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거리] 의대 더 많이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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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전쯤에 SKY 캐슬 1회를 넷플릭스에서 15분정도 틀어놓았다가 그만보았다. 어차피 나의 바쁜 일상에서 드라마를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런데 SKY캐슬이 서울의대가기 위해 벌어지는 그런 일들을 그린거라고 하고, 사람들이 공부잘하면 다 서울 의대가고 싶어한다고 하는 분이 많길래, 식사자리등에서 토론을 한 적도 있어서 글로 남겨본다.
어이없는게, 정말 똑똑한 친구들은 자신의 미래를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전공을 택한다. 공부잘하면 무조건 의대를 가기 원한다? 웃기는 이야기다. 정말 그렇다면, 그 친구는 똑똑한 것도 아니다. 같이 일하는 갤러리 관장님 아들은 중학교2학년을 마치고 서울과학영재고를 가서 서울대 물리학과로 진학했다. 이친구가 의사를 하고 싶었지만 성적이 안좋아서 물리학과를 갔다고? 그건 아니다. 팩트는 물리학과를 가고 싶어서 물리학과를 간거고, 의대는 원래부터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고교 1, 2학년 시절 전교 1, 2등을 다투던 나는, 어느날 공부 많이하면 전교1등이고 공부좀 덜 하고 농구하고, 음악도 듣고, 책도 읽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면, 전교2등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그냥 전교 2등을 하기로 결정했다.
엉덩이가 의자에 붙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늘 공부만했던 친구 원식이는 고3때부터는 늘 전교1등을 하고, 일주일에 한두번은 술먹고, 점심시간엔 농구하고 했던 나는 전교2등을 했다. 원식이는 서울대 제어계측을 갔다. 가서 이찬진씨를 만나서 아래한글을 개발했고, 나모로 갔고, 택진사장님을 만나 엔씨소프트로 갔다. 지금도 엔씨의 CTO다. 훌륭하고 자랑스런 친구다. 원식이는 고 1, 2때 서울농대를 가겠다고 해서, 고교 선생님들의 애를 태웠던 것 같다. 그때도 약간 농대는 성적이 안되서 간다는 분위기가 있었나보다. 그래도, 나는 원식이가 농대를 간다고 할때, 충분히 그럴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서울 농대에는 서울 의대 갈 수 있었어도 간 사람들이 많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 의대를 가고 싶어한다고? 그건 아마도 의대 사람들이 만들어내고 싶은 이야기가 아닐까?
나는 학력고사를 치루기 전에 먼저 KAIST에 지원했고, 붙었다. 고2때 KAIST를 가라고 아버지가 그러셨지만, 당시는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 2학년이 대학을 입학하는 제도가 없었다. 과학고 애들은 가능했는데, 당시 서울엔 과학고가 없었다. 경기과학고만 있었다. 그래서, 나같은 서울내기는 과고를 갈수 없었다. 억지로 주소를 경기도로 옮기면 가능은 했었나보다. 그렇게 주소를 옮겨서라도(위장 전입), 경기과고를 간애들은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고2때 KAIST를 갈까 했었기때문에, 고3때 KAIST를 지원했고 붙었다. 학력고사 한달반전쯤 붙었기 때문에, 나머지 한달 반정도는 그냥 슬슬 공부했다.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오는 것처럼, 당시 고등학교는 빽있는 집이거나 부잣집 아들에게는 선생님들이 설설 기었는데, 선생님들은 나를 그런 3공자, 7공자하는 친구들 옆에 앉혀서 걔네들 학력고사 공부를 도와주라고 했다. 그런 친구중의 한놈이 국어 문제를 풀어달라하는데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 교과서에 실렸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 친구는 나중에 돈으로(버스를 사줬대나) 모대 의대를 갔다고 들었다. 믿거나 말거나. 그래서 내가 그 대학 대학병원은 절대 안간다. ㅎㅎ
학력고사 전날 예비소집을 하러 경문고에 갔었는데, 친구들이 나보고 학력고사 대리시험을 봐달라고 했다. 나랑 비슷하게 머리 아주 크고 더벅머리한 친구가 자기자리에서 학력고사를 봐달라고 했다. 수학이라도 바꿔서 치르자고. 넌 이미 KAIST 붙었는데, 학력고사는 왜보냐고 하면서 ㅎㅎ 하긴 그랬지. 대리시험을 봐줄까 하다가 안했다. 어느 한놈에게만 그런 행운을 줄순 없었다. 그놈은 모대 건축과에 가서 대학때 자기 스튜디오에 나를 초대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뭐하고 지내려나.
