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황오리 [823972] · MS 2018 · 쪽지

2019-11-03 22:28:28
조회수 8,542

오르비에 남기는 마지막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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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울대생이라 말하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입학 직후부터 지금까지 쭉.

제가 서울대생임을 최대한 밝히지 않으려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오만함임을 느낍니다.

사실 서울대생임을 누구보다 드러내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서울대가 특별하다는 생각을 하였기에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특별한 학교가 맞을지도 모릅니다.

한국에서 가장 학업능력이 우수한 학생들이 오는 곳이니까요.

그러나 제가 그 학교에 속한다고 해서 그 학생들이 되는 것이 아님을 머리로는 알아도 모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적이 안 좋아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서울대생이니까요.

부끄러워졌습니다.

불성실하고 배움이 부족했던 것이니까요.


필요없다고 공부를 안한 과목도 있었습니다.

그 과목 성적이 안 좋아도 전 잘 살 수 있으니까요.

부끄러워졌습니다.

필요로 학문의 가치를 따지는 우를 범했으니까요.


말로는 순수한 지식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면서도

저 역시도 순수한 지식을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수능이 11일 남았습니다.

여기서 또 많은 분들이 서울대학교에 합격할 것입니다.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시면 축하에 이어 가장 먼저 들을 이야기 중 하나는 안 좋은 성적에 낙심하지 말라는 것일 것입니다.

괜찮다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네. 낙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보다 좋은 성적을 받은 학우들은 여러분의 경쟁자가 아닌 동료들입니다.

좋은 동료를 가진 것에 기뻐하십시오.

그러나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들은 동료일 뿐 여러분 자신이 아닙니다.

성적에 목숨 걸라는 것도 아닙니다.

술도 마시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야죠.

이 속에서 얻을 것도 있습니다.

그냥 그저 확실히 놀든 공부하든 하자는 것입니다.

공부를 외면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많은 생각이 들다보니 정리가 되지 않아 글의 개연성이 떨어졌을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 수능과 관련되지 않은 글을 올리는 것이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에 대한 반성을 하고 싶었고, 저와 같이 어리석고 오만한 소수의 후배님들께 그러지 말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서울대학교를 다닙니다"

이 말에 부끄러움도 자랑스러움도 없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제 학교에 대한 사랑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합리화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할 때는 하는 학생이고 싶습니다.


후배님들 미리 합격 축하드리고 후회 없는 학교 생활해봅시다.


'ㄱㅁ'이라는 말을 쓰고 넘어갈 수 있는 상황에서 그 사람에 공감하지 못하는 저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렇게  'ㄱㅁ'이라 말하지 못했습니다. 'ㄱㅁ'이라는 쉬운 말로 저 자신의 떳떳하지 못함을 더이상 덮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오르비에 마지막 글을 쓰리라 결심하고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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