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단약기3)우울증이 내게 빼앗아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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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좋은 도시라는 생각이요. 글쎄요, 나는 19년이란 시간을 대전이란 동네에 몸 담았던 사람인지라 어릴 적부터 서울이란 도시에 대해 선망을 갖고 있었어요.
한데 서울이라는 도시가 주는 압박감 내지는 위압감 때문일까, 나는 우울과 공황을 얻게 되었고, 동시에 그 선망 의식은 혐오감으로 바뀌었죠. 사실 이 느낌은 올해 처음 느낀 건 아니에요.
대치동에서 재수할 당시에도 느꼈었죠. 내가 재수하기 전에 갖고 있었던 대치동에의 사랑이 사실 너무나도 어리석었단 걸, 그 어떤 것보다도 더러운 걸 내 순수를 채워줄 수단이라고 생각했다는 걸 재수를 끝내면서 처절히 깨달았던 적이 있어요.
돈을 많이 벌게 되어도 서울에서 살고 싶지는 않아요. 그냥 숲을끼고 앞엔 강이 흐르는 곳을 찾고 싶어요. 그런 곳에 지어진 아파트나 단독 주택가들도 많잖아요. 최신형 노트북이 하나 있고, 소설책과 사회학 저서들이 쭈르륵 서재에 있고, 스마트폰 거치대가 있고, 벽지는 연보라색에... 주택이라면, 마당에는 작은 고양이 두 마리. 아파트라면 집 안에 두 마리.
그게 내가 꿈꾸는 미래의 게으름이네요. 이 게으름을 위해선 많진 않겠지만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한데, 무슨 조화인지는 몰라도 내가 그 걱정을 사서 할 필요는 없더군요. 우리 집 앞에 우리가 어떤 일을 안해도 매월 1000만원씩은 보장되거든요. 근데, 부모님이 만든 성취와 성공이 내 성공은 아닌거고. 그냥 나는 또 다른 역사와 에피소드를 내 삶에 채워넣고 싶어요.
일종의 보험이에요. 가장 든든한 보험. 부모는 그렇게 내 등을 떠받쳐주고 있어요. 나는 그저 지금처럼,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들을 세세히 기록하고, 그 과정에서 나를 찾고, 그 발견 속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살고 싶어요.
뭐 하나 정해진 거 없어요. 그냥 나는 서울이 싫을 뿐이에요. 모든 악과 슬픔, 비애, 좌절, 분노. 그 모든 것들이 탄생하는 인큐베이터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은 도시라서 더더욱그렇겠지요. 자유분방함과 인간의 순수, 따뜻함을 좋아하는 내겐 이 도시는 너무도 불편해요. 그러니, 그 안에서 얽히고 설키다 우울과 공황을 앓게 되었겠죠.
COVID-19 때문에 대학도 그렇고, 수능 입시도 그렇고 모든 것들이 다 중단된 사태를 보면서 안타까운 맘이 드는 한편, 제 상황만을 두고보자면 이런 천운도 없더군요. 바쁘게 움직이게 됐다면 나는 분명 이 병을 내 삶의 무거운 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 거고, 결과적으로 내 아픔을 내 자신이 키워나갔겠죠.
그렇지는 않았어요. 모든 것들이 다 중단이 되어, 난 나를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거든요. 그 과정에서 소중한 사람도 만나고, 소중한 가치를 되새기고, 소중한 미래를 꿈꿀 수 있었지요.
그렇게 지금의 나는, 우울과 공황을 벗어났어요.
벗어나니 더 선명하게 보여요. 서울은 내 선망의 도시가 되어선 안 되겠다는 걸. 나같은 사람은 그냥 적당히 하고, 주위 사람들 몇몇만 소중하게 챙기면서 소규모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방향이맞아요. 유명해지고 이 사회에서 인정을 받아보고 싶은데, 또 만약에 그 때가 되면 어쩔 수 없이 자본에 몸이 이끌리게 되는 기이함을 맛볼 수도 있겠지만, 그 기묘함에 지지 않으려 지금 열심히 공부하는 거고 우울과 투병하는 거죠.
