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OO32 [743446] · MS 2017 (수정됨) · 쪽지

2020-08-23 00:3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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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그릇 싸움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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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쵸 뭐 사실 정부가 하자는대로 하면 오히려 악화되면 악화되었지 국민 의료 환경이 개선되진 않을 거 같긴 해요. 근데 솔직히 그거 때문만은 아니잖아요. 그건 약간 입시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학종 철폐 정시 확대를 주장하는 대치 키드 같은 거예요.


근데 왜 이런 문제가 다 그렇잖아요. 우리 생각에야 그냥 쿨하게 인정하면 될 걸 뭐하러 저런 식으로 정의로운 척하지? 오히려 그게 더 역겨운데? 하겠지만 막상 또 그런다고 긍정적인 결말을 맞이할 거 같진 않아요. 몸 속 깊은 곳에서부터 밥그릇 싸움 자체에 대한 혐오감이 올라오는 사람한테 "그건 잘못된 태도입니다."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으며 어떤 정의가 있을까요.


사실 의사만 억울한 건 아닐지도 몰라요. 원래 이번 정부가 상류층으로 올라갈 듯 말 듯 하는 사람들부터 평범한 중산층까지의 계층을 공격하면서 사회의 하방안정성을 마련하려는 행보를 보였잖아요. 슬프지만 의사는 그 조건에 너무나도 잘 들어맞는 거 같아요. 


더 슬픈 건 뭐냐면 어차피 정부의 의도대로 착실히 진행된다 해도 상류층에 속하는 의사들은 별로 피해도 안 볼 거란 거예요. 오히려 이득 보는 사람들도 있겠죠. 제일 타격 입는 사람은 자기 머리 하나로 의대 와서 학자금부터 자기가 해결해가면서 그래도 전문의 따서 페닥하면 월천은 버니까 집도 사고 부모님도 부양할 수 있겠지 하는 사람일 거예요. 당장 휴학 문제부터 제일 치명적인 손해를 보고 있죠.


맞아요 사실 대한민국에서 가난한 집 애들이 편한 데가 어딨겠어요. 맞아요 사실 대한민국에서 아무리 똑똑해봐야 다 고생하잖아요. 대기업에 들어가도 맨날 쥐어짜내는 삶에 지칠 때쯤 짤리는 사람들이 대다수고, 연구를 하려고 해도 엄청난 로딩과 비용부터 가로막고, 로스쿨은 또 어떻고. 다 그렇죠 뭐.


누가 그러더라고요 이게 당연한 추세라고, 공부 좀 잘하는 게 뭐라고 다 지들이 가져야 되는 줄 아냐고요. 사업을 하든 하다못해 유튜브를 하든 도전을 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게 당연하다고요. 그치만 그런 사회에서는 한 번의 도전 실패가 3대의 파멸을 가져올 계층에서 신분 상승을 하기에 더더욱 힘들 거 같아요. 공부는 그래도 그게 있잖아요. 일단 다들 하는 거고 나쁜 짓 안하려면 안할 수 있고요. 무엇보다도 차선책이 있고요. 


그러니까 의사 페이가 무너지는 건 가난하거나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좀 똘똘한 애가 큰 위험부담 없이 도달할 수 있는 평균값이 무너지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이러면 또 의대는 부자만 간다던데... 하고 실제로도 부자는 아니지만 이번 정부가 제일 싫어하는 계층이 제일 많이 오는 거 같긴 한데.. 근데 그렇다고 대한민국에서 일반고 1.3에 3합4라는 조건보다 서민층의 자녀가 충족하기 쉬운 사다리가 있는 거 같지는 않아요. 


일반고 내신 1.3에 3합4로 인생 역전을 주장하지는 않아요. 그냥 누가와서 꾸역꾸역 빚 내면서 적당히 돌 안팔 정도로 노력하면 자기 부모님 노후부터 본인의 노후, 어쩌면 자식의 결혼까지 약 2.3세대 정도에 평범한 생활 수준을 부양할 수 있는 정도. 서울 사람이면 서울 시내에 집 하나를 근로 소득으로 살 수 있는 정도. 딱 그 정도의 사다리. 딱 그 정도의 보루 하나 정도는 있었으면 어떨까 싶어요.


그 보루 하나를 위해 나름 그래도 제일 똘똘한 애들이 어디 공대를 가든 문과를 가든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사람이 될 개미 눈곱만한(하지만 사실 확률 x 기댓값 하면 의사보다 못하지 않는) 확률을 포기하고 11년+a를 갈아넣는다는데, 이 정도면 뭐 그렇게 노양심은 아니잖아요.


사실 이까지 읽어주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요. 읽더라도 별로 동의하는 사람이 많을까 싶기도 하고. 사실 저도 그럴 거 같아요. 솔직히 존나 재수없는 의대생들 개많잖아요.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그렇게 편협하고 공격적인 사고를 하게 되는지도 모르겠고. 사실 알아요 오르비만 봐도 뭐 공부가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 나오게 만드는 사람들이 어떤 인생을 사는지 보이긴 하니까.


그냥 슬퍼요. 그렇게 될 때까지 넌 뭐했냐는 말이 너무 가불긴 게 왜 누가 그랬다잖아요. 현대 사회의 제일 큰 문제가 현명한 사람들은 끊임없는 자기 의심을 해서 가만히 있고 어쩌고하는 내용인데 근데 뭐 제가 현명한 사람이라는 거 같아서 좀 그렇긴 하네요. 그냥 현명한 사람이 가만 있는데 나도 가만 있을 수밖에 없다 정도로 해줘요


그냥 다 싫어요. 본인들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정부도 싫고 그 정부 도와주는 의대생들 글도 싫은데 내 밥그릇 챙겨주려는 게 네이버 틀딱들이라는 게 제일 싫어요. 사실 파업 이야기 나왔을 때 순간적으로 든 생각이 만약 1년 늦어지면 가정경제에 미칠 영향이 뭔지고 그 다음으로 생각난 게 피해 볼 응급환자였던 제 자신도 싫어요. 그냥 로또나 됐으면 좋겠어요. 그냥 눈 깜빡하면 어른이 되어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사람은 안 죽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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