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쥬✨ [979083] · MS 2020 (수정됨) · 쪽지

2020-08-12 23:4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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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 투병기3)잔돈은 됐어요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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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내려가자. 나에게 끝없는 두려움과 무력감을 퍼붓는 이 도시와의 싸움은 잠시 피해야 한다. 공황이 있는 탓으로. 물론, 서울에 있으면야 공황이 자주 발생할 것이기에, 노출훈련과 직면훈련을 하기에 딱 좋은 상황이 만들어질 테지만, 그것보단 가족과 삶의 의지가 있는 ‘고향’으로 가는 것이 낫다. 


그리하여, 오늘 내 단칸방에 남은 짐을 정리했다. 우체국 택배 상자 5호 2개 정도로 꽉꽉 채워진 나의 물건들. 여기에 있으면서 그대들에게 순수한 이름 조차 불러주지 못한 것에 미안해하며, 침잠하는 마음으로 우체국에서 이들을 부치기 위해 택시를 불렀다.


XXX - XXXX. 택시는, 표지판을 자랑하며 , 어디로든 달려갈 수 있을 만큼의 속도를 잠시 감추고 내 앞에서 정차했다. 꽤나 복잡한 마음으로, 이제 고향으로 갈 수 있다는 안도감과 서울에서의 삶과 헤어져야 한다는 슬픔을 적절히 섞은 피프티-피프티의 감정 배합비율을 내 뇌에 명령하자마자, 택시의 트렁크가 열렸다.


짐이 두개였던 데다, 멈춘 택시 바로 뒤에 승용차 한 대가 경적을 울리고 상황이어서 친히 택시 아저씨께서 내려서 나의 짐을 트렁크에 실어주셨다. 부끄럽고 감사한 마음으로 택시에 타니, 아저씨께서 질문을 하셨다. 


‘학생, 시골로 내려가는 거야? 벌써?’


-예, 몸이 좀 안 좋기도 하고, 방학이기도 해서요. 당분간은 저만의 시간을 고향에서 조금 가지기로 했습니다.


‘어디가 안 좋은데요? 마스크는? 마스크 안 쓰면 우체국에서도 뭐라고 할텐데!’


-헤에에.. 맞다.. 짐 정리를 너무 바쁘게 한 나머지 까먹었어요. 

앗, 저는 공황장애를 앓고 있습니다. 


‘그거 약물치료 해야 하잖아! 근데, 고향이 어디예요?’


-대전입니다. XX구 XX동에 살고 있어요.


‘아저씨도, 대전 1년에 한 번은 가요. 벌초하러. XX산에도 자주 올라 갔었지. 예전에는.’


살고 있던 곳에서 우체국까지는 차로 4분 정도 가면 되었어서 대화가 한창 시작될 무렵에, 우체국 간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튼, 정신이 건강한 게 최고야. 잘 내려가요. 짐 내리는 거 도와줄게. 그리고, 마스크 하나 챙겨가요. 우체국에서 뭐라고 한다구!’


따스함이 내 마음에 가득히 찬다. 짐을 다 내린 후에, 가벼운 90도 인사로 그 감정을 짧게나마 택시아저씨께 전달해드리고, 우체국에서 짐을 붙였다.


공황장애를 앓다 보면, 가끔은 어차피 죽을 것은 자명한데 왜 그리도 욕심 부리고 악착같이 살고 있는가고 하며, 무력감에 침잠할 때가 있다. 그런 순간 속에서는, 내가 미쳐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고, 이것이 단초가 되어 신체화 증상으로 이어진다. 적어도 내 공황의 발생 회로는 이런 순서로 구성되는 성싶다.


하여튼, 이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해볼 수 있는 실마리가 오늘 한 택시 아저씨로 부터 전해진 것 같다. 어쩌면, 어쩌면 말이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우유성(Contingency)’ 때문일 지도 모른다. 수많은 YES와 NO가 공존하는 세상에서 나만의 해답을 얘기하며 나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과정. 그것이 삶일지도 모른다. 때론 죽음의 두려움에 휩싸이곤 하는 공황장애에 걸려 잠시 동안의 NO를 선택할 수도 있지만, 곧바로 우연한 사람으로부터 우연하게 오늘처럼 우울감을 꺼내놓을 수 있는 YES를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모르기 때문에,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 아닐까? 공황장애의 NO가 미래의 내겐 YES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공황장애를 이겨내며 어떻게든 삶을 유지해나가는 것이, 시도때도 없이 찾아오는 그 무기력을 이겨내며 마후마후가 외쳤던 것처럼 울고, 웃고, 사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 나는 공황장애를 앓고 있으나, 그 질병으로부터 배운 교훈들도 적지 않다고 본다.


메이비만큼 아름다운 단어는 없다고 얘기한 이어령 선생이 스물스물 이해가 되는 요즘이다. 인생의 중심, 그리고 삶의 목적을 이 ‘Possibility’에 맡겨보는 것은 어떨는지. 질문하고 곧바로 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움직이는, ?와!의 조화, 인테러뱅(Interrobang)처럼. 


누군가는 Hope is 0라고 주장할 지도 모르겠다. 한데, 0은 모든 것의 시작이기도 하다. 0이 없다면 그 어떤 것도 시작될 수 없고 발전할 수 없다. 내게 삶의 희망이란 현재까지는, 그런 것이다. 모든 삶의 행동과 의지를 가능케하는, 하지만 나를 끝없이 불안케 만드는, 그러기에 소중한 것. 


이 사념을 내 스스로 발견할 수 있게 해준, 더 깊어질 수 있게 해준, 한 택시 아저씨께 이 글을 바치며. 잔돈은 됐어요, 아저씨. 오늘은 기분이 좋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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