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만 욕했는데 어떻게 모욕죄인가요?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21810971
Snu Roman.과 함께 하는 시리즈
#4 ID만 욕했는데 어떻게 모욕죄인가요?
형법 제311조(모욕)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 모욕죄 인정경계의 구체화를 위한 노력이 없다면
적어도 이 가상세계 안 만큼은
언제든 형벌권에 장악된 경찰국가와
무정부 그 양극단이 될 수밖에 없다.”
유명사립대에 재학 중이면서 키도 크고 예쁜 김양은 특유의 교양 덕에 교내에서 인기가 많았다. 욕설은커녕 약간의 막말조차 허용 않는 그녀에겐 사실 비밀이 있었다. 키보드로 온갖 상스러운 말을 내뱉는 것에 쾌감을 느낀다 했다.
그녀가 주로 키보드를 휘두르는 곳은 포털사이트 뉴스댓글 창과 인터넷 카페. 자신이 좋아하는 정치인을 욕하는 댓글엔 막말을 뱉어내야 속이 시원했다. 가끔 자신의 글이 추천을 받아 메인에 올라가 있노라면 몇 번이나 새로고침하며 반응을 살폈다.
그러던 김양에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경찰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지방 억양이 섞인 굵직한 목소리로 경찰서에 출석하라 했다. 당황한 김양은 보이스피싱 아니냐며 맞섰는데 그러기엔 너무 발음이 정확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김양은 핸드폰을 붙잡고 침착하게 말했다.
"제가 무엇을 잘못한 거죠?"
"얼마 전에 모 인터넷 카페 게시물에 '진짜 그런 얼굴로 나대고 다녔다니. 별 거지같은 놈이네 말하는 거 하나하나가 무식한 티 나더라니'라고 댓글다신 적이 있죠?"
"네?!"
김양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자신이 작성한 것 같았다. 입술을 지긋이 깨물고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여러감정이 교차했다. 하나는 이제 큰일났구나 하는 불안감, 또 하나는 다행히 수위가 '낮은' 댓글로 걸린 것이구나 하는 안도감.
경찰은 모욕죄로 조사할 것이니 나오라 했다. 왜 그런 댓글을 달았을까. 분명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약 두 달 전이었다. 김양은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는데 속칭 '공시생'들끼리의 커뮤니티를 자주 찾았다. 거기서 정보도 얻고 가끔 속마음도 털어놓았다. 그러다 천하의 ‘몹쓸 놈’을 만났다. 행정법 스터디를 구하는 글에 참여의사를 밝혔는데 정작 스터디를 나갔더니 모집한 그 남자만 있더라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오기로 해놓고 안 나왔다고 난색을 표했지만 의심스러웠다. 처음 만났는데 파스타를 먹자는 것도 이상했다. 어색한 식사자리에서 스터디를 안 하겠다고 하자 깊은 관심이 죄라면 반으로 줄이겠단다. 김양은 남겨진 내 삶을 반으로 줄여도 너는 못 만나겠다고 속으로 생각한 뒤 차단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상습범이었던 것이다. 스터디를 한다는 명목으로 전화번호를 수집한 뒤 예쁜 애들만 골라 연락을 해서 1:1로 '만남'을 가졌던 것. 누군가 의심스러워 스터디 구인 게시판에 해당 계정(ID) 사용자를 조심하라고 글을 올렸는데 십수명이 자신도 당했다며 저마다의 경험담을 댓글로 공유했던 것이다.
키보드가 전장(戰腸)인 김양 역시 괘씸하던 차에 당시 댓글 행렬에 참여했다. 그리고 나름의 자신도 있었다. 판례에 따르면 인터넷 아이디(ID)만 가지고 누구인지 알 수 없다면 모욕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그러나 김양은 기소되었고 재판부는 김양의 심정은 이해하나 죄는 성립된다고 판단했다.
결국 김양은 유죄판결을 받기 직전 마지못해 합의를 해야 했다. 김양은 몰랐던 것이다. 이미 십 수 명이나 그 아이디의 정체를 알고 있는 이상 다수에게 누구인지 특정이 된 것이고 따라서 얼굴을 박하게 평가한 것이 모욕죄가 된다는 사실을.
김양의 행위를 국가형벌권을 발동시켜 형사처벌하는 것이 타당할까?
스터디를 빌미로 수많은 여성들의(그것도 자신이 선택한)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시킨 ‘몹쓸 놈’은 아무 처벌을 안 받는데 말이다.
