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kkia [332350] · MS 2010 · 쪽지

2020-09-15 22:3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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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다시 서자가 아닌 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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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인맥이 참 좁고 투박한 편이지만 그 인맥의 구성 또한 독특한 편이다.


어제는 내 몇 안되는 소중한 친구 중 한명인 덕이 형에게 연락을 하였다.


그 형님을 어떻게 만났는지 아는가?




- 나는 제주도에서 군복무를 하였는데, 외박이나 휴가만 되면 제주도를 빙글빙글 돌며 게스트하우스 탐험을 했다.


외박/휴가 날짜가 대략 50일이 넘어갈 무렵, 내가 제주도 여행을 하는건지, 게스트하우스 투어를 하는건지 헷갈리더라.


참고로 파티게스트하우스? 클럽게스트하우스? ㅋㅋㅋㅋㅋ 어우...


처음에는 나도 그런 게스트하우스를 간다는 것에 며칠 밤을 설렜었지만 

남자인 내가 봐도 한숨나오는 수컷들의 행태가 반복되다보니 파티나 클럽 게스트하우스는 결국 꺼려지더라.


토끼같은 여자 하나를 둘러싼 수많은 하이에나들의 지겹기 짝이없는 질문 레파토리는 어디 학원이라도 있는건가 싶을정도로 똑같았다.


제발 질문하고 공통점 발견했다고 흥분 좀 하지말자ㅠㅠ


아니, 수원살면서 서울산다는 여자한테 와~ 같은 수도권 사네요?는 뭔데...


그렇게 점차 시끌벅적한 게스트하우스보단 도란도란 다락방같은 게스트하우스를 찾게되었고,

그렇다고 막 3~4명 어색하게 어디서왔냐, 직업이뭐냐, 제주도 어디 좋지않냐 영혼없는 대화하다가 슥~ 들어가 자는 곳 말고,

서로가 허락하는 한계선까지 마음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 타인의 인생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엿볼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

이런 분위기의 인테리어와 이런 분위기를 연출할 능력이 있는 스텝들과 여행객이 모이는 게스트하우스를 찾게 되더라.


뒷광고 얘기 나올까봐 이런 게스트하우스 대놓고 말하기는 힘들고

팁 하나 주자면 파티? 클럽? 들어가있는 곳 거르고, 공항이나 보문같은 시내 거르고, 애월이나 함덕같은 관광지 주변 거르면 각 나온다!




- 각설하고, 도란도란한 게스트하우스에서 1박하다가 만난 형인데 나는 그만 그 형에게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2박을 추가해버렸다.


가파도 청보리 축제도, 서핑 예약도 다 취소하고 그 형이 좋아서, 나처럼 연박을 신청한 다른 멤버 구성원이 좋아서 

그냥 그때 외박은 그 게스트하우스에 몰빵해버렸다.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아마도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가족, 친구, 연인이 아닌 사람에게 나는 6수생이라고, 6수를 마치고 군대를 갔는데 제대하면 수능을 다시 봐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고민중이라고 얘기를 꺼냈다.


그 당시 나는 6수생이라는 내 신분이 너무나도 부끄러웠고, 가능한 한 누구에게도 내 신분을 말하지 않았다.


군대 내에서도 내가 수능을 준비하는 것은 알았지만, 이제까지 줄곧 수능만 준비해왔다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 지금도 모른다. 미안하네


하지만 그떄 그 게스트하우스에서는 그럴만한 분위기가 조성됐고, 말했고, 좋았다.


그냥 내가, 본래의 내가 될 수 있다는 그 순간이 행복하더라.


6수생을 6수생이라고 말하지 못하던 서자같은 내가 마침내 6수생이라고 떳떳히 말하는 아들이 될 수 있었다는 그런 느낌?ㅋㅋㅋ




- 그 형이 좋은사람인 것은 확실하지만, 아마도 그 당시 그 형을 내가 좋아할 수 있었던 것은 형이 좋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나일 수 있었기 떄문일 것이다.


그 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관문이자 가장 큰 부끄러움이었던 수능을 대놓고 말한 순간이자, 유일하게 솔직할 수 있었던 순간이니까.


그렇게 그 형과 나는 온갖 너저분한 현실과 부끄러운 생각과 답없는 인생을 하루종일 노닥거렸다.


행복했다. 


그 형도 그랬으려나? 




- 게스트하우스를 나온 뒤 형과 꾸준히 연락을 하다가 연락을 끊겼다. '내가 끊었다'가 더 자연스럽겠다.


나는 그 형에게 다시 내 인생을 말하기 부끄러워져버렸기 떄문이다.


연대 의대에 가겠다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또다시 거짓말쟁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한가하게 쉬고있지만 공부하는 척 연락할 수 없었고, 연락이 오는 날에는 이과공부 ㅈ밥이라고 연의가 눈앞이라고 숱하게 거짓말해댔다.


(사실 군제대 후 문과에서 이과로 옮기고 7개월만에 연대의대에 붙는다는게 가당키나 한 생각인가.....)


그냥 힘들다고, 이과공부가 너무 어렵다고, 수능 조졌다고, 인생이 막막하다고 말이라도 할 걸, 그냥 부끄러웠다. 


1년 더 한다는 것은 도저히 입에 올릴 수도 없었다.


내가 부끄러워지기보단 차라리 그 사람과 멀어지는 길을 택했다. 


내가 자초한 일이지




- 그렇게 몇년이 지나 수능은 완전히 끝이 났고, 아마도 처음이지 않을까? 내가 먼저 연락을 해보았다.


형의 카톡 프사는 웃고있었고, 그 게스트하우스도 몇번 더 간 듯 하고, 걱정근심없이 편안해보였다.


형은 여전히 행복하게 잘 사는 중이었다. 


그 형은 나와 멀어진 후에도 쭉 행복했을 것이다.


그 형처럼 남을 편견없이 봐주고, 본인을 솔직히 드러내는 사람은 행복할 수 밖에 없다. 




- 형에게 말했다. 


나 그떄 수능 조지고, 1년 더 봤는데 또 조지고, 이제 인생을 조지는 중이라고ㅋㅋㅋㅋㅋ


행복했다.


나는 또다시 서자가 아닌 아들이 되었다.




- 형이 말했다.


"그럴 줄 알았다. 어디야? 밥먹자 형이 사줄게 그냥 하는 소리 아니야"


"형, 이 시국에 무슨 밥이에요ㅋㅋㅋ 술이나 한잔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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