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이 스펙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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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연구소와 개발실에는 석박사 인력이 정말 많다. 재직 시절 우리 부서만 보았을 때도 석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의 비율이 70퍼센트를 넘었다. 삼성디스플레이 개발실 같은 경우는 관료제 피라미드 정점에 있는 임원들은 거의 90퍼센트 이상이 박사 학위 소지자였다. 당장 우리 부서장이었던 C수석(현재는 상무)만 보더라도 과학고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학석사를 마치고 아이비리그인 콜롬비아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소위 말하는 ‘스펙왕’이었다.
비단 삼성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세계적인 회사의 어느 연구실이나 개발실에도 공부를 오래 한 고학력자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근무했던 개발실에서 이런 기존의 통념과 편견을 통째로 뒤엎는 최고의 엔지니어를 만났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거의 모든 수석, 책임이 참여하는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참석하는 회의에서는 자연스럽게 차기 그룹장 후보가 누군지 드러난다. 확실한 실력을 바탕으로 주도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그 부서의 에이스들이었고 차기 그룹의 리더가 될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 회의에서 Y수석을 처음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그룹장인 상무에게도 거침없이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또 본인 부서의 프로젝트가 아닌 다른 부서 프로젝트에도 조언을 주고 또 궁금한 점을 질문하는 모습은 여러 수석 중에서도 확실한 두각을 나타냈다. 회의가 끝나고 자연스럽게 선배 책임에게 Y수석은 어디서 박사 학위를 받았는지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정말로 충격적이었다.
“Y수석 고졸이야.”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Y수석은 정말로 대졸도 아니고 고졸이었다. 제조센터에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1급 사원으로 입사하는 분들이 많지만, 개발실은 사실 거의 없었다(참고로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하면 3급 사원이고 박사 학위를 받으면 5급 책임으로 입사한다). 개발실에 1급 사원이 잘 없는 이유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서는 업무를 따라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석박사를 받은 다른 수석들보다 훨씬 더 전문가다운 Y수석은 나에게 충격이었고 동시에 호기심 대상이었다.
Y수석 부서와 관련된 업무가 조금씩 늘면서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아졌다. 그렇게 Y수석과 대화를 나누고 또 그 부서원들과도 업무를 같이 진행하면서 Y수석이 어떻게 최고의 전문가가 될 수 있었는지 그 배경을 알게 되었다.
우선 Y수석은 오랫동안 제조 현장에서 일했다. 나는 그가 공부를 오래 못한 것을 약점으로 생각했지만, 그는 생산라인의 직접적인 현장 경험이라는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입사했기 때문에 개발실에 다른 보통 수석들보다 10년 이상의 현장 경험이 더 있었다. 또 그가 제조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얻은 인간관계들은 교과서나 논문에서는 절대 못 배우는 기술적 노하우를 얻을 수 있는 Y수석만의 강력한 장점이었다.
하지만 현장 경험이 많은 것만으로는 개발실에서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 그렇게 따지면 모든 제조 현장에 있는 사람이 개발실에 오면 다 최고의 에이스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Y수석은 그런 자신만의 독특한 강점위에 꾸준한 학습을 통해 전문가가 되기 위한 능력을 꾸준히 향상해 왔다.
하루는 부서원들이 다 퇴근했는데 Y수석이 남아 있어서 무엇을 하나 보았더니, 특허 관련 자료를 공부하고 있었다.또 한 번은 우리가 개발하던 제품의 근본적인 구동방식이 바뀐 적이 있었는데, 이때에도 Y수석은 부서원들과 모여서 새로운 구동방식을 가장 먼저 공부했다.
