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식

✨왕후✨ [541907] · MS 2014 · 쪽지

2018-12-02 22:21:32
조회수 570

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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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고 싶은 마음 잘 아니까

KX 다이렉트가 안아드릴게요!

희망을 안다, 희망으로 안다 KX 손해보험.


지하철을 타다 나를 두드리는 광고글.


‘그런 말을 듣곤 한다.’


-음.. 야 1년에 4000정도 썼는데

SKY 못가는 건 손해 아니야?


그건 그렇다. 가벼운 돈으로 시작한 재수도 아니었고,

또 그렇다고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한 재수도 아니었다.

18년 즉, 인생의 전부를 충청과 대전에서 보내온 자가

대학 상경계열에서 공부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으니, 기적과도 같은 일이려니와, 숙박비와 대치동 학원비를 감당해야 했으니 심금을 울리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실질적 목표의 

성공이라 하기도 그렇고, 실패라 하기도 그런

점수를 받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소리를 들을 때면

내 마음은 이미 실패를 인정하고 있었던 것.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공부에 대한 태도?

조금 자만했었던가.


-삶에 대한 삶?

조금 거만했었고 부끄러운 줄 알면서도 나태했는가.


-대인관계?

이기적으로 살았고, 살아왔는가.

배려라는 단어를 생각지 못하고

나 멋대로 행동한 적이 많았는가.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이번 1년만을 놓고 바라본다면

내가 잘못한 것은 없을게다.

저 세 가지를 반드시 지키기 위한

나름의 노력을 한 바 있고, 그것이 어느정도

괜찮았음을 느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다만, 인생 전체를 놓고 바라본다면

내가 잘못한 것은 많을게다.


공부에 대한 태도 또한, 부끄러웠고,

삶에 대한 삶 또한 멋있었다 얘기할 수 없고,

대인관계 또한 원만했다 얘기할 수 없다.


그래. 그것이 잘못된 것.


허나, 그것을 알았다 해도 바뀌는 것은 있는가.

잘못을 인정하고, 앞으로의 선행을 다짐하면,

신은 내게 면죄부를 주었던가.


그것은 아니다. 변한 것은 없다.

그저 부끄러움을 깨달은지 얼마 안 된 자가 이 글 위에,

있을 뿐이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수능을 봤고, 눈이 나렸고, 그 눈에 의해

흔들린 이들은 또 다시 내년을 기약할 게다.

흔들리지 않은 이들은 그 자리에서 아리따운 싹을 피우려 들게다.


성적표가 나올 테고, 그를 돌려보는 모교의 교사들은

각자의 사상에 따라 내가 성공했다는 파와 실패했다는 파로

갈릴 게다. 더불어, 내 점수로 갈 수 있는 대학과 학과 또한 이미 예정되어 있다. 


애매하고도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1년을 나름의 뜻대로 살아온 자의 실패는

아이러니 하게도 그 자신 때문이라는 것.

또, 그런 충격 속에서 변한 것은 없다는 것.

흘러간다는 것. 흘러가되, 그를 철저히 막을 수 없다는 것.


손해가 맞다. ‘그건 그렇다’고 얘기할 것이 아니라,

당연히 그렇다고 얘기했어야 했다.


누구의 이득도 없지 않는가.

누구의 행복도 이 곳에서 찾을 수 없었지 않는가.

제레미 벤담은 반드시 그렇게 얘기해야만 한다.


그래서 광고글에 주목할 수 밖에 없었을 게다.


손해임을 이미 인정하고 있으니까.

정확히는 직관하고 있으니까.


헌데, 그 광고글을 보며 느껴지는, 나도 모르는,

안일함 따위가 있었다.


-희망을 안다.

-희망으로 안다.


‘그거면 됐다.’


재수 생활에서 나는 온전히 나와 함께 했음을 고백한다.


철저히 홀로되어 외로울 제,

내 벗은 플라타너스도, 사귀던 연인도, 스타 강사도 아닌

그저 나였다.


울고 싶다 했을 때, 울게 내버려 뒀다.

웃고 싶다 했을 때, 웃게 내버려 뒀다.

-물론 독서실에서는 참긴 참았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했을 때, 그렇게 하도록 했다.


내 자신이 내 자신에게 관대해서가 아니라,

그것마저 하지 못하면 차가운 현실에 그 친구가

금새 주저 앉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친했고, 서로에게 희망을 줄 시간을

잘 만들곤 했다. 


