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학자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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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런 글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비록 천박하기 그지 없는 글이지만, 미래를 이끌 세대들이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해주었으면' 하고 감히 바라기에...
이름과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지만, 강한 인상으로 남는 이들이 있다. 1992년 혹은 1993년에 만났던 ‘그’가 그런 사람이다.
그는 어느 국책 연구소의 연구원이었다. 당시 나는 해당 연구소의 문제점을 취재 중이었다. 연구원 사이에 “기자가 취재하고 다닌다더라”는 소문이 돌았던 모양이다. 나를 만나자고 했다. 삐삐로 연락이 왔는지, 회사 내선 전화로 연락이 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북창동의 어느 음식점에서 그와 마주했다. 20대 후반의 나에게, 그는 한참 선배처럼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기껏해야 40대 초반이었을 터. 그리 크지 않았고, 말랐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주 차분하게 해당 연구소의 문제점을 이야기했다. 기자를 하면서 숱한 ‘내부 고발자’를 보았지만, 그 만큼 나지막하지만 단호한 어조와 논리로 내부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한데...
연구소의 문제점에 대한 이야기 중 구체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이제는 단 하나도 없다. 그를 지금껏 기억하게 만든 것은, 대화 중 나온 그의 이런 이야기였다. 당시 우리 사회에는, 이건희 삼성 회장이 했다는 “국민은 1류, 경제는 2류, 정치는 3류”라는 이야기가 유행하던 때였다.
“에이.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어떻게 정치가 3류가 되나요? 그래도 이 사회의 최고 엘리트들이 하는 게 정치인데. 만약 정치가 삼류라면, 그런 사람을 뽑아주는 유권자 역시 삼류라는 이야기입니다.”
당시는 그냥 듣고만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말은 지금 내 귓가에 대고 하는 목소리처럼 또렷해져만 갔다.
우리, 아주 솔직하게, 패를 까놓고 이야기하자. 솔직하게,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사실을 들여다볼 때 중요하니까...
국회의원의 평균 예비고사, 혹은 학력고사, 수능 점수보다 높은 직업군이 과연 몇 개나 될까? 변호사나 의사, 혹은 행정고시를 통과한 직업 공무원, 그리고 ‘손꼽히는’ 중앙언론사 기자(기자에 대한 나의 이 ‘애정’이란!) 정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똑똑할수록 쓰레기“라는 이야기인가? 교육은 그럼 이 사회에서는 완전히 실패한 것인가? 그렇다면, 광복 이후 이 사회가 이룬, 전 세계가 놀라는 발전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보다는, ‘권력’이 가진 속성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원적인 추악함 혹은 이기심을 가장 잘 드러내는 직업이 정치인이어서가 아닐까?
인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던 몇몇 문인들이 정치판에 가서, 혹은 정치판을 기웃거리며 ‘지극히 비논리적이면서도, 분노와 적의만이 가득한 말’을 쏟아내는 것을 숱하게 보았다.
나에게 가장 대표적으로 꼽히는 사람은 섬진강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던 시인이었다. 그가 쓴 시와, 그가 어느 정당의 대변인으로 있으면서 뱉어낸 말은 사뭇 달랐다. 그것만을 보고, “문인들은 위선자이고 쓰레기 같은 놈들이야”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기자를 하면서 지켜보았던 국회의원은 정말로 대단한 자리였다. 단지 사회적 대접이 좋다는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그 자리는, 자신이 이 사회에서 바라는 사회상을 육화시킬 수 있는 직위였다.
여자가 아니기에 함부로 말할 수 없지만, 남자의 경우, 나이가 들수록 성욕은 감퇴하는 대신, 사회적 실현 욕망은 더 커지지 않는가? 최소한 나는 그랬다. 그 욕망을 가장 잘 실현시킬 수 있는 자리가 국회의원 혹은 ‘중앙 정치인’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가?
그렇기에, 정치인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싸움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싸움판’이 될 수밖에 없다. 한데, 그 자리에서 아름다움만을 이야기하고, 공자나 맹자의 이야기만 할 수 있을까? 이기는 전략과 전술을 논할 수밖에 없지... 그러다보면 말과 행동도 거칠어질 수밖에... 죽이지 않으면 죽는 전쟁터에서, ‘성선’을 이야기하는 사람만큼 비현실적인 이가 있을까?
이름과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 학자의 이야기를 들은 지도 근 30년이 돼 간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이야기는 내 귓전에서 여전히 생생하게 울리고 있다.
정치인들은 쓰레기야, 라고 욕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그저 ‘만약 당신의 말이 옳다면, 그것은 정치인이 쓰레기인 것이 아니라, 사람의 본성이 쓰레기이기 때문’이라고 혼자 생각하고 만다. 그런 사람이 정치를 할수록, 우리 사회는 더 뒤처질 것이라고 확신하며 쓴웃음을 짓는다.
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전혀 이해 못하는 사람이니까...
인간의 본성에 대한 몰이해가 빚은 참극은 20세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역사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지 않는가!
이기심을 없애자!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자!
아, 얼마나 아름다운 소리인가? 한데, 그런 구호를 육화시키고자 했던 정치체가 초래한 결과가 뭐였던가? 그런 사회에서 특권이 없어지지도 않았음은, 소비에트까지 갈 필요도 없이 북한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을...
정자들이 어디 구수회의를 해서 “우리 중 가장 나은 놈을 수정시키자”고 하는가? 그저 본능에 따라, ‘나를 남기자’는 일념으로 난자에게 향하는 것이지. 인간이란 원래 그런 존재로부터 출발한 것일지니...
기자를 하면서 배운 최고의 덕목은 ‘주장보다는 사실을 숭배할 것’이었다. 기자를 그만 둔 지 이제 10년도 더 지났지만, 그 가르침은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다.
이제는 얼굴과 이름조차 기억 못하기에, 어느 붐비는 지하철 전동차량 안에서 얼굴과 얼굴을 맞댈지라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지만, 1990년대 초반, 나에게 큰 가르침을 주었던 어느 학자를 여전히 잊지 못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후기.
그 기사는 결국 게재되지 않았다. 해당 연구소에서 데스크, 혹은 더 위의 책임자에게 사정을 한 탓이었을 것이다. 편집까지 마친 글이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는 그런 일이 흔했다. 나 역시 한 마디도 불평하지 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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