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수가 두려웠던 이유 - 나의 색은 그러나 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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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5일 저녁에 모든 사실을 마주하면서
이제는 끝났다고 생각했었다. 더 볼 것도 없었고,
더 할 것도 없었다. 그저, 300일 동안 치열히 달려왔던
‘과거’를 인정하고 안아주는 것 밖에는.
하지만, 아직 욕심이 남아서 였을까.
‘실패’라는 단어 앞에서 ‘다시 도전’이라는 그 생각이
전혀 비굴해 보이지 않았다. 정말, 단 한 번 더 도전해보자는
생각이 남들의 눈이 다 닫히고, 하늘의 눈이 열리는 새벽녘에
들곤 했었던 것이었다.
이미 ‘삼수’라는 에베레스트를 등반한 이는 하나 같이,
등반을 하는 것이 매우 고되고 힘들다면서 나를 말렸다.
같이 맥주를 마실 때에도, 홍대에서 1박2일 동안 파티를 했을 때에도, 부산에 놀러간다고 연락을 했을 때에도, 그들은 내게
그리 말했었다.
-쉽지 않을 거다.
-재수보다 몇 천배, 몇 만배는 힘들다.
-내가 여기 왜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너도 분명 할 건데,
그 고민으로 부터 빠져나올 수 없을 거다.
-웬만해서는 반수해라.
등등의 말을.
삼수를 시작하기 전에도, 그들에게 들은 그 말들이
나를 옥죄었다. 그 말들은, 고시원의 평수를 작아 보이게끔 했으며, 대치러셀의 더러움을 상기시켰던 것.
헌데, 삼수를 시작하고 나서, 지금까지,
그 말들은 적어도, 지금의 내게는 해당이 안 됨을 실감한다.
나는 왜 선릉역 고시원에 존재하고 있는가에 대한 답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이 답은, 이미 내려졌던 것. 누가 내렸던가.
재수생의 ‘나’가 내렸지 않았겠는가. 내가 누구냐며, 심찬우를 붙들기 보다, 그를 잠시 제쳐두고 나를 붙들며 나의 동굴에서
‘본연’을 채취한 그가 내렸지 않았겠는가.
‘여행’. 재수 때나 삼수 때나 답은 똑같다.
여전히 나는 나를 찾아감에 행복함을 느끼고, 운 좋은 덕택에
모자람 없는 돈을 부모로 부터 받아 공부함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 감사함을 토대로 나아지기 위한 ‘부끄러움’을 느끼며, 버텨낼만한 ‘모자람’을 만들고는 한다.
수간모옥을 비웃지 말라는 ‘은자’의 자긍심만큼이나,
수능을 또 다시 준비한다고 비웃지 말라는 삼수생의 자부심이
내 안에 자리잡은 것 같다.
남들이 느낄 수 있는 단편적이고 보편적인 경험은 아니다.
그렇기에, 이 ‘독특한’ 생활 속에서 복합적이고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 그를 알기에, 나는 지금 행복하다.
글쎄, 누군가에게는 또 다시 비열한 정신승리를 하겠다는
일종의 억지로 들릴 지도 모르겠다. 허나, 내 색깔은 이 생활 속에서 그렇게 빛을 발하고 있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 삼수 생활이란 ‘특별함’ , ‘고귀함’ 정도의 의미라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박노해 시인의 시를 보고 울었었다.
이것이 맞는 감정일까, 혹여 누군가에게는 비굴한
정신승리자로 보이지는 않을까 고민하는 내게 ‘시’로써
명쾌한 답을 내려주었던 것에 대한 감동 때문이었다.
어두운 길을 걷다가
빛나는 별 하나 없다고
절망하지 말아라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구름 때문이 아니다
불운 때문이 아니다
지금까지 네가 본 별들은
수억 광년 전에 출발한 빛
길없는 어둠을 걷다가
별의 지도마저 없다고
주저앉지 말아라
가장 빛나는 별은 지금
간절하게 길을 찾는 너에게로
빛의 속도로 달려오고 있으니
-박노해, 별은 너에게로.
이 글을 보는 당신에게도 전하고 싶다.
당신의 별은 빛의 속도로, 당신을 향해 다가온다.
그러니, 부디 이 힘듦 속에서 그대의 색을 없애지 말기를.
여기 서 있는 보잘 것 없는 삼수생도,
그를 믿고, 내면의 파수꾼으로서 그를 지키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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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초심 잃지마시길
뭔가 몇개월 사이에 성장해버린 느낌이야
작가하세요
글솜씨가 ㄷㄷ하네요
뭐라누
개멋있다 감동
감덩
님혹시 염색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