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또다시 서자가 아닌 아들이 되었다.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32171627
- 나는 인맥이 참 좁고 투박한 편이지만 그 인맥의 구성 또한 독특한 편이다.
어제는 내 몇 안되는 소중한 친구 중 한명인 덕이 형에게 연락을 하였다.
그 형님을 어떻게 만났는지 아는가?
- 나는 제주도에서 군복무를 하였는데, 외박이나 휴가만 되면 제주도를 빙글빙글 돌며 게스트하우스 탐험을 했다.
외박/휴가 날짜가 대략 50일이 넘어갈 무렵, 내가 제주도 여행을 하는건지, 게스트하우스 투어를 하는건지 헷갈리더라.
참고로 파티게스트하우스? 클럽게스트하우스? ㅋㅋㅋㅋㅋ 어우...
처음에는 나도 그런 게스트하우스를 간다는 것에 며칠 밤을 설렜었지만
남자인 내가 봐도 한숨나오는 수컷들의 행태가 반복되다보니 파티나 클럽 게스트하우스는 결국 꺼려지더라.
토끼같은 여자 하나를 둘러싼 수많은 하이에나들의 지겹기 짝이없는 질문 레파토리는 어디 학원이라도 있는건가 싶을정도로 똑같았다.
제발 질문하고 공통점 발견했다고 흥분 좀 하지말자ㅠㅠ
아니, 수원살면서 서울산다는 여자한테 와~ 같은 수도권 사네요?는 뭔데...
그렇게 점차 시끌벅적한 게스트하우스보단 도란도란 다락방같은 게스트하우스를 찾게되었고,
그렇다고 막 3~4명 어색하게 어디서왔냐, 직업이뭐냐, 제주도 어디 좋지않냐 영혼없는 대화하다가 슥~ 들어가 자는 곳 말고,
서로가 허락하는 한계선까지 마음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 타인의 인생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엿볼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
이런 분위기의 인테리어와 이런 분위기를 연출할 능력이 있는 스텝들과 여행객이 모이는 게스트하우스를 찾게 되더라.
뒷광고 얘기 나올까봐 이런 게스트하우스 대놓고 말하기는 힘들고
팁 하나 주자면 파티? 클럽? 들어가있는 곳 거르고, 공항이나 보문같은 시내 거르고, 애월이나 함덕같은 관광지 주변 거르면 각 나온다!
- 각설하고, 도란도란한 게스트하우스에서 1박하다가 만난 형인데 나는 그만 그 형에게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2박을 추가해버렸다.
가파도 청보리 축제도, 서핑 예약도 다 취소하고 그 형이 좋아서, 나처럼 연박을 신청한 다른 멤버 구성원이 좋아서
그냥 그때 외박은 그 게스트하우스에 몰빵해버렸다.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아마도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가족, 친구, 연인이 아닌 사람에게 나는 6수생이라고, 6수를 마치고 군대를 갔는데 제대하면 수능을 다시 봐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고민중이라고 얘기를 꺼냈다.
그 당시 나는 6수생이라는 내 신분이 너무나도 부끄러웠고, 가능한 한 누구에게도 내 신분을 말하지 않았다.
군대 내에서도 내가 수능을 준비하는 것은 알았지만, 이제까지 줄곧 수능만 준비해왔다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 지금도 모른다. 미안하네
하지만 그떄 그 게스트하우스에서는 그럴만한 분위기가 조성됐고, 말했고, 좋았다.
그냥 내가, 본래의 내가 될 수 있다는 그 순간이 행복하더라.
6수생을 6수생이라고 말하지 못하던 서자같은 내가 마침내 6수생이라고 떳떳히 말하는 아들이 될 수 있었다는 그런 느낌?ㅋㅋㅋ
- 그 형이 좋은사람인 것은 확실하지만, 아마도 그 당시 그 형을 내가 좋아할 수 있었던 것은 형이 좋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나일 수 있었기 떄문일 것이다.