그날 예비소집을 마치고 저녁에 우리는 친구 생일 파티를 위해 호프집에서 술을 마셨다. 11.19일이 마침 친한 친구놈의 생일이었다. 지금은 이 세상엔 없는 놈이다. 학력고사 전날 생맥주를 먹는 생활이었다. 내가 고교 시절에 마신 술의 양은 대학시절에 마신 술의 양보다 많았다. 고등학생이 훨씬 건강하니까.
학력고사 성적이 나왔다. 고3 담임 선생님도 서울대 출신이라, 나보고 서울대가라고 했었는데, 나는 왜 서울대를 가야하는지 이해가 안되었다. 아버지도 서울대 나왔고, 고3담임도 서울대 나왔지만 둘다 똑똑해보이지 않았다. 서울대 나왔다는 것을 내세우는 거보니 뭔가 지금 자신이 없나보다 싶었다. 나는 신생학교인 KAIST를 선택했다. 약간의 모험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충분히 성공한 모험이었다.
담임은 그래도 서울대 원서는 써야 한다면서 교무실로 불렀다. 가보니 서울대 1, 2, 3 지망에 의대, 약대, 수의대를 써놓았다. 어머니가 약사라고 약대를 써놓고, 아버지가 수의사라고 수의대를 써놓은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나랑 상의도 안하고, 그냥 1, 2, 3지망을 담임이 써놓은 것이다. 이거 서울대가서 내고 오라는 것이다.
나는 고교때 술을 많이 마셔서 이미 수전증이 있었기때문에 의대는 갈 생각이 없었다. 어머니는 약대간거를 평생 후회했고, 아버지도 수의사를 하는 것이 행복해보이지 않았기때문에, 나는 의대 약대 수의대는 아예 생각이 없었다.
하여튼 원서를 받아들고 나오는 길에, 원식이와 나에 이어 늘 전교3등을 독차지 하던 친구를 교무실 복도에서 만났다.
어디 쓰려고 하냐고 물어더니 서울의대를 쓴다고 한다. 그 친구가 아마 학력고사 310점 정도 받았지 않나 싶다. 원식이가 317점인가 그렇고. 당시 만점이 340점. 당시 학력고사 수석이 단대부고에서 나왔는데, 하필이면 우리 간호선생님 아들이었다. 그 친구가 아마 332점쯤 될 것이다. 그친구도 서울대 물리학과를 갔다. 당시는 물리학과와 전자공학과가 수석을 하는 낭만의 시대였다. 의대? 수석 안나왔다. ㅎㅎ
어쨌든 서울 의대를 간다는 그 친구에게, "의사를 하려고?"라는 취지로 물었던 기억이다. 난 학문을 숭상하는 사람이었기에 그 친구에게 의사하지 말고, 의학을 하라고 했다. 나중에 보니 그는 정신과 의사를 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그녀석 얼굴을 직접 볼 기회는 없었다. 참 겸손하고 신중하고 말없는 친구였다. 외과 의사할만한 친구는 아니다. 어쩔수없이 정신과를 택하지 않았나 예상해본다.
난 원서를 들고 서울대에 갔는데, 원서를 접수했는지 안했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당시, 대학입학에 처음으로 논술고사가 도입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논술고사를 보는 날이 KAIST 합격생 오리엔테이션날로 일부러 중복을 시켜놓았다. 나는 논술고사를 보러가지 않았고, KAIST 오리엔테이션에 왔다.
그로부터 몇일 후, 동네에서 술에 취한 고교 선생님들을 만났는데, 나를 길에서 붙잡고는, 너 왜 서울대 원서 안넣었냐고 혼내셨다. 나는 어떻게 알았지? 했다. 어쨌든 나때문에 서울대 합격생 하나 줄었다는 것이겠지. 그렇다고, 불쌍한 친구 한명을 떨어뜨릴순없잖아. 내가 중복합격하면 누군가는 떨어진다. 그때도 추가합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없었던 것으로 안다.
나중에 대학 교수가 된 이후에 대학의 역사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의학이 중세 초기 대학들의 중심 학문중의 하나(당시 3대 학문: 수사학(법학), 신학, 의학)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중고등학교때 대학의 역사를 잘 알았더라면 어쩌면 의학이나 법학에 관심을 가졌을지도 몰랐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때는 법학과 의학을 무시했다. 학문이 아닌줄 알았다. 지금은 아니다.
