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쥬✨ [979083] · MS 2020 · 쪽지

2020-10-19 18:55:56
조회수 1,040

공황장애 단약기4)우울증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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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할 것 없이, 생을 포기해도 좋다는 확신이 드는 병. 나는 그것을 우울증이라고 말하고 싶다. 주변을 이루는 나무와, 하늘, 그리고 사람. 이 모든 것이 슬픔으로 가득 적셔진 채, 무언가에 억눌렸었다. 그래, 내가 우울에 걸렸을 적에는. 

처음으로 하늘을 원망했다. 태어나는 것이 이리도 죄스러운 것이냐고. 눈을 뜨는 괴로움, 그리고 눈을 감는 희열감. 그 사이를 오고 가는 나는, 도대체 왜 살아가는 것일까. 언제쯤이면, 이 슬픔의 헝겊은 끊어지는 걸까.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편한 곳에서 내 몸을 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옛날 에피쿠로스가 말했던 그대로, 나는 작은 알갱이로 돌아가게 되는 걸까. 뭐, 어느 편이든 삶보다는 나을 성싶어 나는 나를 혐오했다. 이제껏 살아오며 얻게 된 지위와 지금의 위치, 작은 명예. 이 모든 것들이 무슨 소용이냔 말이냐. 그렇게 따지고보니, 나를 이렇게 만든 어른들이 미웠다.


나를 사랑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것은 필시 잘못된 것이라고, 이 세상에서 나는 배웠기에. 그 죄의식과 맞닥뜨려 나 자신과 더불어 이 세상하고 싸우다보니, 이 우울을 얻었다. 내 아픔은 어린왕자가 명작이라고 칭송받는 이 사실에서 기인했다. 어른들은, 한결같이 책은 많이 읽어야 한다며,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어린 왕자>를 읽어보라 권하지만, 정작 어른들 중에서 어린왕자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삶의 문양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 모자가 아닌 코끼리를 삼킨 뱀을 더 사랑하는 삶이야말로 어린왕자가 그토록 바랐던 것 아닌가? 그런데 왜 모자를 좇아야만 어른들에게 칭찬받는 걸까.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가르치는 교사나 강사는 너무나도 편하게 말했다. '대학'에 가야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병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 커뮤니티에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우습지만, 그래도 말해보자면, 대치동이야말로 이의 표준이 아닌가? 대학과는 조금 다른 꿈과 이상을 논하는 순간, 어느덧 나는 이곳에서 병신이 되어있었다.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광기에 찬 조롱과 폭언을 앞에 두고.


내 꿈은 이미 다 정해져 있었다. 태어나는 순간. 그건 아마도 너무 뻔하다. 20살에 SKY대학에 입학해서 필요한 만큼의 학점을 쟁취하고, 남들이 선망하는 경제학/경영학 관련 직종에 취직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에게 자랑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게 내 운명 아닌가? 


나는 20대에 들어선 이후, 이 운명에 저항해보고 싶었다. 나를 그 동안 가르쳤던 사람들이 전부 거짓말쟁이 같아서.

사람의 따스함을 가르치고, 세상의 무한함을 가르쳤던 이는 없었다. 다만, 그들은 내게 실패의 가정법들을 가르쳤다. "지금 -하지 않으면, 너는 큰일난다" 그것은 대체적으로 이런 형식을 띄고 있었고.


지금 공부하지 않으면, 너는 큰일난다.

지금 좋은 대학에 붙지 못하면, 너는 큰일난다.

지금 이걸 하지 않으면, 너는 큰일난다.

지금 재수를 하게 된다면, 너는 큰일난다.

지금 삼수를 하게 된다면, 너는 큰일난다.

지금 취직하지 못하면, 너는 큰일난다.



대신 이 형식을 나는 이렇게 고쳐보고 싶었다.


"지금 -한다면, 나는 나를 알아가는 것이다" 


지금 실존주의를 공부한다면, 나는 나를 알아가는 것이다.

지금 사회학을 공부해본다면, 나는 나를 알아가는 것이다.

지금 탁구를 원없이 칠 수 있다면, 나는 나를 알아가는 것이다.

지금 많이 실패를 할 수 있다면, 나는 나를 알아가는 것이다.

지금 내 느낌을 글로 표현해볼 수 있다면, 나는 나를 알아가는 것이다.

지금 밤공기의 애처로움과 아침 공기의 산뜻함을 사랑할 수 있다면, 나는 나를 알아가는 것이다.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녀와 연애할 수 있다면, 나는 나를 알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어린 왕자가 생각하는 삶의 문양이라고 나는 굳게 믿었다. 내가 가진 순수함과 선천적인 재능을 토대로

이 세계에 나만의 의미를 투사한다... 그것 자체가 이미 하이데거가 말했던 기투(Projection)이자, 이해요, 유의의성(Significance)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빈말과 호기심에 근거한 의미를 세계에 투사할 수도 있는 법이지만, 또 그것이 그의 저서 <존재와 시간>에서 윤리적으로 계도되고 있지는 않지만, 이런 삶의 문양은 필시 어린 왕자가 싫어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순수와 선천적인 재능을 토대로 세계를 인식했던 푸른 소년이었으니까. 


실패도, 그래. 어른들이 말하는 그 실패라는 녀석도, 나에겐 성공일 수 있지 않나?

더 나아가서, 어른들이 그렇게 부르짖는 명문 대학도, 나에겐 쓰레기일 수 있지 않나? 


세상에 정해진 건 있을까?

아니, 애초에 내 운명이 정해져야만 할까?



