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을 마감하고...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3254576
초등학교 때 부터 난 항상 추상적이었다.
근거 없는 판타지물과 액션에 취해 살기도 했고 한 때는 나루토에 빠져 휴우가 네지 코스튬을 한 적도 있었다.
돌아보면 썩 나쁜 기억은 아니다. 모두 추억이다. 외고 입시까지 달렸던 험난한 길도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있다.
물론 험난한 억새 숲을 가로질러 헤라의 황금사과나무가 있는 곳까지 도달하여 용을 잠들게 하고 베어 문 그 사과가 결국 독이 든 사과였을 뿐이다.
나는 추상이란 말을 좋아했다.
그와 반대되는 현실은 쳐다보기도 싫었다.
이상을 바랄 뿐인 어린 씨앗에 지나지 않았다.
이따금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새로운 세계로 가길 원했고 그 결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는 만화가 디지몬이 되었다.
그러다 결국 현실에 있는 나를 목도할 때면 생각하던 세상과의 괴리로 인한 처참함 때문에 도무지 고개를 들 자신이 없었고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원동력이 없었다.
그렇게 추상적이었던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와 현실적인 아이로 바뀌었다.
내 마음 속 유토피아는 사라진지 오래.
합리적인 인간으로 변할수록. 이성적으로 변할수록. 감성을 최대한 배제하는 사고를 진행시킬 수록.
나는 조금씩 여리디 여린 하나의 어린 씨앗에서 변질되고 오염된 싹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어릴 적 굉장히 소심하고 해야 할 말, 쓴소리 못하는 성격이었던 나는 어느새 내가 하고싶은 말 다하고 합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됬다.
물론 그로 인한 폐해는 3년간 여실히 겪었다.
조용히 넘어갈 줄도 알아야 했지만 끊임없는 지적질.
그런 나 자신을 돌아보지도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보이는 단점만, 약점만, 결점만 귀가 닳도록, 입이 돓도록, 화가나서 절교할 정도로...
3년 동안 사귄 친구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그렇게 살아왔다.
결국 일은 터졌다.
매 수업시간마다 수업은 안하고 썰렁한 농담 따먹기나 하고 학생 때리기를 일삼는 선생.
분명 체벌은 금지되었다는 생각과 선생이 학생을 강압적으로 누르는 분위기의 수업은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그 날 수업 시작하기 전 별 생각 없이 여느 때처럼 수학문제를 풀고 있었다.
선생(쓰레기)이 들어온 뒤 종이 치기 시작했고 책이 여러겹 싸여있는 바 서랍속에 넣고 수학 책을 덮으려 했다.
그 순간 내 앞까지 다가와 수학 책을 들어 바닥에 내팽겨쳤다. 책이 절반가량 찢어졌다.
기분도 상하고 짜증나는 투로 막 넣으려고 했다고 말하면서 책을 다시 책상 서랍 속에 넣으려고 했는데 넣다보니 빈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책상위 한 켠에 놔두고 수업을 듣는데 수학 책 또 책상위에 있다고 나한테 와서 책을 들고 던져버렸다.
어이없고 화나서 꼬나봤다. 그 이후는 당연히 알만한 일이다. 쓰레기는 왈왈 짖었고 쓰레기는 내 명치 주위를 계속해서 가격했고 쓰레기는 내 정강이를 깠다. 맞으면서도 때리고 싶어 죽겠는데 나의 물러설 수 없는 신념은 그걸 거부했다. 철저한 유교사상 하에 커온 나는 늙은이에 대한 배려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버린 것이다.
그렇게 복도로 쫒겨났고 나는 맞은 부분이 아파 속이 쓰라려 피가 고인 침을 뱉었다.
쓰레기는 침 뱉는 나를 보고 복도로 나와 진학실까지 머리를 잡고 끌고 같고 억지로 앉히고 쪼인트를 까댔다.
세상 더럽고 뭐같아서 그냥 학교를 나와버렸다. 그리고 병원에 입원했고 우리 가족은 학교측과 합의를 봤다.
그 선생은 그 이후 나한테 뭐라 한마디도 못했다.
솔직히 그 선생은 나한테 한주먹거리도 안되게 생겼다.
키 179에 몸무게가 81~82kg 나가는 나한테는 한 170이나 되보이는 찌끄레기 선생은 뭣도 아녀보였다.
병원가서 갈비뼈가 좀 부러지고 입원할 때까지만 해도 하극상 같은건 개무시하고 그냥 학교 가면 선생 열나게 때릴 생각만 했다.
진짜 개 쪽 주고 싶었다. 그 인간 머리를 내 발로 지근지근 밟고 빠따로 때리고 싶었다.
그래도 참았다. 나보다 어른이니깐 물론 하는 짓은 망나니만 못했지만...
퇴원한 후 나는 초연해졌다.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선생들은 그냥 진부한 선생들일 뿐이라 생각했고 일일이 대꾸하려고 따지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렇게 3학년이 끝나갔고 수능을 봤다. 논술 우선선발 1 1 1을 맞춰 고대나 한양대를 가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건 2 1 1 이었다.
