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공내전 관련 과제물?써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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쵸큼 김. hoxy 중국근현대사 관심있으신분들 읽어보시고 이상한건 없나 봐주심 넘나감사한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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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벌의 발호와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이라는 고통으로 얼룩진 20세기의 중국, 국민들에게 있어 이 당시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고 중국을 재통일 하는데 성공한 국민당의 등장은 중국이라는 거인의 부활을 꿈꾸는 하나의 이정표와 같았다. 하지만 이런 낙관적인 전망과는 달리 그 이면에는 여전히 부실한 기반과 부패, 정치제도의 미성숙 등 국민당은 여전히 불안정하고 약한 기반을 두고 있었다.
국민정권 몰락의 개요를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민당의 몰락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바로 국민정부와 지방정권과의 관계라는 점이다. 당시 중앙과 지방의 관계는 정치구조의 결함으로 상호간의 협력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지방에는 군벌들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고 촌락에서는 지방 유력자들이 저항함으로써 국민정부의 권위는 제한되어 있었다. 그리고 장개석은 우세집단 이외의 지지를 얻어내지 못함으로써, 그의 정권에 확고한 사회적 기반을 제공할 수도 있었을 정치적 참여와 경제방안도 개발하지 못하였다. 물론 겉으로는 당시 국민당 정부는 광범위한 지역 내의 도시와 인구 등을 전부 통괄하는 듯 했으나, 이러한 역학관계로 인해 지방에 관해서는 결코 확고한 통제를 할 수 없었다. 심지어 국민당의 지지 파벌이 비교적 우세를 차지하고 있는 지역에서조차 국민당의 힘이 우세하다고는 볼 수 없었다. 행정의 하층단위에 있어 지방의 유력자들이 이러한 실제 권력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민들의 상당수가 국민당의 통치 자체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인 상황이었다. 대표적인 예시로 운남성을 들 수 있는데, 이곳은 중앙으로부터의 간섭이 거의 배제된 지방토착권력이 우세를 차지하고 있었고, 이러한 지방에 대한 통제불능의 상황은 중앙정부의 존립 그 자체를 위협하는 신호이기도 했다.
둘째, 무리한 징세와 민심의 동요도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원래부터 국민정부 아래의 농민들은 막대한 지세는 물론이고 세금이나 동원 등에 응해야 했다. 그런데 항일전이 터지고 난 이후부터는 이 같은 세금 부담의 종류와 액수가 더욱 증가하게 되었으며, 이는 민심을 잃게 하는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괄목할 만한 사실은, 이와 같은 부담들의 대부분이 지방정권의 행정 당국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란 점이다. 각 지방별로 부담을 지우는 기준이 달랐기에, 자연스레 화폐와 환욜, 곡물의 환산단위 또한 천차만별이었고 이는 필연적으로 징세체계의 파괴와 혼란을 초래하는 것이었으며, 농촌 생활은 점차 피폐해졌다. 이러한 상황은 일본의 패망 이후에도 여전하였다. 일본군이 물러난 지역에 되돌아온 국민당 관리들은 마치 점령자처럼 행세했고, 약탈과 부정을 자행해 해방을 기다리던 주민들을 실망시키고 분노케 했다. 거기에 국민당과 유착했던 4대 가문의 특혜와 폭리, 축재는 국민들을 절망케 했고, 48년 이루어진 화폐개혁으로 인해 가난한 서민들은 물론이고 중산층까지도 국민정부를 외면케 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심지어 국민당 정부는 지식인들로부터도 지지를 잃었는데, 일본의 지배 아래 살아남은 지식인들을 친일 매국노로 몰아세워 무조건 일본에 협조한 것으로 간주하였고 이는 고급 기술의 원천을 국민당 스스로가 없애버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여기에 일본과의 전쟁으로 인한 국민당의 몰락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요인으로 볼 수 있다. 항일전쟁 시기 국민당정권은 서부중국으로 후퇴하면서 그들의 지배방식과 전투방식을 서부중국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또한 농촌이 전시 경제에 있어 필요한 양곡, 돈, 인력의 주된 공급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패하고 비능률적인 유력자와의 연결을 갖고 지배를 하는 불안전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관료체제를 여전히 운용하였다. 일본과의 장기간에 걸친 전쟁은 국민당의 인적 자원의 부족의 결과도 야기시켰다. 혁명 초기에 양성했던 유능한 엘리트 자원들이 항일전쟁 초기에 소모되며, 이 과정에서 인적자원을 보충하기 위해 급조된 교육을 통해 ‘가짜 엘리트’를 대량으로 양산했지만 그 질적인 저하는 분명하게 드러났던 것이었다. 따라서 이후 공산당과의 전투에는 이러한 ‘가짜 엘리트’들이 무력함을 드러낼 수 밖에 없었고 이미 공산당과의 싸움을 개시할 당시 국민군은 군대를 일선에서 이끌 지휘관이라는 하나의 핵심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시작해 결국 전쟁수행 자체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회복불능 상태에 빠져 버렸다는 점을 들고 있다. 실제로 현대전의 전개 방식과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가짜 엘리트’ 출신 간부들의 작전은 결국 교활한 공산군의 먹잇감에 불과한 셈이었다.
