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 핵물리학 전공 교수의 글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30542369
제 페친이신 분인데 둘러보다가 의미있는 글이 있어서 가져왔어요.
전공이 제 전공이기도 하고 저는 이분과 비슷한 상황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아니더라도 학벌과 실력 관계에 대해 고민해볼 만한 글이예요.
아, 그리고 물론 더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가는 게 더 좋은 실력을 가지는 쉬운 방법이니까 이것도 참고하시길
*****************************************************
이국종 교수가 쓴 에서 그가 아주대학교 출신 의사였기 때문에 욕을 들어먹고, 비웃음을 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의협에서나 정부부처에서나 그가 서울 근교에 있지만, 여전히 지방사립대인 아주대학교 대학 병원에서 일하기 때문에 당했던 일들이 열손가락, 열발가락으로 다 꼽을 수 없을 만큼 나온다. 그게 자격지심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그랬기 때문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학벌이란, 껍데기일 뿐이라는 것. 내가 지난 30여년 동안 겪은 몇 가지 일에 비추어보면 말이다.
1. 대학에 입학해서 겪은 일이다. 교수 중 한분은 "우리학교는"이라는 말을 자주 입에 담았다. 그런데 그 우리학교가 자신이 나온 "서울대학교"를 의미하는 걸 알았을 때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가르치는 수준을 아주 낮춰서 가르쳤는데, 그땐 그게 수준 낮은 것인줄 전혀 몰랐다. 난 나중에 전자기학 공부를 다시 하면서 그렇게 낮은 수준으로 배우면 양자역학을 배우거나 그 윗 과정을 배울 때 혼자서 전자기학을 다시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혼자서 역학, 전자기학, 양자역학을 다시 다 공부해야만 했다. 뭐, 어차피 공부란 혼자서 해야 하는 거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다지 불만이 없다. 이 덕에 지금 내가 강의할 땐 그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도록 애쓴다.
2. 대학원 다닐 때 일이다. 지도교수께서 내게 그 당시 한참 유행하던 스컴 모형을 이용해 핵자의 성질를 연구하라고 했다. 지도교수는 저에너지 핵물리를 하신 분이었지만, 강입자물리에 관심이 있어 내게 스컴 모형을 한번 공부해보라고 했다. 그래서 세미나를 하면서 모형을 어느 정도 익힌 다음에는 서울대 핵물리이론 그룹에 가서 같이 세미나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외부 초청인사가 와서 세미나를 했는데, 그분을 소개하면서 "학부는 당연히 서울대를 나오셨고..."라고 말하는 거였다. 나는 그 "당연히"라는 말에 귀가 거슬렸다. 뭐랄까, 묘한 반감 같은 거라고나 할까? '왜, 물리는 꼭 서울대 나와야만 할 수 있는 거야?'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그땐 그랬다. 뭐, 열등감이 좀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열등감과는 거리가 멀다고 늘 생각했지만 말이다.
3. 그리고 한참 후, 독일에서 박사를 한 뒤, 독일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느라 내 출신 성분을 완전히 망각하고 살았는데, 부산대에 교수가 되었다. 출신 성분을 그다지 따지지 않았던 그 당시 부산대 물리학과를 여전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교수가 된 후, 몇 주 지나서 내가 들은 말이다.
"인하대 출신이 어디 한번 잘 하나 봅시다."
아, 그렇구나. 난 인하대를 나온 사람이었구나, 각인시켜 주는 말이었다. 그 말에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그냥 난 피식 웃고 말았다.
서울대를 포함한 SKY나 명문학교를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좋았던 건 나빴던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
I. 50이 넘어 명문 리그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만큼 날 자유롭게 해주는 건 없었다. 그 어디에 속할 필요도 없다는 것. 참고로 난 내가 나온 인하대 동문이나 상문고등학교 동문이나 그런 동문이라는 것을 참 우스운 것이라고 여긴다. 그저 친목회 정도라면, 나가지만, 그걸 벗어나면, 나는 발을 끊는다. 그딴 건 자유롭게 사는 걸 방해할 뿐이다. 특히나 끼리끼리로 가면, 그땐 쓰레기 수준이 되는 거다.