수능 당일에 수리 가형을 보고 나름 괜찮을거라 생각했다. 집에 와서 문제지로 채점할 땐 88점이었고 만족했다. 최소 2등급이니
그런데 가채점 용지로 채점하니 64점이었다. 16번부터 21번까지 가채점 용지에는 한 줄로 되어있었다.
평소 한 문제 풀고 마킹하는 습관때문인지 한 문제 풀고 가채점 용지 적고 그랬다.
별 생각없이 15번 답을 16번에 한 번 더 썼다.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자세히 보니 가채점용지 칸이 부족해 옆에다가 하나를 더 썻다.
그런데 시간이 2분 남았을 때쯤 아무 생각 없이 마킹을 하다보니 밀린 줄도 몰랐고 결국 객관식 16번부터 21번까지는 하나도 안 겹치고 싹 틀렸다. 마지막 21번 번호를 보지도 못했다.
허탈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시험 당시는 눈치채지 못했던 것들이 시험 끝나고 머리속에 맴돌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하염없이 울고 소식을 가족들에게 알리고 초탈한 나는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다.
내년에는 부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기왕 이렇게 된거 현역 때 노려보지도 못했던 서울대를 가고자 한다. 과탐 선택 때문에 못갔던 서울대를 내년에는 가고 말겠다.
이번 입시안을 보니 내신이 쓰레기인 나에게는 그나마 정시로 뚫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설기항 뚫을 정도 점수되면 아마 가군은 당연히 어딘가 의대를 쓰고 있겠지만...
나는 다짐한다.
내년에 이 날의 나는 근본이 있는 사람이 될것임을.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암산테스트 0
12점
-
주식 들어가면 0
아오 내가 들어가면 쳐 내리네 ㅋㅋㅋㅋ
-
1.5시간당 나무 1개를 베는 나무꾼과 0.5시간당 나무 1개를 베는 나무꾼이 함께...
-
눈온당 0
-
출석부! 출석부 출석부! 지하철! 지하철 지하철! 공산당! 공산당 공산당! 진짜...
-
스타킹 0
찢기
-
이시간에
-
불면증.. 4
원하는 기상시간보다 45분이나 일찍일어나버렸다
-
잘까 4
흠
-
안자면 큰일날듯 1
옯붕이들 ㅂㅂ
-
2차 얼버잠 2
이젠 진짜 ㅃㅃ
-
동서연고. 1
무요.. 왜요.. 혼잣말이에요..
-
다시 했을 때 메디컬 가능성 얼마나 보시나요?
-
잘때가된건가 5
슬슬
-
발 300 11
손도 많이 큼
-
꾸준히 햇으면 꽤나 올렷을거 같은데 오랜만에 하려니 계속 같은 곳에서...
-
ㅅ..ㅂ 요즘에도 한달에 한번은 뛰다가 무조건 삐는 것 같다
-
키작은 사람이 6
큰 사람보단 끌림
-
마스터 등반 시작
-
응..
-
재밋는건같이해요
-
귀가 ㅇㅈ 2
사실 아까 퇴근하면서 찍었어요
-
키작으면 좋은점 4
애들이 귀엽다고함 헤헤
-
ㅋㅋ 난 작년에 2
공부하는거에도 기출이 잇엇음.한국 기출만 봤을 때2008년도부터 2023년도 기출된...
-
새르비 화력 테스트 18
유동인구 10명 넘을까?
-
팩트는 0
마이 베스또 프렌드들은 몇시간째 디코를 하며 롤을 하고 잇다는거임.지금도 디코에...
-
굿모닝 1
ㄱㅁㄴ
-
에휴이
-
오르비 굿밤 2
전 자러감
-
서버 어머같네요 0
ㅎㅎ
-
맞팔 구합니다 3
현역학생입니다 물리러에요
-
ㅇㅂㄱ 1
수업가야겠군
-
연구원인데 떼잉,,삼각함수랑 수열을 훨 잘함 지로함에 비하면
-
ㅇㅈ 13
새벽이니까 다행일듯 내 손임 펑~~
-
학벌딸 치고 싶어서 인거 같음 그냥 병신 한남 자존감 밑바닥 루저새끼라 뭐라도 하나...
-
안 맞게 공부를 하고 잇음 ㅋㅋ,,내 공부 이론대로 하는 공부가 좀 상당히 피곤함....
-
내 차단리스트 1
없음뇨
-
응.. 부러워..
-
침대에서 자면서 망상함
-
지로함 6
평가원에선 잘 모르겟는데 (어렵게 안 내서), N제같은거 보면 되게 재밋는 문제...
-
무슨 이미 의대 붙은 것마냥 의대 성적 되면 의대를 갈까 설대를 갈까? 의대 가면...
-
수강 신청 0
막 20학점씩 신청 해놓고 나중에 빼는 방법 좋나요? 예상대로 안될 때가 많으니...
-
기출 좋앗던거 3
241122 (개 잘 만든문제)121130 (함수의 증가속도, 아주 중요한 관점)...
-
국회증언법이랑 양곡법 이런거 비판하는 내용있으면 너무 그렇지??..
-
롤의정리 4
롤은 재밌다
-
공군 질받 9
암거나 ㄱㄱ
첫번째 댓글의 주인공이 되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