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적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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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속해있는 집단은 없다.
나는 그저, 이 세상 사람들의 움직임과는 다른 움직임으로
방랑하고 있는 한 사람일 뿐인 것.
나는 나의 친형이 두 번째 수능을 친 날 밤을 기억한다.
98 100 100 45 50을 맞혔고, 서울대에 안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점수가 나왔지만, 한국사 응시를 안했으므로
(이 때 당시의 한국사는 지금과 같은 필수영역이 아니라, 사회 탐구 영역에 속해있던 과목이었다.)
지원 자격 자체가 없어서 연세대를 갈 지, 고려대를 갈 지
고민하던 그 행복해 보이던 밤을.
부모님은 온 집안이 떠나가라 환호를 하셨고, 친형도 새 학기를 맞이해서 노트북을 사야겠다고, 콧 노래를 부르면서 노트북 쇼핑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내 인생에서 아직까지
저런 밤을 지낸 적이 없다. 수능을 친 날 밤은 항상,
스스로의 위로와 정적만 있었을 뿐.
한 인간에게 있어서 실패란 무엇일까.
나는 그를 게워내고 이겨내는 힘으로,
대학에 갈 수도 있었을 것이고, 신나는 놀이공원에서 놀 수도 있었을 것이고, 과잠을 입고 캠퍼스 라이프를 즐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혹은, 떳떳하게 맨큐의 경제학을 들고 다니면서 ‘지식인 코스프레’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군대에서 제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허나, 나는 이름모를 도시의 섬에 서 있고,
멸종 위기에 처한 개체와 다를 바 없이 외롭고 고독하며,
플래너에 적힌 몇 가지 계획들과 커리큘럼에 압박을 받는
한 사내로서 존재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도 어느 덧 2년 째,
더 이상 내게 내 스스로 혐오스럽고 더러운 교복을 들이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으로 살아왔다.
그 더러움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아마도 입시제도 였을 것이다.
수학을 가르치는 선생은, 유형을 암기하라고 강요했다.
철이 없던 나는, 머릿 속에서 명령한 태도대로 살아왔던 터라, 내신은 준비하지 않았다. 그것은 수학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수학은, ‘집요함’이 있을 때야 수학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형을 암기하고, 그를 그대로 받아적어 내는 이 체계를, 그 때의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내신을 준비했고, 교사의 입맛에 맞게 내가 나의 태도를 조절했더라면, 나는 대학생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의 나는 그 길을 무참히 저지해버렸다. 그래, 맞다. 관습과 제도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두려움과 항거를 굳이 그 때의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그렇게 나타내지 않았겠는가.
결국, 대학에 가지 못한 채, 공부를 하다 말고
이런 망상이나 하는 상상적 대학생이라서, 내 삶은
가히 천박하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외롭고 고독하며
하루하루의 ‘목적’에 시름시름 앓는 이 청년의 생활을,
나는 더 응원하고 싶다.
3년 전 용감히, 그의 길을 만들어간 소년을,
나는 아직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의 결과가 ‘삼수’였을 지라도,
고등학교 개학식에 떳떳이 탈색을 하고 왔던, 철없는 소년을,
나는 아직까지 버릴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또, 이 삼수생활이라는 무질서 속에서,
나 자신만의 바른 질서와 체계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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