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회복기11)삶의 진전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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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과 도시의 사이에 살고있는 나. 저녁에는 풀내음을 맡으며 추억에 잠길 수도 있고, 파란 불의 행렬을 보며 도시의 적막함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광경이 펼쳐지든, 내가 준비되지 않는다면 나는 그들을 사랑할 수는 없다. 시골의 싫지않은 풀향도, 도시의 좋은 빛깔도.
공황이 조금 심했을 때엔, 내게 펼쳐진 광경이 도시인지 시골인지 분간이 잘 가지 않았다. 모두 나를 공격하는 듯한 건물이었고, 형상이었고, 무기였다. 삶의 거리보다는 죽음의 거리가 더 가까웠고, 또 그래서, 자살을 하는 이의 심정이 처절히 공감이 되던 시기였다.
약물의 도움 덕인지, 그런 힘듦 속에서도 삶을 유지하려는 나의 정신력 덕인지는 몰라도, 이제는 삶이 내게 더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시골의 향이 느껴지고, 도시의 일상을 내 눈 화폭에 담아내는 것이 어렵지 않음을 실감하면서. 인생은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것이라지만, 내게 펼쳐지는 아름다움 앞에서는 그 얘기를 함부로 할 수 없을 정도다. 세상이 너무 예쁘다. 나를 반기는 사람들도, 하루종일 나를 비추어 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헤어질 땐 꼭 타오르는 빨강으로 작별을 건네는 태양도, 밤에 쓸쓸할까봐 문안 오는 달님도, 모두.
그러다 보니, 이 삶의 진전 앞에서 나는, 삶의 아름다움을 문득 공유하고 싶어진다. 요새는 그렇다. 내가 남는 것이 있으면, 이것을 남에게 베풀어 주고 싶고, 내가 얻은 것이 있으면, 이것을 남과 함께 나누고 싶다. 무한한 열등감과 불안감에 시달려오면서 살았던 삶, 그것이 천천히 속죄하려는 듯.
나를 돌봐주고, 지켜주는 이들이 있어 오늘도 푸르게 호흡하며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들이 내게 베풀어 준 풀님의 향기와 나무의 슬픔, 그리고 시냇물의 눈물, 벌레의 울음, 자동차의 경적, 탑승자의 바쁜 일상, 횡단보도의 아픔, 나 자신의 감정을 잘 간직하고 채록해서 본연의 나를 성숙하게 하련다.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이익과 나름의 성과들을 다시 베풀어야지.
아, 문득 다시 속삭여보고 싶어진다. 삶의 진전 앞에서, 삶의 진전 앞에서, 삶의 진전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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