지하철을 탈 때나, 어두운 거리를 거닐 때나,

시끌벅적한 술주정뱅이와 대비되는 호젓한 나를

보고 씁쓸해질 때나.


항상 함께였고, 항상 함께였기에 ‘혼자’였던 것.


그 ‘혼자 있음’에 딴지를 거는 그 누구도

용서치 않았다. 


그 ‘혼자 있음’에 잣대를 들이대며

욕하는 이도 용서하지 않았다.

설령, 그것이 부모라도 납득하지 않았다.


나만이 갈 수 있는 고독의 길이었고,

나만이 가야하는 고독의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곳에서 얻은 것은?

결국 온전한 나 자신 하나.

그것이 내가 느낀 안일함의 원천인 것.

끝내 길을 걸어왔고, 끝내 그 길을 확장시켰다.

‘대학’이라는 길로. ‘온전한 삶’이라는 길로.


‘그거면 됐다.’


그래. 희망을 안았었던 것.

나 자신 그 자체를 안았었던 것.


그럼 이제는?

이제는, 희망을 안았던 그를, 희망으로 안아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일 게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차가운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변했던

것. 나 자신 그 자체. 


그것을 보며, 희망으로 안아주는 것.


다음 기회를 만들었으니, 그 기회를

온전함과 함께 할 수 있으니, 막역한 사이의 타인이

내 생활을 ‘손해’라 일컬어도, 그것을 듣고 보며,

나를 성찰할 때에, ‘이득’이라고 느낄 수 있는

내 자신이 되는 것. 


광고글을 보고 나서,

대치러셀의 출강 강사진이 쓰여진

문자 메세지를 보고 혐오감이 드는 것은,

아마도 이미 온전함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일게다.




기별도 안 가는 음식을 먹고,

이별을 하며 별의를 도모하고,

황망한 기적 속에서 기적을 거부하고 정도를 추구한

모든 이들에게 경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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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쁘띠옒 · 848974 · 18/12/02 22:23 · MS 2018

    그동안 진짜 고생했어요!!ㅎㅎ 이젠 그 마음으로 잘 살면 되는거져뭐

  • 칫챗팅. · 814079 · 18/12/02 22:24 · MS 2018

    공주님 심.멘께 영향 받으셨는지 ~라는 것. 이 어투 애용하시는 거 넘나 졸귀라는 것.

  • 의대나야나 · 791785 · 18/12/02 22:27 · MS 2017

    님 오르비 작가에요??

  • 한영롱 · 736368 · 18/12/02 23:11 · MS 2017

    제가 재수할땐 화폐가치도 있고 하여 비용이 절반쯤 되었습니다만, 저는 재수하고 살면서 처음으로 수능1등급 받고도 인서울도 못했습니다. 당연히 그때는 저도 스스로가 부끄럽고 왜 남들 안간다는 대학도 나는 못 붙는거지... 죽을까... 하는 생각도 하곤 했어요. 그래도 지금은 아 그땐 그랬지 참ㅎㅎ 하면서 잘 지내요. 대학 졸업도 했고. 이게 물론 눈알다신 분들께는 인서울도 못한 미천한 인생일 수는 있겠으나... 저는 공주님이 하던대로 잘 해오셨고 최선의 결과를 내신거라고 생각해요. 너무 자책하지 않으셨으면 좋겠고, 지친 스스로에게 고생했다고 해줘도 될것 같아요. 저는 수능 끝나고 대학 입학할때까지 3개월 내내 밤새도록 게임하고 낮에 자고 했는걸요 ㅎㅎ 수고 많으셨어요 공주님. 잘 되실거에요. 쓰담쓰담.

  • ✨왕후✨ · 541907 · 18/12/02 23:24 · MS 2014

    친근한 형 같았어요 ㅜㅜ
    소중한 말 한 마디 잘 새겨들었습니다.
    앞으로의 삶이 더 윤택해지도록 더 열심히
    놀고 더 열심히 공부할 거에요!

    따뜻한 얘기 너무 감사드립니다 ><
  • 필연 · 720698 · 18/12/02 23:12 · MS 2016

    혐오감이 드는 것이
    온전함을 갖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혐오감을 갖고 있기 때문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

  • 공영민파오후 · 822961 · 18/12/03 16:13 · MS 2018

    저랑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아왔고,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분인듯. 뭘 하든 튼튼하게 버텨내실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