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 ‘설’을 아십니까? -1990년대 이전, 기자들의 한자 표현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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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꼰대의 옛 이야기입니다. 입시 사이트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는. 하지만, 언론인을 꿈꾸는 분도 있을 듯 하여, 옛날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냥 심심할 때 웃자고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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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생활을 시작한 건 1990년 2월이었습니다.
기자 수습 생활은 대부분 사회부에서 시작합니다. 경찰서를 출입하면서 사건 기사를 챙기는 일부터 배우는 것이지요. 육하원칙에 따라, 사건의 내용을 쉽게 요약하는 법을 배우는 게 기사 작성의 출발이니까.
지금이야 ‘기레기’로도 불리지만, 당시 기자는 지금보다는 사회적 인식이 훨씬 좋았다고 봅니다. 그 직업적 자부심을 표상하는 건, 당시로서는 ‘특수 직업인들’만 가지고 다니던 삐삐였습니다. 1990년대 전반 이후 대중화됐지만, 1990년에 삐삐를 가지고 다니던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해당 직업인들만 사용하는 말’을 내가 사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해당 직업에서만 통용되는 은어’를 안다는 것만큼 귀속감을 높이는 것도 드물지요. ‘기자들이 한자를 표현하는 방식’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인터넷도 없고, 노트북은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던 당시, 회사가 아닌 곳에서 기사를 작성하면 기자들은 회사에 전화를 걸어 기사를 ‘읊었습니다’. 팩스를 갖춘 곳도 많지 않던 시절이었으니까.
당시 신문 기사는 사람 이름을 적을 때 한자를 사용했지요.(방송은 ‘발음’으로 보도하니, 방송 기자들은 일반적으로 한자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金虎重이 이름이라면, ‘성 김, 범 호, 무거울 중’이라고 하면 상대가 김호중의 정확한 한자어를 받아 적는 방식이었습니다.
한데 훈을 바로 알아듣기 어려운 한자도 숱합니다. 예를 들어, ‘原’의 훈은 ‘언덕 혹은 근원’입니다. 한데 ‘源’의 훈 역시 ‘근원’입니다. 만약 사람 이름이 ‘金原中’이라서 ‘성 김, 근원 원, 가운데 중’이라고 읊었지만, 기사를 받아 적는 사람이 ‘金源中’으로 잘못 받아적을 수도 있는 겁니다.
그래서 등장하는 게 ‘용례’입니다. ‘原’을 ‘강원도 할 때 원’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부르기도 힘든 경우가 있습니다.
‘卨’(설)이라는 한자가 있습니다. 일반 단어로는 거의 쓰이지 않고, 사람 이름에 주로 들어갑니다. 훈은 ‘사람 이름 혹은 (중국 왕조인) 은나라 시조 이름’입니다. 고종 때 이준 열사와 함께 헤이그에 파견됐던 3인의 한 분이셨던 이상설 선생의 설 자도 이것을 씁니다.
한데 이 한자를 전화로 어떻게 설명할까요? ‘이상설 선생 할 때 설’이라고 한들, 알아듣기 힘든 사람도 있을 겁니다.
이때 등장하는 게 한자의 모양을 본뜬 ‘훈’입니다. 卨 자를 잘 보시면 탱크처럼 생기지 않았나요? 그래서 기자들은 卨 자를 읊을 때 ‘탱크 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면 그 누구라도 알아들으니까.
允(윤) 자도 마찬가지. 훈은 ‘맏(’맏이‘라는 의미) 혹은 진실로’입니다. 한데 모양새가 오징어 같지 않나요? 해서, 기자들은 이 한자를 ‘오징어 윤’이라고 불렀습니다.
卨이나 允이 모양새로 전달하는 경우였다면, 한자를 파자(破字)해서 전달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喆(철)이 그런 경우였습니다.
喆의 훈은 ‘밝을’인데, 철학 할 때 쓰는 哲(철) 역시 훈은 ‘밝을’입니다. 그래서 喆은 ‘쌍길 철’이라고 불렀지요. 길할 吉(길) 자가 두 개 겹쳤으니까. 哲은 ‘철학할 때 철’이라고 불렀고요. 역시 철로 읽는 ‘물맑을 철(澈)’은 ‘물맑을 철’이라고 하는 대신 ‘물 수(氵) 변에 기를 육(育)에 칠 복(攵) 쓰는 철’ 혹은 ‘철수하다 할 때의 철(撤) 자에서 손 수(扌) 변 대신 물 수(氵) 변 쓰는 철’이라고 했고요.
이제 신문기사에서도 한자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기사를 전화로 부르는 경우도 거의 없고요. 允을 오징어로, 卨을 탱크로 부를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그런 과정에서, 한 시대는 다음 시대에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겠지요. 한데, 때로는 그때가 그립습니다. 역시 저는 꼰대인가 봅니다.
#탱크설 #오징어윤 #쌍길철 #기자들의한자표현방식 #19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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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대따
언제나 재밌는 글 감사합니다
재밌었다니 감사합니다. 그저, 옛 생각이 나서요. 지금도 젊지만, 지금보다 더 젊었던 시절... 나의 화양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