II. 난 학생들을 대할 때 한번도 그들이 고등학교 때나 학부 떄 이뤄놓은 걸로 대한 적이 없다. 아무 선입견 없이 그에게도 언젠가는 터져나올지 모르는 잠재력이 있다는 걸 늘 전제로 학생들을 대했다. 그리고 그 학생들 대부분 대학원에서 잘해 냈다. 그중에 한 명은 교수도 되었고, 외국 연구소에 종신직 스태프도 되었다. 물론 개중에는 게으름 때문에 사그라든 친구들도 있었다. 그건 게으름 때문이었지, 그가 이 잠재력이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물론 부지런함도 능력이라면, 능력이 없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III. 난 학벌 때문에 교만할 이유가 없었다. 학생들에게도 자주 말하지만, 교만과 열등감은 샴 쌍둥이다. 내가 명문대를 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열등감이 있다면, 신입생 수능 성적 기준으로 내가 나온 대학보다 못한 학교를 나온 사람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오만하게 대할 것이다. 그런데 그딴 건 다 쓸 데없는 것들이다.
그래서 결론은 이렇다. 학벌은 그냥 껍데기일 뿐이다. 그 껍데기만 보면, 한 인간이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고통이 있었는지, 어떤 번민과 고민이 있었는지 알 길이 없다. 인생을 풍부하게 사는 건,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껍데기만 보는 사람은 한 사람이 왜 소중한지 모른다. 그러니 그런 자들은 얼마나 많이 공부했느냐와는 상관 없이 그 자신이 껍데기일 뿐이고, 속물일 뿐이고, 궁극적으로는 어리석은 자들인 것이다. 이런 모든 것에서 놓여나면 인생이 참 자유롭다는 걸 알 것이다.
여기까지가 이국종 교수의 를 읽고 느낀 점이다.
하나 더: 빠진 게 하나 있다. 난 독일 본대학교에서 박사를 3년 만에 한 뒤, 보훔대학교에서 연구원 생활을 했다. 그때 유학생들은 모두 내가 서울대 나온 줄 알았다는 게 내 집사람 말이었다. 이 또한 사람 기분 묘하게 만들었다. 왜, 꼭 서울대 나와야 박사를 3년 만에 하고, 독일에서 연구원 생활을 할 수 있나? 그때도 내 속은 여전히 연구를 잘 못해서 허덕이며 살 때였는데 말이다. 학벌만 보면, 상대방 마음 속은 전혀 안 보인다.
하나 더 더: 난 부산대에 십 년 있다가 인하대로 옮겼다. 그건 모교라서 옮긴 게 아니라 오로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혼자 인천에 남아 생활하시는 아버지 때문이었다. 결국 재작년에 아버지도 돌아가셨으니, 이제 난 어디든 다시 갈 수 있다.
****************************************************
결국 실력을 누구보다 키워서 제 가치를 올려야겠다 싶습니다. 이 교수님이나 저나 교수나 학자들이 많이 나온 설포카 연고 서성한 출신이 아니지만 본인의 가치를 키워서 그 윚시에 간 거고 그 위치에 가기 위해 노력한거잖아요. XX대 출신이라도 열심히 해 봐야겠습니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독서 문학 둘다 인강 들으시나요? 아니면 그냥 푸시나요?
-
모의고사 보고 맛있다는 표현 절대 안 하는데 오늘 그릿모 보고 감탄함 진심 문학...
-
자꾸 글을 읽다가 팅기는 느낌이 들어서 양치기 해보려는데 인강이든 문제집이든 추천부탁드립니다!!
-
김상훈 T 스키마플랜은 리트나 사관학교 지문을 n제로 실어놓으신건가요???...
-
난이도 어때요? 하
-
김승리t 수강생인데 그릿 풀려고하는데 일등급습관까지 추가하면 빡셈? 주간지로...
-
그릿 주간지 1
김승리t 수강생인데요 허들 전 남은 시간에 김상훈t 주간지 풀려고하는데 그릿...
-
그릿 복습 0
그릿 복습하시는분 있으신가요?? 혹시 있으시다면 어떻게 하시는지 알려주세요..
-
체감난도 거의 작년 수능급이었는데 저한텐...86이면 2등급일려나요...
-
현강용 모의고사는 답지가 따로 없나요?ㅜㅜ 파이널 시즌 중에서 그릿 1회 현강용을...
-
상훈쌤 현강자료를 다른 분으로부터 구매해서 공부하고 있는데, 9평 이후 파이널시즌에...
