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수가 두려웠던 이유 - 나의 색은 그러나 죽지 않았다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22224662
11월 15일 저녁에 모든 사실을 마주하면서
이제는 끝났다고 생각했었다. 더 볼 것도 없었고,
더 할 것도 없었다. 그저, 300일 동안 치열히 달려왔던
‘과거’를 인정하고 안아주는 것 밖에는.
하지만, 아직 욕심이 남아서 였을까.
‘실패’라는 단어 앞에서 ‘다시 도전’이라는 그 생각이
전혀 비굴해 보이지 않았다. 정말, 단 한 번 더 도전해보자는
생각이 남들의 눈이 다 닫히고, 하늘의 눈이 열리는 새벽녘에
들곤 했었던 것이었다.
이미 ‘삼수’라는 에베레스트를 등반한 이는 하나 같이,
등반을 하는 것이 매우 고되고 힘들다면서 나를 말렸다.
같이 맥주를 마실 때에도, 홍대에서 1박2일 동안 파티를 했을 때에도, 부산에 놀러간다고 연락을 했을 때에도, 그들은 내게
그리 말했었다.
-쉽지 않을 거다.
-재수보다 몇 천배, 몇 만배는 힘들다.
-내가 여기 왜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너도 분명 할 건데,
그 고민으로 부터 빠져나올 수 없을 거다.
-웬만해서는 반수해라.
등등의 말을.
삼수를 시작하기 전에도, 그들에게 들은 그 말들이
나를 옥죄었다. 그 말들은, 고시원의 평수를 작아 보이게끔 했으며, 대치러셀의 더러움을 상기시켰던 것.
헌데, 삼수를 시작하고 나서, 지금까지,
그 말들은 적어도, 지금의 내게는 해당이 안 됨을 실감한다.
나는 왜 선릉역 고시원에 존재하고 있는가에 대한 답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이 답은, 이미 내려졌던 것. 누가 내렸던가.
재수생의 ‘나’가 내렸지 않았겠는가. 내가 누구냐며, 심찬우를 붙들기 보다, 그를 잠시 제쳐두고 나를 붙들며 나의 동굴에서
‘본연’을 채취한 그가 내렸지 않았겠는가.
‘여행’. 재수 때나 삼수 때나 답은 똑같다.
여전히 나는 나를 찾아감에 행복함을 느끼고, 운 좋은 덕택에
모자람 없는 돈을 부모로 부터 받아 공부함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 감사함을 토대로 나아지기 위한 ‘부끄러움’을 느끼며, 버텨낼만한 ‘모자람’을 만들고는 한다.
수간모옥을 비웃지 말라는 ‘은자’의 자긍심만큼이나,
수능을 또 다시 준비한다고 비웃지 말라는 삼수생의 자부심이
내 안에 자리잡은 것 같다.
남들이 느낄 수 있는 단편적이고 보편적인 경험은 아니다.
그렇기에, 이 ‘독특한’ 생활 속에서 복합적이고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 그를 알기에, 나는 지금 행복하다.
글쎄, 누군가에게는 또 다시 비열한 정신승리를 하겠다는
일종의 억지로 들릴 지도 모르겠다. 허나, 내 색깔은 이 생활 속에서 그렇게 빛을 발하고 있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 삼수 생활이란 ‘특별함’ , ‘고귀함’ 정도의 의미라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박노해 시인의 시를 보고 울었었다.
이것이 맞는 감정일까, 혹여 누군가에게는 비굴한
정신승리자로 보이지는 않을까 고민하는 내게 ‘시’로써
명쾌한 답을 내려주었던 것에 대한 감동 때문이었다.
어두운 길을 걷다가
빛나는 별 하나 없다고
절망하지 말아라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구름 때문이 아니다
불운 때문이 아니다
지금까지 네가 본 별들은
수억 광년 전에 출발한 빛
길없는 어둠을 걷다가
별의 지도마저 없다고
주저앉지 말아라
가장 빛나는 별은 지금
간절하게 길을 찾는 너에게로
빛의 속도로 달려오고 있으니
-박노해, 별은 너에게로.