성공하더라도 서울에 있고 싶지는 않아요. 공황이 내게 가르쳐주었어요. 당신은 애시당초 서울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래서 내가 재수할 당시에, 삼수할 당시에 대치동이 그렇게 미웠던 건가.요즘은 뭐, 그런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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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선물 주셨어요 ㅁㅊ.

어떻게 매번 이렇게 저랑 겹치시는 부분이 많으신지 너무 신기해요.. 특히 미래에 바라는 그 생활 모습도 제 생각이랑 거의 똑같아요 제 주변 사람들 챙기면서 여유롭게 한적하게 살고 싶어요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좋은 밤 보내셔요
여러 타입이 있는 거죠. 서울이 그렇다고 다 잘못된 도시냐? 그건 또 아니에요. 그냥 나랑은 잘 안 맞아서 화가 난다는 거죠. 하늬바람님도 그런 타입을 저랑 같이 갖고 계신 거구...
항상 이런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사람이 내 옆에 계시단 것이 행복해요. 오늘도 안녕히 주무세요:)
예전에 오르비에서 본분같은데.. 흠 많이 힘드신가보네요. 지나가다 그냥 한마디 드리자면 너무 자신의 세계안에서 살지마세요. 더 힘들고 나만 불쌍한거 같고 세상이 미워지고 그럴거에요. 지금 겪고있는 상황을 제가 다 알지는 못하지만, 서울이라는 도시가 준 우울과 공황이 아니라 그냥 인생이 안풀리고 답답하니까 그런 생각도 드는걸껄요. 인생 생각보다 길다고 생각하시고 건강도 다시 되찾으면 수능에 다시 도전한다든지 아니면 군대를간다든지 새로운 무언가에서 스스로를 찾아보세요.
많이 힘들지는 않습니다. 우울과 공황도 단약기간에 이르렀을 만큼 많이 건강해졌구요. 말씀 주신대로 저를 피상적으로 아실 뿐, 내면적으로나 자세한 내용을 알고 계시지 못하므로, 이런 말씀은 상당히 조심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요.
또한 자신의 세계 안에서 숨을 생각도, 그런 방식으로 시야를 좁히고 있지도 않습니다. 개인의 밀실과 사회의 광장은 언제나 조화를 이루어야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는 까닭입니다.
공황장애를 마주하고 나서 내가 먼저 찾아간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이었지요. 그 덕분에 이 병에 관한 객관적인 치료법과 나를 조금이나마 더 넓은 방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기르게 되었지요.
나는 나만 불쌍하다거나 세상이 부조리하다거나, 그런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능력에 비해 갖게된 것이 너무도 과분하단 생각이 들어 하루하루 살아가며 감사함을 지니고 살아갈 뿐입니다.
다만, 이 세상이 너무도 과격해지고 따뜻함과 순수라는 관념의 가치가 상당히 떨어진 성싶어, 마음이 쓸쓸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에서 서울이란 지역이 내게는 맞지 않다는 것 같단 생각이 드는 것이구요. 이미 건강을 되찾았으니 이런 글도 쓰는 것이고, 운동도 하는 것이고, 다시 웃는 것이고, 다시 힘차게 살아내는 것이지요.
내 고민이 나의 우울에 근거한 것이라고 생각하시나 본데, 물론, 예측이나 확률적 믿음으로 주장하실 수도 있는 법이지만, 메론님의 이야기가 아니라 타인의 이야기이므로, 인생의 양질에 관한 이야기는 삼가셔야 하는 것 아닌지요. 맞을 확률도 상당히 떨어질 뿐더러, 설령 맞다고 하더라도, 우울과 공황에 한 때 힘들었던 사람에게, ‘인생이 안 풀리고 답답하니까 그런 거다’라는 확신적인 말을 조언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고 보여집니다.
응원할께요.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