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니메데스 [849753] · MS 2018 · 쪽지

2019-03-10 22: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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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엄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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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 아들이 죽어라 공부해서 중앙대 왔는데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어

고딩 때처럼 책 읽고 공부하고 혼밥하면서 지내


고딩 때는 꿈도 많았잖아

영화감독 인권변호사 역사교수 신부님 학원강사

그렇게 허황된 꿈은 아니었어

근데 세상은 생각보다 참 어렵더라


학교에서 아싸생활도 익숙해져서 남들이랑 다르게 아무렇지도 않아

다른 애들은 엠티 끝나고 외로워서 울고 그러는데

나는 무덤덤해


로스쿨 행시 공시 반수 편입 길은 여러개인데

그렇게 간다고 해서 내 인생이 달라지진 않을 거 같아


난 내 미래가 보여


난 내 미래가 남들처럼 도전의 연속이고 그럴 것 같진 않아

뿌옇게 보이는 미래가 아니야

그냥 나 스스로를 잘 알기에 보이는 인생의 항로일것 같아


엄마 아빠 처럼 성실하게 열심히 살것 같긴 해

잘 하면 지금 엄마아빠처럼 목돈도 재산도 꽤 모을지 몰라


근데 난 인생이 참 외로울 거 같아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들여야 하는 노력 시간의 10배를 들여야 할 것 같아 이 대학도 엄마랑 나랑 열심히 그렇게 해서 왔잖아

그렇게 고생해서도 내가 하고 싶던 일을 못한다는 사실 속에서 응어리를 가지고 살아갈 것 같아

무슨 일을 하게 되든 필사적으로 살아야 겠다는 의지로 지내기야 하겠지

하지만 그게 전부일것 같아


세상은 너무 넓고 험한데 나는 이제 전처럼 외유내강하지도 않을지 몰라

다만 너무 다쳐서 무덤덤할 뿐이야

너무 힘들게 열심히 살아왔는데 세상이 주는 보답은


꿈 없는 현실과, 외로운 하루하루와, 술 한 잔도 어려운 병약한 몸과, 나는 학벌 간판만이 살길이었는데 원하는 걸 못 이뤘다는 자괴감과, 여전히 변하지 않는 부족한 사회성과, 세상 사람들의 간악한 비웃음 등등....


자살 한번 생각한적이 없는데 친구녀석이 나더러 너 임마 죽지 않고 살아서 열심히 사는게 너무 멋있다 그래


학원 선생님이 나는 조교 멘토 안 써주길래 이유를 물으니 스카이 가면 써줄라 그랬다매 근데 막상 거기 멘토 경희대 다니잖아 뭐가 달라


엄마가 그래서 '우리 애가 아는 것도 많고 더 잘 가르칠텐데' 라고 했더니 그 선생이 '그건 그렇죠' 라고 했다매 예의상 하는 얘기여도 그게 말이야 뭐야


나는 왜 스카이 가야 써주는 거야

거기 조교 숭실대 단대도 다니잖아 내가 뭐가 꿀리는데


나는 학벌로 커버 쳐야하는 끔찍한 단점이라도 있는걸까


나는 왜 남들처럼 만족하며 살 수 없게

사람들이 나를 궁지에 몰아넣을까


왜 항상 동정과 이해의 대상이 되야하는거지

그리고 왜 그 이상의 친분과 인맥을 쌓을 수 없게 봉쇄당하는 거지

생긴 것도 멀쩡하게 생겼고 집안도 좋고 이 정도면 공부도 잘하는 편인데...


왜 그래야 하는걸까



세상 사람들은 내가 그냥 싫은건가


이런 생각까지 들어서 스스로가 무서워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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