이 글을 보는 당신에게도 전하고 싶다.
당신의 별은 빛의 속도로, 당신을 향해 다가온다.
그러니, 부디 이 힘듦 속에서 그대의 색을 없애지 말기를.
여기 서 있는 보잘 것 없는 삼수생도,
그를 믿고, 내면의 파수꾼으로서 그를 지키고 있으니.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D-262 기상 0
새로운 하루와 새로운 한주가 시작.
-
얼버기 0
-
사실 난 이런 맘이 처음인데~
-
아침마다속이안좋음
-
ㅇㅈㅎㅈㅅㅇ 1
-
괜찮나봐요?꽤 많이 보이네요.
-
오르비 첫 글부터 바로 자작문제 박기 히히 * 주의1 : 20번 난이도가 아닐 수...
-
아직 19세긴 해요…
-
하..
-
힘내라 샤미코
-
자취방 cctv보니까 침대에서 뭐 전기폭발한것같은데 1
지혼자 번쩍거리는대 뭐임
-
자 사람들 없으니 흐흐흐흐
-
귀여워 0
-
2025학년도 경찰대 영어 1차 시험 기출문제 24번 문장별 분석 0
2025학년도 경찰대 영어 1차 시험 기출문제 24번 해설 ( 선명하게 출력해서...
-
아 진짜 위기다 1
밤 새서 생활패턴 정상화해야겠다
-
시즌2때 시즌1 복영 구매할 수 있나요? 지금은 교재소진으로 전주차것들 구매못한다고 써있어서요
-
공지방에 야짤 올린거야...? 머리는 모자걸이야?생각 안해?
-
끄져 0
끄져
-
트럼프가 "동의한다"며 추켜세운 고든창 연설보니.."중국, 韓선거 조작" 2
[파이낸셜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미국 최대의 보수주의행사인...
-
기차지나간당 2
부지런행
-
배그나 좀 해봐야지 16
크크
-
오르비 디코방 있음? 11
ㅈㄱㄴ
-
표창키우기 제외
-
메가패스 ㅋㅋ 2
정시 모의지원 안해서 환급 안되네 아이고 두야 내 50만원 ㅜㅜ
-
동경소녀 3
-
애들이랑 6
절거운 마크 해야지 >.<
-
현역고3 학교 3
이제 고3입학하는 현역정시생입니다! 몇몇글 찾아보니까 학교 무단조퇴하고 독서실가거나...
-
아으춥노 1
으어어거ㅓ겅
-
산업공학과 0
취업 어떤가요?
-
ㅂㅂ 2
잘자
-
기하만한 G5정도까지
-
베르테르 59번 5
이게 문제중에 두번째로 어렵나 그랫다네
-
3개월 동안 공부를 정말 단 하나도 안해서 개념+감 익히는 용도로 개념인강 하나...
-
레전드기만러들 뭐임? 11
자러가셈 다들
-
괜히신청했음ㅠ
-
친구 수학 화상과외 해주기로 했는데 아마 국어까지한다면 35만원일거같고 주1회 2시간임뇨
-
배고프다 0
30분만 이따
-
그걸 공지방에 올리면 어떡하니
-
얼버잠 1
-
방금옴... 누가 좀 알려줘요 ㅠ
-
코코넨네 하러가겠음 민나 오야스미~~
-
못 일어날까봐 무서운게 어이없네 정오인데
-
슬슬 4시니까 3
자야겠음..
-
오르비정화 9
-
악성한까세력등장 5
-
다 자러갔나 14
내가 일어나면 다 자러 감
-
4시에잔다 1
그러고 10시에 일어난다
-
Official Solution을 발라버리는 풀이라,, 3
멋지군,,
-
대만 재밌당 0
우후후후
-
개소리 맞는득
고생하십니다.
늘 초심 잃지마시길
뭔가 몇개월 사이에 성장해버린 느낌이야
작가하세요
글솜씨가 ㄷㄷ하네요
뭐라누
개멋있다 감동
감덩
님혹시 염색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