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회복기23)잃어가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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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 생활. 치열하게 자신의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는 기간.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경험을 함과 동시에 자신의 밑거름을 더 탄탄히 다질 수 있는 황홀한 광장. 때론, 그것이 참 진리라고 여겨질 때가 있었다. 지금이야, 그 기간을 살아내지는 않고 있는 사람이지만은, 적어도 작년 이 맘 때 즈음만 하더라도, 그런 경우가 참으로 흔했던 성싶다.
게으른 자신과의 사투를 통해서 조금은 더 부지런해지는 삶을 살게되는 것을 볼 땐 더더욱 그랬었다.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확신, 그리고 그로부터 오는 나름의 확신감. 세상이 조금 더 명확히, 그리고 간단하게 보이는 느낌.
그런데, 때론 이런 생각도.
나는, 나뭇잎의 향기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인걸까?
나는, 치열한 삶을 그럴듯한 명분으로 삼아, 나만 생각하는, 남을 배려하지 않는, 남에게 자극스런 분노를 표출하는,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햇빛을 그저 하나의 잿빛으로 치부하고 마는 쓰레기는 아닌걸까?
사실, 생각의 빈도를 따지자면, 압도적으로 전자였다. 뿌듯하고, 성취감있고, 기쁜 나날들이 많았으며 이 세계를 너무나도 좁게 인식하고 있는 죄책감은 나를 많이 찾아오진 않았다. 한데, 역설적이게도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여, 현재 자신의 깊이를 형성하게 한 것은, 성취감과 확신감이라기 보다는 이 죄책감이었다.
잃어가는 느낌들. 얻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잃는 것이 있다는 사실로부터 오는 아픈 감정들. 그것이 나를, 나로서 이 세계를 여행할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었다. 사실, 수험생활을 10년할 것도 아니고, 고작 1년 할 것인데, 그런 사소한 것들에 목을 메면 앞으로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거냔 구박을 많이 들었다. 내가 지금 잃고 있는 것이 많게 느껴진다는 고민을 어른들이나, 강사들이나, 친구들에게 나누었을 때 말이다.
그래, 따지고 보면 어차피 이 감정들은 올해만 느끼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정말 고민했던 지점은, 눈에 보이는 황홀한 개인적 성취감에 익숙해져서, 세상을 보는 눈이 매우 좁아지는 것이었다. 치열한 삶만을 전제로, 그것이 "진리"라는 생각을 전제로 앞으로의 삶까지를 내달리게 될까, 난 그것을 염려했다.
그래서, 수험 생활을 살아내는 어느 순간엔, 이 죄책감이 찾아오면, 그 즉시 공부를 멈추고 나뭇잎을 보러, 햇빛을 보러 잠깐 산책을 떠났다. 잃어가고 있는 느낌을 조금이나마 제거하고, 내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철학이 무엇인지 조금은 고민해보기 위해서. 때론 10분이었고, 때론 30분이었고, 때론 1시간이었고, 때론 하루종일이었다.
그런 고민의 섬광을 지나, 내가 한 가지 얻게 된 결론이 있다.
나에게 소중한 것은, 진정으로 소중한 것은, 내가 최우선으로 여겨야 할 것은, 광활한 이 세계라는 것을. 세계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그 안에 존재하는 세계적 존재자와 세계내부적 존재자들을 더 폭넓게 인식할 수 있다면, 나는 더 깊어질 수 있고, 이 세상에 더 많은 거룩한 의미들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수험생활은, 분명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 전제되어야 하는 시기이다. 다만, 그런 명분으로 이 세계를 보는 눈까지 닫아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어리석다고 할 것이다. 나뭇잎과 햇빛과 같이 일상적으론 인식되진 않지만 분명 내 곁에 존재하고 있는, 존재자들의 이름을 불러 보며, 순수하게 이 세계를 사랑하고, 더하여 그 안에서 푸르게 호흡하는 나를 배워가는 시간. 그것이 진짜 "수험 생활"이라고 생각한다.
때론 공부를 잠깐 멈추고 나무 사이로 숨은 햇빛을 찾아다녔으면 좋겠다.
그럼 알게될 것이다. 언제나 이 세상은 당신을 비추어왔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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