그 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관문이자 가장 큰 부끄러움이었던 수능을 대놓고 말한 순간이자, 유일하게 솔직할 수 있었던 순간이니까.
그렇게 그 형과 나는 온갖 너저분한 현실과 부끄러운 생각과 답없는 인생을 하루종일 노닥거렸다.
행복했다.
그 형도 그랬으려나?
- 게스트하우스를 나온 뒤 형과 꾸준히 연락을 하다가 연락을 끊겼다. '내가 끊었다'가 더 자연스럽겠다.
나는 그 형에게 다시 내 인생을 말하기 부끄러워져버렸기 떄문이다.
연대 의대에 가겠다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또다시 거짓말쟁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한가하게 쉬고있지만 공부하는 척 연락할 수 없었고, 연락이 오는 날에는 이과공부 ㅈ밥이라고 연의가 눈앞이라고 숱하게 거짓말해댔다.
(사실 군제대 후 문과에서 이과로 옮기고 7개월만에 연대의대에 붙는다는게 가당키나 한 생각인가.....)
그냥 힘들다고, 이과공부가 너무 어렵다고, 수능 조졌다고, 인생이 막막하다고 말이라도 할 걸, 그냥 부끄러웠다.
1년 더 한다는 것은 도저히 입에 올릴 수도 없었다.
내가 부끄러워지기보단 차라리 그 사람과 멀어지는 길을 택했다.
내가 자초한 일이지
- 그렇게 몇년이 지나 수능은 완전히 끝이 났고, 아마도 처음이지 않을까? 내가 먼저 연락을 해보았다.
형의 카톡 프사는 웃고있었고, 그 게스트하우스도 몇번 더 간 듯 하고, 걱정근심없이 편안해보였다.
형은 여전히 행복하게 잘 사는 중이었다.
그 형은 나와 멀어진 후에도 쭉 행복했을 것이다.
그 형처럼 남을 편견없이 봐주고, 본인을 솔직히 드러내는 사람은 행복할 수 밖에 없다.
- 형에게 말했다.
나 그떄 수능 조지고, 1년 더 봤는데 또 조지고, 이제 인생을 조지는 중이라고ㅋㅋㅋㅋㅋ
행복했다.
나는 또다시 서자가 아닌 아들이 되었다.
- 형이 말했다.
"그럴 줄 알았다. 어디야? 밥먹자 형이 사줄게 그냥 하는 소리 아니야"
"형, 이 시국에 무슨 밥이에요ㅋㅋㅋ 술이나 한잔 해요"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오르비망할때까지안없어지겠노
-
오르비답게
-
아무리 생각해도 16
새벽 두 시까지 쿠팡 뛴 나는 고생한 게 맞다 이 글을 본 오르비언들은 나한테...
-
싸우지마.. 0
ㅠㅠ
-
진사람 탈릅
-
경제 일주일만 공부했으면 만점이었을텐데
-
어디에다 쓰는건가요?? 제 능력 부족인지 검색해도 안 나와요ㅠㅠ
-
ㅇㅋㅇㅋ이제안싸움 하다가 아니근데 ㅅㅂ이거는 하고 또 아 ㅇㅋ 진짜그만함 하고 또...
-
이번에 군대 못가면 지게차따야지
-
질받글에 이런식으로 올리는데 UFC 거는줄 알았지 아니었음?
-
지금부터는
-
멋있음
-
질서를 주도하시네
-
올해는 여자친구 꼭 만들거예요
-
그건 잘못인거 인지하고 안하겠음 그건 진짜 죄송했다는 말 들이고 싶음 다시...
-
인천대에서 삼반수해서 인하대 갈만할까요?
-
불편하셨으면 미안함
-
제가 지적한 부분에 대한 납득할만한 해명 그게 아니라면 그러한 행동들에 대한...
-
계속 수학 못하는 애들을 위해 확통 마련해주니까 저렇게 말하는거임. 확통 100인...
-
난 공부잘하는사람편
-
그런 모습을 기다려주는 것 또한 미덕이겠죠 잘못한 거 알면 입 닫고 잘못했습니다 한...
