겠어요. 신카이 마코토 세계관에 너무 매료되어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