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쥬✨ [979083] · MS 2020 (수정됨) · 쪽지

2020-10-04 23:20:33
조회수 187

야상곡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32516384

밤이 고요히 울린다. 주위는 온통 어두워서 얼굴에 비친 스마트폰이 그려낸 네가 나를 더, 뚜렷이 바라본다.


헤어진 지가 어언 2년이 되었다. 


우리는 왜 헤어지게 된 걸까. 너를 책임지는 게 참 버거웠어서?

음, 아니 그런 것보다도 나는 네가 무서웠다. 같은 맥락이겠지만다른 맥락이다. 너라는 사람을 책임지는 건 그렇게 두려운 일이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했으니까. 다만, 시도 때도 없이  너의 주체성을 토대로 나를 감싸안는 것을 회피했던 네가 미웠다. 책임지는 것이 무서운 게 아니었다. 너에게 버려지는 게 무사웠다. 


서로 공부에 매진하던 시절. 나는 너와의 연애 또한 공부일 수 있다고 생각했단다.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건, 결국 누군가의 사념과 지식을 통해서 더 앞으로 정진하기 위한 것이다. 난 너의 감정, 너의 생각이 내 스승일 수 있다 굳세게 믿었다. 그래서 공부하는 찰나에도 너를 감히 생각하는 것이 역겹지도, 불안하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되려 젊음이라면,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데, 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내게 선연히 보였다. 끝없이 너를 조여오는 시험대 앞에서 나를 밀쳐냈고, 어이없게도 어떨 때는 또 나를 끌어 당겼다. 그래, 그렇게 갈팡질팡하는 너를 보며 솔직히 난 네가 헷갈렸다. 너의 감정을 공부하기엔 너는 너무 내게 버거웠고, 무서웠다. 너는, 그런 소녀였다.


2년이 지난 지금, 그 모든 것들이 땅 아래로 가라 앉혀지고, 우리를 떨리게 감싸안았던 공기의 감촉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 시점에서, 전 날들의 아픔과 무서움을 더 꺼내 놓아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서서히 실감한다.


그저, 행복해라. 너를 지금 끌어안고 있는 그 남자와 함께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져라. 그 남자에겐 내게 보였던 그 불안을 펼치지 말고, 확신을 줘라. 네가 사랑하고 있다는 걸. 


울려퍼지는 밤의 공기 소리. 다시 너와의 기억을 접어야 겠다.

맘편히 꺼내놓기엔 지금은 너무 어두워서, 라고 하면 적당한 명분이 될까. 내가 다시 밝아지는 날, 너의 불신으로 말미암은 나의 상처를 스스로 비웃을 수 있기를.


결국, 끝까지 나는 혼자였구나.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