-
GRIT 다 풀었는데, 이원준T 300제 풀어도 괜찮을까요? 1
2019 GRIT심화, 필수와 2020버전 GRIT심화, 필수 모두 다 풀어서...
-
알려주세용!!
-
오늘 제가 탈식민주의이론 지문을 읽었는데 수능 국어지문하고 구조가...
-
그릿 문학 차냥글 11
현대소설 첫 지문부터 감수성 터지게하네요.. 평소에 작품들 읽으면 혼자 박수치고...
-
Grit 하시는분들 10
하루에 보통 몇지문씩 푸시나요? 그리고 그냥 문제만 푸시나요? 아니면 분석(?)같은거 하시나요?
-
그릿꿀잼이네요 2
퀄도 좋고 특히 현대소설파트 소설들이 다 꿀잼ㅋㄱㄱㅋ
ㄱㅇㅇㄷㅇ
아ㅋㅋ
경험에서 우러나온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ㅎㅎ 페친 ㄱㅁ
물리학자시길래 제가 페메넣어서 걸었습니다ㅎㅎ

나중에 들어가실 랩실의 지도교수님이 삶작 부럽네요 ㅋㅋㅋ 기말고사 준비 홧팅하세요
감사합니다학벌 보단..아주 좋은 논문이 있으면 아무도 뭐라 말 못함
ㄹㅇ이거죠
출신 대학에 방점을 강하게 찍고 사는 사람은 대개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과도한 신경을 쓰는 사람이죠.
내가 내 눈으로 나와 세계를 보며사는 게 내 삶인 것인데요.
주체적 삶을 사는 멋진 사람으로 또 훌륭한 물리학자로 성장하시길 바랍니다.

늦게 확인했네요...말씀 감사합니다근데 서성한 라인에서 교수가 많이 배출되긴 하나요?
거의 없는 걸로 아는데
물리학 전공은 대학원 기준 서성한중경외시 출신도 제법 있고, 심지어 거점국립대 출신도 몇 있더라고요
물리/천문 전공은 워낙 사람이 없다 보니까 실력에 더 의존하더군요
석사는 서성한 중경외시도 어느정도 있을텐데
교수는 자대 교수 제외 사실상 거의 없다고 들음
본 글 주인공도 비서울대라는 것에 고통받았었구.
자대 교수면 모르겠다만. 물론 과바과긴 하죠. 문과는 회계학 쪽이 학벌이 그나마 다양한 편이듯이.
일단 교수는 그럴 수 있죠. 다만 제가 다양한 교수들을 만나면서 들은 사례고, 공대는 오히려 설카포가 압살한다만 물리 쪽은 수요가 없다 보니까 오히려 상대적인 학력에 대한 장벽은 낮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성대 교수 중에 서강대 학석박 출신이, 전북대 교수 중 경북대 학석박 출신이 있으니까요. 다만 서울대-비서울대에 대한 "인식"과 "실력"은 경우에 따라 별개일 수 있음을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자대교수를빼면 서성한중경외시 학부에서 교수되기 어려운것 같습니다. ㅜㅜ 핵물리학쪽은 다소 다를수도있겠지만 석사고민때 여러대학들 목표랩 홈피들어가보면서 그때 연구계에서 학벌의 힘을 적잖게 체감했었습니다.
그나마 그쯤에서는 자대 교수라도 가능성이있지만
더 낮은 학부부터는 자대교수도 되기힘든경우가 많아집니다.
그래도 지거국 정도면 특수과의 경우 자대 임용 어느정도 되는것으로 알아요.
윗댓 확인바랍니다..저도 어느 정도 경험하고 쓴 거라...
(+전 목표가 교수가 아니예요ㅎㅎ)
근데 쓰신 글 보면 정말 열정적이신 것 같은데, 쭉 가시면 자대 임용 교수 욕심나시지 않을까요? 석박사 퍼포먼스에 따라 자대 임용 교수 가능하실 것 같은데. 물론 제가 직접 논문을 본 것도 아니지만, 님 에팃툳만 보면요.
음...상황을 지켜보긴 해야겠지만 교수는 크게 고려하고 있진 않습니다ㅜㅜ석박+포닥을 정말 우수하게 성공한다면 모르겠지만요..
저도 얼핏 들은 것이지만 자대 임용 비율이 높은 대학이 성대,중대,경북대 etc로 들었거든요. 암튼 건투를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