솔직히 삼성에서 공부를 많이 하는 직원은 생각보다 많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단순히 공부를 많이 한다는 것이 Y수석의 탁월함을 설명할 수는 없다. 시간이 좀 더 지나니깐 그가 어떻게 그렇게 슈퍼에이스가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질문하는 것을 절대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무리 Y수석이 업무를 잘한다고 해도 확실히 이론적으로 깊게 들어가면 그도 이해를 잘하지 못했다. 그럴 때면 그 분야를 잘 아는 박사 학위를 받은 책임이나 수석들에게 찾아가서 정말로 열심히 질문했다. 보통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수석이 이것도 몰라?” 하는 질문도 종종 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자신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때까지는 열심히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정말 탁월하다고 느낀 것은 한 번 이해한 것은 정말로 확실히 이해했었다. 그리고 마치 전문가처럼 느껴질 정도로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다.
Y수석의 능력의 백미는 기술논문 작성이었다. 논문을 잘 쓰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석사를 받고 우리 개발실에 입사한 친구 중에도 논문을 제대로 쓰는 친구는 찾기 어려웠다. Y수석은 논문을 정말 잘 썼고, 또 부서원들이 기술논문을 쓰면 지도도 상당히 잘해 주었다. 내가 말한 그 부서원에는 박사 학위 소지자도 있다. 내가 근무할 때 Y수석이랑 근무한 C책임은 Y수석과 함께 논문을 써서 삼성디스플레이 전사 논문 대회에서 동상을 받기도 했었다.
그래서 하루는 Y수석에게 어떻게 그렇게 논문을 잘 쓰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의의로 간단했다. 많이 읽고 많이 써 봤다는 것이었다. 또 주변에 논문을 많이 쓴 박사가 많아서 조언을 구하면서 연습하다 보니 잘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박사 학위가 있는 부서원의 논문을 지도해 줄 정도이니 정말 그의 발전이 놀랍지 않은가! Y수석은 제대로 꾸준히만 한다면 누구나 정말 ‘ 척척박사 ’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내가 아는 최고의 본보기였다.
이번 장에서 공부한 것처럼 전문가가 되려면 우리의 노력은 두 개의 부사를 반드시 동시에 필요로 한다. 바로 ‘제대로’ 와 ‘꾸준히’ 이다. 다르게 말하면 그냥 무작정 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면서 열심히 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전문가가 되고 싶어 하지만 둘 중에 하나가 충족이 안 되기 때문에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지 못한다.
특히 우리나라 문화 구조상 대부분 질문 자체에 익숙하지 않아서 피드백을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올바른 피드백을 받고 싶다면 그 시작은 자신의 부족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질문하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꾸준히 하는 것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막연하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확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대부분 직장인이나 학생들은 시간이 없다고 한다. 공부하고 일하다 보면 시간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주말 활용만 잘해도 이야기는 달라진다. 주말에 10시간씩 10년 공부하면 만 시간을 채운다는 산술적인 이야기는 잠시 접어 두자(사실 강력하게 추천하는 시간 활용법이기는 하지만 절대 쉽지는 않다).
시간의 관점이 아닌 독서의 관점으로 주말 활용을 이야기해 보자. 개인차는 있겠지만 조금 노력하면 주말에 책 한 권 읽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렇게 일 년을 읽으면 50권 이상을 읽을 수 있다. 2년만 읽으면 100권이다. 일반 서적이 아닌 전공서적도 한 분기에 2권씩 공부한다면 일 년이면 8권이 된다. 2년간 한 분야를 파고들면 그 분야에 상당한 수준의 내공을 쌓을 수 있다. 만약에 토론까지 하면서 5년 동안 꾸준히 공부한다면 어떻게 될까(이제는 충분히 내공이 쌓이면 온라인상에서 많은 전문가와 의견을 나누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엄청나게 성장한 자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제대로 그리고 꾸준히 한다면 누구나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신영준 박사님께서 https://jolggu.tistory.com/63 실수로 지워서 다시... 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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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한우물갑 ㄷㄷ.. 실력으로 인정받는 것만큼 대단한게 없지요
신영준 박사님 뼈아재 채널 그분맞나요?
글 잘 읽었습니다
글을 엄청 잘 쓰셔서 놀랐는데 박사님 글이었네요 삭제말아주세여
간직하며 틈틈히 상기시켜야 할 듯
정말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입시에선 스펙이 실력을 이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