그런 생각들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호흡했건만, 내가 넘어졌었다. 그래서 나를 혐오하게 되고, 어린 왕자를 혐오하게 되고... 더 나아가 삶이 미워지고, 삶이 가벼워지고, 이 세계에 나만의 의미를 투사하는 거룩함도 날아가버리고, 결국 공허함만이 나를 둘러싸버렸다. 


그것이 내게 나타난 우울의 실체다. 


거친 세상과 부딪치며 나를 역설하다가, 나를 잠시 잃어버렸다. 

하지만, 이 슬픔을 아름다운 저편의 오로라에게 보내며 나는 다시 일어서보기로 했다.


그래.. 아무리 세상이 밉더라도, 내가 머금고 있는 의미를 저버릴 수는 없어서.

이 의미를 꼭 붙잡고 이 세상을 이겨내보고 싶다. 내 운명을 없애고 싶다.

애초에 나는 "운명지어진"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나의 운명은 슬픔도, 기쁨도, 기적도, 아픔도 아니다.

그저 내가 살아가는 온기와, 향기, 그리고 추억, 생기일 뿐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 그리고 사상, 이해. 그것이 오늘의 내 운명이다.


정해진 것이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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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ended · 744093 · 20/10/19 19:01 · MS 2017
    회원에 의해 삭제된 댓글입니다.
  • 별빛찬란☆ · 997314 · 20/10/19 19:01 · MS 2020

    첫문장 공감..

  • ✨공쥬✨ · 979083 · 20/10/19 19:07 · MS 2020

    매우 가벼워지지요. 내가 호흡한다는 그 사실이.. 근데, 이젠 그렇지 않아요.
    결국 우울증을 겪었던 것도 내가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 위치한 한 점이었던 게지요.
    그렇다고 해서, 우울증과 싸우는 사람보다 낫다는 말은 도대체 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요, 오히려 우울과 싸웠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 더 굳건해질 거라고 생각해서요. 어찌보면, 더 폭넓게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어밝혀진 상태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 별빛찬란☆ · 997314 · 20/10/19 19:09 · MS 2020

    저도 지금 우울증인데 위로가 되네요ㅠ

  • ✨공쥬✨ · 979083 · 20/10/19 19:11 · MS 2020

    힘내요 :> 친구. 우울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하나의 경험이에요. 이겨내보니 그렇더군요.

  • 하늬바람° · 910816 · 20/10/19 19:01 · MS 2019

    와.. 두고두고 읽으며 되뇌어보고 싶을만큼 너무 좋은 글입니다.. 스크랩 했어요 여러번 다시 읽어보고 싶어요
    나는 나를 알아가는 것이다...
  • ✨공쥬✨ · 979083 · 20/10/19 19:10 · MS 2020

    ! 제 생각 조각이 그렇게나 ! 항상 책을 다 읽고 스스로 생각해보곤 해요.
    문학책이든, 철학책이든, 과학을 다루는 어렵고 따분한 책이든(저는 과학을 많이 못해서요), 사회 구조 전반을 다루는 인문사회 저서든...

    어느 한 구절이 내 삶의 진정성을 구체화시킬 거라고요.

    책이 구체적인 경험을 대신하진 않지만, 분명 나를 키워줄 거라구요.
    결국 책에도 내 의미가 남고, 내 의미에 그 책이 남는 것이지요.
    이게 주체성이 아닐까요? 나만의 의미를 어떤 도구에 투사한다..

    문학의 서정과도 맞닿아 있는 의미같아서, 요즘은 시를 많이 읽어보고 있어요.
    왜 그 사람은 이 물건을 이런 식으로 인식했던 걸까.. 그걸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어서요. 그러면 그 시인의 마음을 조금 더 잘 들여다볼 수 있을 테고, 더 나아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힘이 생기겠지요. 무튼 요즘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요!

  • 하늬바람° · 910816 · 20/10/19 19:14 · MS 2019

    공쥬님 글솜씨를 보면 정말 책을 많이 읽으셨다는것 그리고 정말 고민하고 생각을 다양하게, 깊게 해보셨다는게 느껴져요. 좋아지신 모습 너무 보기 좋습니다. 항상 화이팅입니다!
  • 오르비도와주세요 · 913731 · 20/10/19 19:21 · MS 2019

    저 사진을 보고 글을 읽으니까 진짜 좋네요

  • ✨공쥬✨ · 979083 · 20/10/19 19:33 · MS 2020

    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

  • .하늬바람. · 910816 · 23/10/05 23:04 · MS 2019 (수정됨)

    오랜만에 오르비에 들어와 예전에 스크랩한 글들을 읽어보고 있습니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글이었는데 다시 읽으니 또 한번 울림이 있습니다.
    나는 나를 알아가는 것이라는 부분은 정말 공감되는 구절입니다. 이 글을 잊고 지내면서 한때 '살면서 무엇을 추구해야 할까' 오래 고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제가 내린 결론과 비슷합니다. 살면서 나 자신의 모습을 하나씩 하나씩 발견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집중하여, 인식하지 못했던 나 자신의 부분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살면서 겪는 모든 경험들이 내가 누구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나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나에게 깊이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가장 잘 다가오는 때는 저 자신의 감정이 풍부해졌을 때라고 느꼈습니다. 때때로 깊은 감성에 푹 젖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3년전 이 글을 읽을 때는 막연하게 느껴지던 ‘내가 나를 알아간다는 것’이, 지금은 조금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글솜씨가 서툴어 말하고 싶은 내용을 전부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제가 스스로 위의 생각을 떠올리기 전 이미 비슷한 주제를 말씀하셨다는 것이 너무 반갑고 글을 읽으며 또 한번 감동이 있어 댓글을 남깁니다. 다시 읽어도 참 좋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