인터넷의 보편성, 확장성을 생각할 때 주관적 명예 감정 또는 외부적 명예의 훼손을 중시하여 ‘모욕’을 넓게 인정할 필요가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가만있는 사람을 욕하는 것과 아동성폭행범을 욕하는 것이 같이 취급되어야 하는가. 달라야 한다면 그 안의 경계는 어떠한 조화 안에 지어져야 하는가.
이러한 합의는 아직 법원도, 국회도 하지 못했다. 사실 불가능하다. 누구는 ‘미친놈’이란 표현도 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반면, 누군가는 ‘멍청이’이란 표현에도 민감하기 때문이다. 주관적 명예감정이란 그만큼 폭이 넓고 이와 대치되는 각 성원의 표현의 자유 역시 결이 다양하다.
그럼에도 법을 입안하는 기관과 해석하는 기관은 적어도 ‘예측이 가능하도록’ 끊임없이 경계의 구체화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뚱뚱해서 돼지 같은 것, 자기 몸도 이기지 못한 것이 무슨 남을 돌보는가.”라는 말과 “ 지 아비가 양아치니까 아들도 양아치 노릇을 한다. ㅇㅇㅇ 새끼는 내가 경찰서에 처넣을 거야.”라는 말 중 무엇이 명예를 더 침해한다고 생각하는가. 예측가능성이 없다면 누군가는 운에 따라 유무죄가 갈리는 판결을 받게 되는 것이다(참고로 위 두 사례 중 전자는 유죄, 후자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명확한 경계가 없으니 감정선은 머물 곳을 찾지 못한다. 판단의 공백이 생기는 사이 사회는 점점 감정적이 된다. 이런 사회에는 자제력이 없다. 스캔들의 사회다. 반항기, 신중함, 객관화된 커뮤니케이션은 허용되지 않는다. 신중함은 공론장의 본질적인 요소임에도 스캔들은 그 자체로 분노를 몰고 다닌다.
어느 유명가수가 보험설계사를 성폭행을 했다는 뉴스의 댓글 창은 온통 해당 가수를 난자(亂刺)하는 댓글로 가득하다.
“ㅇㅇㅇ에게 보험설계사가 당했대.”
"와~~"
“그 보험설계사가 미대교수라며 돈 요구한 사기꾼이었대.”
"와~~"
사회 전체에 대한 염려와 심도 깊은 고찰은 없이 그저 자신에 대한 염려만 갖고 높은 키보드 위의 자판으로 끊임없이 누군가를 처단한다. 모두가 분노하는 격분사회에 흥미롭게도 밀집된 군중은 없다.
단지 모래알처럼 흩어진 분노만이 있다. 군중심리학자 귀스타브 르봉은 저서 군중심리(1985)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곧 이행과 무정부의 시기"
모욕죄를 통해 보호하고자 하는 외부적 명예의 최전선이 바로 표현의 자유와 대치하는 지점이다. 요즘도 논란이 되는 클럽 폭행, 연예인 스캔들, 가십 등에 달린 수많은 쌍욕 댓글들은 원칙적으로 모두가 처벌대상이다. 심지어 정치인, 고위공직자에게의 욕설 역시 마찬가지다.
인터넷이라는 공론장 인프라를 국가가 구축했다면 그 위험성의 확장으로 인한 국민의 범죄자화를 막을 책임 역시 국가에 있다.
무엇을 모욕죄로 인정할 것인가. 이에 대한 경계탐구 노력이 절실하다. 추상적 규범표지나 가치개념 사용을 피할 수 없다는 말은 제한조건일 뿐, 변명이 될 수 없다. 이대로라면, 적어도 이 가상세계 안 만큼은 언제든 형벌권을 장악한 경찰국가 또는 무정부 어느 양극단이 될 수밖에 없다.
모욕죄 인정 경계의 구체화가 필요한 이유다.
0 XDK (+10)
-
10
-
시간 참 빠르구먼
-
알아서 해석
-
제발
-
오르비 망해따 5
리젠 실화냐
-
진짜 쌩 기초 노베입니다.. 작수6등급(문제푼거 맞음) 지금 무지성 빨더텅...
-
내신이든 수능이든 강사 교재 강의 다 너무 많은데 메가패스 있으면 굳이 걍...
-
과외준비하면서 함 풀어보니까 싹 사라졌네 작수가 내 커리어 하이였다고 생각하고 걍 졸업해야겠다 ㅎ
-
공부 조언도 해주시고 자신감도 싫어주셨던 분들이 이번주에만 해도 2-3명은 가신 것...
-
단순히 도함수의 함숫값이 존재한다면 미분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만약 위...