-
'오르비 비판' 이거임?
-
왜 자유전공도 유사법대 노릇을 하는거냐
-
영어 질문 3
We are largely ignorant 까지 해서 문장 완결 아닌가요? 뒤에...
-
반박해야 하는데 내가 20번 풀이쓴거 자삭해서 없네 3
증거 없음 걍 글 못쓰는 내가 진거다 이긴 내 병크다
-
수학 선택과목 체제도 병신 같고 오래된 생각이다
-
밥먹으면서 서로 섭섭했던거 이야기하셈 그러고 화해 ㄱㄱ
-
확통 미적 기하 다 해봤는데(기하는 개념만) 미분까지는 그렇다쳐도 적분까지하면...
-
으흐흐 1
좋은 몸인걸
-
식물 거래 후기 4
저보다 나이 훨씬 많으신 분이었는데도 거래하고 커피까지 쥐여주고 가심..
-
바지가 뜨끈하니 기분좋아져서 웃었어
-
사회문화로 쳐 빨리 꺼져❓ 알았다 어 진짜 갈게 정훈형님 보고계세요? 아 진짜 빨리...
-
테는 뭐임 7
뭐하면 주는 거임?
-
이 싸움을 끝내줘.....
-
그때도 저 분이 저 과하게 돌리고 비꼬는거 보고도 흐린눈 했었는데 그때 한 말은...
-
섹시한 0
순두부찌개 먹어야징 ㅎ 일루와잇
-
한 250mL 먹엇는데 내 생각보단 별로 맛없네 알콜램프맛으로 시작해서 쓰다가...
-
이게무슨... 2
난리가났네요
-
어짜피 돌이킬 수 없음 11
나 사실 내 오르비 이미지 원래부터 망한거 암 걍 우울글 계속 쓰고 저능하다 그런거...
-
중재하고싶지만 1
너무나 윗분들의 싸움이라 쩔수없이 울면서 직관하는 기분
-
난 경제 모르니까 빠져야겠다 고등학교 경제는 모르지만 블랙숄츠는 알면 개추 ㅋㅋ
-
적당히들 합시다 4
상처뿐인 싸움은 빨리 끝내는게 이득입니다 그냥 이걸로 둘 다 얻는건 없어보입니다...
-
ㅈㄴ 유사법대같은데 스캠당한건가 국장연이라 리트치는것도 불가능하고 좆같다
-
근데 그렇게 따지면 수1 수열 점화식은 확통러들에게 유리하다고하심 도형은 기하에게 유리하고
-
어린양이 된 기분..
-
경제가 아니라 사문생윤이면 내가 옆에서 ㅈㄴ 공감해줄텐데 5
경제라 별로 할말이 없네 생윤사문은 말도안되는 개꿀통 맞습니다 표본 역체감 미친듯이...
-
소신발언 1
진짜 피곤한데 배가 너무 고픔 참고 잠 자려고 30분동안 수면음악 트러놓고 가만히...
-
인증을 요하신다면 무응답으로 일관하겠습니다

올해의 문학상감사합니다
마키아님은 10수 하시는 동안 게스트 하우스도 놀러가고 놀 건 다 놀아보셨네요
군 휴가나가서 수능공부하는 건 휴가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그건 저도 동의합니다 ㅋㅋ 마키아님 연애썰도 듣고 싶네요 연애 경험은 있으신지
그쪽 썰 시작하면 1일 1게시글 가능하지싶은데
아무래도 지나간 사람들 관련된 글 쓰는건 실례같아서 조심스럽습니다ㅠㅠ
마키아 형님에 특유의 뻔뻔함 보는 재미가 있죠 조만간 기대하겠습니다
저도 수능끝나고함봐주세옹 ㅎㅎ
넵 코로나니까 밥말고 술이나 한잔 ㅋㅋ
형님 저진짜수능끝나고연락드립니다
진짜 공감가는 글
본래의 내가될수없다는건 정말슬픈일
누구도 만나고싶지않아지는..
꿀잼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