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단약기2)쉽게 볼 수 있게 쓰여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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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한 역에 쓰여진 시. 이 시는 지나가는, 이름 모를 행인이 자신을 읽어주었으면 하는 맘에서 글자도 큼지막하게 새겼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요즘같이, 대중이 광기에 차 있고, 유튜브란 콜로세움에서 누군가를 마녀로 몰아가, 그가 생매장 당하는 꼴을 보는 것이 일상이 된, 또 그것을 ‘정의구현’이라고 외치는 나날 속에서.
어쩐지 그 혐오감때문에, 내 생각을 SNS에 풀어보는 것이 두려워졌었다. 그래서인지, 이 시는 내게 더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그야말로, 쉽게 볼 수 있게 쓰여진 시였다.
정오의 꿈 - 구상회
햇볕이 나뭇잎서 장기를 두고 있다
아이들이 달리는 소맷바람에도
따라가는 나뭇잎
따라가면서 타는 햇볕
유리창 너머로 아이들은
던져진 제 그림자
새기어 보다가
제 얼굴을 태운다.
제비 깃이 스치는 바람에도
번득이는 나뭇잎,
타는 햇볕
햇볕이 나뭇잎서 바둑을 두고 있다.
교실에는 아이들
정오의 꿈
꿈꾸는 눈의 둘레
빛이 되어 타고 있다.
학교 국어 선생님이 쓰신 시 같다. 인식의 방향이라든가, 서정 자체가 국어 선생이 아니라면 내뱉을 수 없다고 판단되므로. 타오르는 햇빛이 바닥에 새긴 나뭇잎의 그림자를 인식하고, 또 그 후에 광활한 태양 아래에서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노는 모습을 묘사하는 데 이른다. 그러다가 문득 타오르는 햇볕처럼, 자신의 수업을 받고 있는 아이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것을 보고 정오를 꿈의 가치를 드높여주는 시간이란 것을 깨닫는 것으로 시상이 마무리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공교육에서 교사라는 지위를 맡고 있는 사람들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수시라는 전형도 그렇고, 가르치고 있는 과목의 방향성이라든가 내용도 그렇고, 점차 죽어가고 있는 교육을 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공부하는 아이들에게서 그네들만의 고유한 가능성과 꿈을 볼 줄 아는 교사가 많이 있다면 언제든지 이런 인식은바뀔 것 같다. 대학 입시의 성공적 마무리라는 그럴 듯한 명분 아래로 학생들로 하여금 과도한 경쟁 구도로 치닫게 하는 교육말고, 자신만의 방향으로 내달릴 수 있게끔하는 주체적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이런 인식을 갖고 있는 선생들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보여진다.
뿐만이 아니다.
지금과 같이 누군가를 짓밟지 않으면 내가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광기가 점령한 이 비극의 세상을 유일하게 극복해낼 수 있는 방법은, 순수와 따뜻함을 가르치는 교육이라고 난 본다.
수능을 잘 못봤도라도, 설령 내신 점수가 낮았더라도, 지나가는 작은 풀잎에서 삶의 무한함을 깨달을 수 있고, 지나가는 행인에게서 작은 슬픔의 씨앗을 볼 줄 아는 학생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리더요, 지식인이라하겠다.
세상이 너무도 과격해졌다. 그리고 너무도 슬퍼졌다. 이 상황에서 내가 유일하게 출 수 있는 춤이란, 어린 왕자에게서 무한함을 배우고, 쉽게 볼 수 있게 쓰여진 시에서 누군가의 순수와 따뜻함을 배우는 것이다. 훗날의 세계가 더 깊고 따뜻해지길 바라며.
2020. 10. 13 우울증을 극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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