-
작년에 빡세게해서 베이스 있는편입니다 메가스터디 강사중에서 추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ㅠ
-
.엄
-
인강민철 다 팔렸더라구요.. 중고로 사서 풀려고 하는데 1권부터 쭉 사서 풀어야...
-
돈을 원한다면 상법과 회사법을 전공하라고 헌법교수님이 말씀하셨다. 그럼 돈과 명예도...
-
ㄹㅇ
-
수 약 뱃지 신청했는데 아직 안오네...
-
놀라운 사실 1
곧 5월임 2024년 8개월 남음 ㅋㅋ
-
서울대 질문이요 2
언매 미적 + 사탐2개 수학 98 영어 1 사탐 만점일 때 국어는 백분위 어느정도?...
-
설공 질문받아요 5
공대(윗공) 자연대(수물통) 복전 합니다 암거나 ㄱㄱ 종강 내놔
-
저는 국어랑 영어를 제일 못함..이게 뭐지
-
작년 이때즘엔 0
덥고 지쳐서 하루 공부량 5시간 겨우 넘겼는데 올해는 어라 왜 벌써 4월 말임
-
디올 생명 개념서에 대해 구체적인 장점 말해주실 수 있나요?? 오르비 인강 교재...
-
추가적으로 자연은 수학 모의논술이 있을 예정
-
알아서 해석
-
아 맞다 0
이제 '아 맞는다'로 쓰지 않는다
-
두고 봐. 나린이는 올해 성공할 거니까 @@
-
예아 오르비를벅벅
-
이제 곧 5모인데 국어2, 영어3, 사문 만점 , 생윤 2등급은 뜨는데 수학만...
-
허수 정파인데 내딴에는 공통 급하고 중요해보여서 미적을 너무 안하고 공통만 한두달을...
-
앱스키마 질문 1
방금 대성에서 10만원 결제를 했는데 이게 인강 가격만 인가요?? 아님 교재 다...
-
종강 안 오냐? 6
하 ㅋㅋ
-
인스타,유튭,웹운,게임 이런거 다 지우는게 맞겠죠?
-
국수탐 백분위 합 260이면 대학 어디가나요?? 전과목 2컷 정도에요 인문계고...
-
며칠전에 아침먹었다고 쓴 글을 1500명이 봤다... 4
알고리즘 이해실패..
-
약속을 어렵게 잡지마
-
계약학과제외
-
3학년이고 중간고사 과목이 심화수학 심화영어 기하 화작인데요 화작빼고 다...
-
아니 지금 체감상 25도는 되는거 같은데 사장님이 에어컨을 안트세요ㅜㅜ....
-
으으
-
어제 한국 최초로 원피스 사운드트랙 공연이 있어서 갔다왔는데 오케스트라로 들으니까...
-
경희대 분들 0
경희대 반도체 학교에서 밀어주고 있나요? 장학금 같은 거... ? 예비 1번으로...
-
수학의 심각성을 느끼고 6모 전까지 수학 실전개념 강의 들으려고 하는데 이미지쌤...
-
수특 수학 4
내신대비로 수특 풀어보려는데 레벨3만 풀면 되나요?
-
연락없이 밤에 나 있는 곳으로 찾아와서 ㅅㅅ하자를 돌려말하길래 여친있지 않냐고...
-
"아버지께서 좋은 대학 나오셨으니 너도 공부 잘하겠다!" 14
그 말이 옳을까? 스카이 간 아빠와 대박 터져 동대가 최대치인 딸..
-
옯붕이 혼코노 2
옯붕이 혼코노
-
답이 5번인데, 2번이 왜 틀린지 모르겠어요 ㅜㅜ
-
무협지 개꿈을 꿈 10
꿈에서 내가 어느 왕의 후손인데 대신 궁궐밖으로 나갈수는 없다는 제약이 있었음....
-
라떼는 걍 기갈상 파트 불평등 파트 이런 식이었는데
-
2,3은 세부적인 디테일이 변경될 수도 있음 (작년에 그랬음)
-
사문 오늘 시작해서 잘 모름
저도 들은건데 사실 ‘바보’라고만해도 일단 고소당하면 조사는 받아야한다고 하고
심지어 친구는 에타에서 모욕죄 고소하는사건도 있었다 하더라고요. 유죄인정됐고
앙 모욕띠
모욕죄 폐지해야함 ㅋㅋ 전세계에 이런법이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음
댓글달때마다 매번 각도기 챙기는것도 싫고..
와 진짜 스누 로만 님이에요?
예전에 같이 대화 너무 즐겁게 나눴었는데
다른나라는 모욕이나 명예훼손을 민사로만 다루는것 같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