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민트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22272954
아버지는 벌써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고 내게 얘기한 적이 있었다.
올해로 환갑을 맞이한 데다가, 절친한 친구의 부인의 죽음을 목도하며,
그도 언젠가는 장례식장의 사진 액자 속에서 서서히 누군가의 가슴 혹은, 추억 속에서만 살게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것.
벌써 20년이라는 말을 할 수도 있지만, 아직 20년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부모의 죽음을 볼 만큼 나는 아직 성숙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비열하게 부모의 돈을 훔쳐서 '삼수'라는 길을 아주 뻔뻔히 걷고 있지 않은가.
어느새 - 그러니까 20년 만에 - 쌓이고 쌓이던 삶의 무게가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됐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는 하지만, 아플 준비를 할 시간이 내게는 없었다고 해야 마땅할 게다.
그저 이 '지구'라는 행성에 던져지며, 그를 빌미로 부모로 부터 무한한 보호를 받았고, 그렇기에
삶의 '위기'를 지혜로이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기란 내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저, 위기가 오면, 어떻게 해서든 몸으로 부딪쳐야 했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면
적합한 표현이 될 것이다.
자연스레, 시간의 시선을 과거로 돌려, 그 때의 '나'를 추억하게 되는 버릇이 생겼다.
아프지 않았고, 삶의 무게를 몰랐고, 퍽 순수했던 과거의 한 시점의 '나'를.
회상하는 동안, 내가 쓴웃음을 짓고 있다는 것도 모른채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물론, 삼수를 하고 있는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전히, 과거의 한 장면을 그려보며,
R'gorithm 이라고 쓰여진 책이 내 앞에 있는 것을 보면,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상실감이
줄곧 왔었으니 말이다. 내 삶의 알고리즘을 찾고 싶었다.
3600원 짜리 컵밥을 먹고 나서, 소화가 다 되지 않은 채 이러한 망상에 빠진 나머지,
목에 껴 있는 가래를 삼키기 위해서 차를 골랐다. 쓴 맛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저, 이 망상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나를 위로하기에 충분한 향이 필요했던 것.
그렇기에, 평소에 마시던 향을 고를 수는 없었다.
망상을 가라 앉히기 위해 마셨다기 보단, 현재에 그저 적응하기 위해 마셨으니.
하는 수 없이, 평소에 아예 마시지 않던 페퍼민트를 골랐다.
뜨거운 물을 컵에 담고, 그를 타면서 향이 올라오기를 기다리다,
향이 내 콧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향을 맡고, 그 망상으로 부터 가까스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내가 과거에 자주 먹었던 민트 초콜릿의 향과 너무도 흡사했으니까.
과거와 현재는 이어져 있으니, 너는 그 두 개의 시제를 모두 소중히 여기면 된다고,
그 차는 내게 말을 했다.
그 말 덕분에,
삶의 무게에 짓눌리어 과거를 비참히 추억하던 현재가,
과거를 더욱 단단히, 소중히 만들기 위해 살아내는 현재로 바뀌어가고 있다.
오늘, 페퍼민트에 관련한 경험을 꼭 글로 적고 싶었다.
사람에게, 혹은 글에게 위로받은 적은 많았는데,
차의 향으로 위로받기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페퍼민트의 향처럼, 누군가의 아픔과 기쁨을 매개하여
그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표점을 더주는거임? 이거 개사기 아닌가 와 오르비엔 제2외 공부 언급이 없지
-
큐브 0
아니 본인이 모르면 답장을 하면 안되는거 아님?.. 내가 설명을 해줘서 본인이...
-
레츠고
-
뭐가 더 좋을까욤
-
사문 아랍어 조합 어떰?
-
중간고사 후기 0
대학미적분이었음 50분에 10문제 서술형평가였음 내 생각보다 난이도가 있었음(하긴...
-
수학도 병신 탐구도 병신 그렇다면 내 자존감 높여줄 건 뭐냐? 바로 국어다 이...
-
속으론 다 이 개창렬새끼라 생각하겠지 서로?
-
김범준 들으시는 분들 스블 끝나면 기출 뭘로 하실 건가요!
-
김문수 "계몽령은 센스 있는 말, 젊은층이 국회 독재 깨닫게 돼" 8
(서울=뉴스1) 김정률 서상혁 박소은 기자 =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는...
-
분수쇼 이쁘지? 6
ㅈㄴ쩔어
-
더프 성적표 0
3월 더프 시험 친 종이 오른쪽 상단에 있는 개인 성적표 성적조회 인증코드 16자리...
-
귀여워엉어어엉ㅇ
-
작수 42344
-
[이동훈t] 2028 예시문항 수학 해설지 + 감상평 2
2026 이동훈 기출 https://atom.ac/books/12829 안녕하세요....
-
지분형 모기지 투자 이거 되면 ㄹㅇ 어마어마하게 오를듯
-
질문좀 받아주세요
-
영광이구만
-
아니한화왤캐잘함 8
그만잘해봐
-
이원준 브크 1
현재 고3 전형태 독서/문학, 유대종 인셉션 문학, 김동욱 일클, 국정원 시즌1...
-
유튜브 너무 많이 본 것 같아요. 오늘 공부를 너무 안해서 우울함……..
-
카페 어디갈지 골라달라고 하려했는데 뭔가좀 어그로긴해도 기분나쁜 사람이 있을거같은 어그로라 그만둠
-
하 하 하 2
일류니까 크게 웃어
-
지옥이네 증말
-
수업=>남들 듣는 거의 절반만 들음 인간관계=>보면 인사하고 수업 얘기 잠깐하는...
-
오르비에 글 썼던 것 같은데 검색해보니 블라처리됐다네요 유튜브 영상도 올리셨던데
-
중복조합이 0
중복조합이 어떻게보면 같은것을 포함한 순열이라고 볼수?있는데 깊게 들어가면...
-
새벽 4시 쯤에 취침 다음날 정답지 나오는거 확인하고 오전 12시~1시쯤 취침...
-
왜냐면 동시에 양쪽을 볼 순 없으니까
-
카공해야겠다그냥 0
물리좀풀다가들어가야지 죽겠다
-
50분안에 못들어오겠다 다들 40분 컷 낸다는데 나한텐 너무 어렵다..
-
검정 다 쓰면 무슨색 쓸까여 검정 질림 이제
-
이번에 정법사문 하다가 정법이 좀 아닌 것 같아서 생윤으로 틀었습니다 작년에...
-
내가 고1내신만 사람이었어도 의대갔는데 시발
-
좀 더 쉬운거 먼저 풀고싶은데
-
너무떨린다 고1첫시험..........
-
행운보존의법칙 3
"당신 평생 동안 찍맞의 총합은 일정하다. 그러니 남용하지 말자." 선생님들께선 동의하십니까
-
이런면에선 이영수 듣고싶은데 너무안맞음나랑
-
히게단 신곡내줘 0
ㅜㅜ
-
현 고3이고 김동욱 커리를 늦게 타서 지금 일클이랑 연필통 3주차인데 연필통 멈추고...
-
캬~~
-
엑써싸이즈만 벅벅 푼다고 풀 수 있는 난이도가 아니야
-
국어 시간배분 1
문학 독서 선택 시간배분 어떻게 하시나요? 전 28 35 15 고 선택에서 조금 더...
-
생투사랑해 1
널 버리고 내가 감히 사탐을 하려고 했다니 사랑해 다음주 일반생물학 시험이라 더...
-
첨보니까 뭐 어케하는지 모르겟네 수험번호 이런거 모르는디
오 형 오랜만이다
머학 갔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