그래서 자기 자식이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자기 자식을 의대에 보내고 싶으면, 의학에 관한 책을 보여주라. 닥터스 같은 책. 정말 똑똑하다면 그런 책을 읽고 꿈을 키우고 동기부여를 받을 것이다. 스카이캐슬같은거 보여주지 말고 ㅎㅎ
KAIST에 가서 나보다 똑똑하다고 생각되는 친구들을 많이 만나 행복했다.
왜 여인들이 똑똑한 남자 좋아하는지 이해가 간다. 나도 똑똑한 사람이랑 있으면 행복하다 ㅎㅎ
그런데, 똑똑도 잠깐이다. 열심히 갈고 닦지 않으면 무뎌진다.
KAIST들어왔다고 안심하고 노는 친구들 많이 봤다. 지금보면 힘들게 산다. 고등학교때 조금만 더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갔으면 훨씬 편하고 멋지게 살수 있었는데, 그렇게 되지 못한 친구들이 많듯이, 대학들어와도 마찬가지다. 그 좋은 KAIST 환경에서 그걸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국민 세금을 낭비하는 친구들을 많이 봤다.
나는 국민세금이 아까워서라도 빨리 졸업하기로 맘을 먹었다. 그래서 대학을 3년만에 졸업했고, 석박사를 5년반만에 마쳤다. 나를 위해서도 빨리 졸업하면 좋았지만, 나라 세금을 아끼기 위해서라도 빨리 졸업하는 것이 좋다. KAIST 학부를 6년씩 다니는 친구들도 있었고, 박사과정을 6-7년, 10년씩하는 선후배도 있었다. 그들 개인 인생의 낭비이기도 하지만, 국민 세금의 낭비이기도 하다.
나중에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가보니, 거기도 서울대 나온것만으로 안심하는 여러 군상들이 있었다. 평생 힘들게 산다. 가끔 전화와서 돈 빌려달라고 하는 분들도 있고.
자기 인생을 갈고 닦아야 하는데 어느 순간 멈추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어디 나왔다는 것만으로 알아주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군림한다. 그 이상의 실력을 가진 사람들앞에서는 역할이나 행세를 하지 못한다.
KAIST에도 서울대에도 그런 사람이 많았다.
KAIST라고 서울대라고 그 출신들이 다 훌륭한가? 절대 그렇지 않다. 천차만별이다. 앞서 소개한 원식이는 갈고 닦고 또 닦는 친구다. 그런 모교를 빛내는 졸업생이 있는가 하면 모교를 팔아먹는 비루한 졸업생도 많다. 정말 많다. 문제는 그 개인들의 내면을 보면 행복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갈고닦은 동기들은 여전히 역할을 하는 반면, 갈고닦지 않은 자신은 그냥 수십년전에 공부조금 한거 가지고 팔아먹고 살려니 고되다.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교수되었다고 안주한 교수는, 말년이 고달프다. 정년퇴임까지 고통스러운 삶을 계속한다. 연구에 정진을 하지 못했으니 엉뚱한데에 관심을 갖는다. 악기를 연주한다던가, 골프에 심취한다던가.. 옆에서 보기에 안되었다. 교수는 정년이 될때까지, 정년 그이후에도 연구를 하는게 교수다. 연구를 멈추는 순간 교수는 끝이다.
정말 요즘은 다 의대를 가는가? 그래 그렇다고 해보자. 그것은 문제인가?
나는 전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시절에 공대를 많이가서 우리나라가 삼성전자, LG전자 등 수많은 전자 기계 화학 기업과 네이버, 넥슨, 엔씨소프트 등 수많은 디지털 기업을 만들어내었듯이,
똑똑한 친구들이 어느 순간부터 의대를 많이 간 바람에 남녀노소 건강하게 좋은 의료서비스 받는 거 아닌가 싶다.
의사와 의료서비스도 철저히 경쟁 시스템이다. 성형 잘 못하는 병원이 잘 될리 없다. 잘 될려면 잘해야 한다. 똑똑한 친구들이 죽기 살기로 경쟁하니 서비스는 좋아진다.
의대 더 많이 가라. 건강하고 예쁘게 사는게 최고지 뭐.
- 경희대학교 경영학과 이경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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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자기 인생을 갈고 닦아야 하는데 어느 순간 멈추는 것이다.' 이부분 와닿는 말이네요. 앞으로 인생 지침으로 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