넷째, 공산군의 급성장이다. 초공,연초 등 국민당의 토벌이 이루어진 ‘시련기’와 10여년에 걸친 항일전은 공산군을 성장하게 하고 강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일본군 점령지역에서 유격전을 통한 기습,게릴라 중심의 비정규전 방식의 전략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대일전의 전술적 경험이 국공내전에서 여과 없이 발휘되어 공산군의 전술적 우위를 보태주었다. 또 항일전 직후 소련이 만주지역을 재빨리 장악하고 중국 내 공산당을 종용했던 것도 국민정부 붕괴에 공산군의 성장에 기여하게 되었다. 또한 공산 정부는 일본에 대한 항일,해방 전쟁을 더욱 격렬하게 전개한 데 비해 장개석은 정반대로 항일보다는 정적 제거, 독재 권력 확립에 전력을 투입했다. 이런 전략으로 국민당이 일본군과의 전투는 회피하면서 수시로 공산군을 공격하였고 급기야는 이들을 몰아세워 완난 등에서 상당한 손실을 가했다. 하지만 항일전이 끝난 이후 공산군은 자신들만의 대민 제휴 전략을 통하여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우선 일본군이 점령했던 지역에 들어와 새로운 해방구를 선언하고 청산 투쟁을 벌여 일제에 협력한 반민족 매국노에 대한 처벌을 시작했다. 일본군의 앞잡이와 인민을 착취한 악질 지주 등 인민들이 들고 일어나 그들을 고발하고 재판한 뒤 재산 몰수를 집행, 이후 몰수한 토지와 토지를 소작만 하던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니 공산당은 농민, 인민에게 열광적인 환영과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이러한 지지는 국민당에 대항해 싸울 공산혁명의 의지로 불타올라 공산당은 국민당과의 전쟁에서 이미 인민 지지라는 결정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셈이었다. 또한 공산당은 국민당과의 전쟁에서 비정규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그들의 전략적 우위를 활용하였다. 430만 대군과 미국의 지원을 업고도 열악한 무기로 무장한 120만의 공산군에 진 국민당의 최대 실패 요인은 전략의 오류에 있었다. 오랫동안 유격 전술에 익숙해진 공산군은 아무리 전략에 중요한 곳이라도 필요하면 쉽게 포기하고 유리한 때를 기다려 공격하면서 농촌과 농민을 확실하게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안은 반면, 상징성을 띤 성도와 그 주요 도시 장악에 집착한 국민당군은 결국 점과 선으로 연결된 거대한 전선으로 병력이 분산되어 쉽게 포위당해 보급망이 끊어지고 결국은 함락되었던 일본군의 실패를 그대로 반복하였다. 만약 국민당이 공산군의 본거지인 동북 지방으로 진격해 재앙을 자초한 대신, 공산군 주력을 양자강 이남으로 끌어들여 전면전을 벌였더라면 압도적인 병력과 최신식 무기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을지 모른다.
다섯째, 소련의 정세 개입 문제가 있다. 얄타협정을 근거로 소련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였고 만주지역을 장악했는데, 이곳에서 소련은 공산군이 만주의 각 성에 세력을 확장시켜가는 것을 도와주었다. 자연스레 이는 국민당에게 위협적인 요인으로 다가왔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소련을 방관하는 것 이외에는 별 다른 대책을 세울 수 없었기에 공산군의 각 성에 대한 침투를 원천적으로 봉쇄시킬 수는 없었다. 또한 공산군은 만주에서 노획한 일본군의 장비로 강화되었고 근대 공업화로 발전 할 수 있었으나 국민당은 서부중국으로 후퇴하여 별 다른 수입원이 없는 상태에서 공산군과의 전투로 군비지출을 감행하였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공산당과의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국민당은 화폐를 무한정으로 찍어냈고 이는 극도의 인플레이션을 가져왔다. 그렇지만 소련의 만주점령은 국민정부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의 하나일 뿐이었고, 보다 세부적인 원인을 찾자면 그것은 국민당 내부의 구조적 취약성과 행정의 부패와 무능, 파벌간의 다툼으로 보았으며 결국 이 모든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국민당은 무너진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이토록 국민당의 몰락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일본 제국의 침략과 이로 인한 소모전, 그리고 국민당 내부의 정치와 재정 건실도의 부진, 그리고 민심을 잃은 것 등 그 원인은 다양하다. 분명한 것은 이들의 몰락은 필연적이었으며 이러한 요인은 상당히 복합적인 요소로 야기된 것이란 점이다. 저자가 말했듯이, 국민당의 몰락은 단순히 공산당에 의한 것이 아닌, 국민당 스스로의 모순으로 말미암아 무너진 것이다. 국민당의 패배는 내부적인 구조 결함이 가장 큰 원인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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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었습니다
국민당이 정적제거에 더 열올렸나요
첨알았넴
국민당이나 공산당이나 정적제거에 열올린건 똑같던것 같구요, 그냥 대학교에서 많이 보는 책에선 남의사 같은것만 부각되서 묻히는게 없잖아 있는건 같음. 그리고 장개석 장학량이 봉천에서 신나게 일본군과 싸울때 중국 공산당은 루이진에 앉아 아편팔고 있었던거 생각하면요. 뭐 딱히 누가 더 항일투사네 이런거 따지는게 의미없다고는 생각합니다.
저기서 국민당이 이겼으면 지금 개빨갱이 나라 두개랑 정부하나 안봐도 될텐데

역시 전공자.... 글 퀄리티에 감탄합니다.
ㅋㅋㅋ ㅋㅋ전공자아니에요아, 그렇군요.. 오해했네요.
국민당의 몰락의 원인은 결국 사실 따지고 보면 장제스의 무리한 집착이 컸는데
전쟁끝나지도 않았는데 무리하게 전쟁을 시도하였죠
사실 국민당이 모든 부분에서 한꺼번에 붕괴해서 그래요..
경제 체제를 자유무역으로 바꿔버렸으니 경제가 폭망했는데
국방비는 많이들고... 국방부 작전처장이 스파이였어요 그러니 안망하고 배기나..
국민당군의 움직임이 죄다 공비들이 보고있으니 정예부대는 각개격파 당하고
1949년 이후로 추가 급속도로 몰락해버린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