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망친 2010년 11월의 나에게.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19240570
수능을 망친 2010년 11월의 나에게.
1.
청소년사범아! 요즘 힘들지 많이?
그 점수가 네가 수능에서 받을 점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 점수로 가고 싶은 대학 가기 힘들 게 뻔해서, 힘들지?
2.
'죽고싶다'고도 생각했지..?
근데 있잖아
사실 너는 죽고싶은 게 아니라 그냥 딱히 왜 사는지 모르겠는 거야
목표와 방향을 잃고, 앞으로 어떻게 할 지 모르겠는 거,
그건 죽고싶은 것과는 조금 다르지.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해. 네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3.
그래서 너한테 지금 내 말이 귀에 안 들리겠지만 인터스텔라에서 열심히 외쳐보듯 간절히 말할게.
혹시라도 나중에 내 말이 들릴 수도 있으니까 스크랩이라도 해두고,
기억에서 다시 떠오른다면 꼭 다시 와서 보렴.
4.
패기있게 정시파이터였던 너는 논술 쓴 곳도 1곳밖에는 없었지..ㅋㅋ
상황이 별로 희망적이지 않다는 거 나도 알아.
그래도!!
그 한 곳이라도!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고 보렴.
싸우기도 전에 미리 지는 것은 정말 아니야...
5.
논술마저 끝나면 넌 진짜 할 수 있는 게 다 끝난 거야.
전혀, 기쁘지, 않겠지만,
네가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없단다.
6.
수능 성적표 나올 때까지 친구들하고 재밌게 놀아.
혼자 놀아도 좋고.
그리고말야
수능 성적표 나오면 죽이되든 밥이되든 원서영역 공부해서 원서 넣어.
원서영역 공부까지 짜증난다는 거 알아.
그래도 만약에 네가 재수하면
그 공부가 도움이 돼.
좀 재수없는 이야긴데말야
이번에 만약에 그냥 원서 던지면
그리고 재수때 또다시 수능 망치면,
사실상 '처음' 해보는 원서영역 앞에서 막막해진단다.
나는 그랬어...ㅎㅎㅎ
7.
앞서 말했듯,
논술 보고 수능 성적표 나올 때까지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그래, 다 괜찮은데ㅡ
절대 혼자서 수능 곱씹으면서 인생 다 끝난 것마냥 미친듯이 우울해하지만 마.
그거 나쁜 습관이고,
모든 나쁜 습관들이 그러하듯, 꽤 오래 간다?
되게되게 안 좋아.
8.
너, 내가 7번처럼 말해도 안 지킬 거 다 알아 ㅎㅎ
너의 실패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거 알아...
기운내라는 내 말이 통하지 않을 거란 거 알아.
9.
그치만, 강해져.
돌이켜보면 그 시간, 참 아깝다.
쿨하게 훌훌 털고
우뚝 다시 일어서렴.
10.
사실 나는 그 이후로도 큰 삶의 시련을 몇 번 겪었단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치만, 지나가면 그것들 모두 다 작게 보여.
그 당시에는 정말 거대해서 숨이 턱 막히고 왜사나 싶을 정도로 힘들지만,
나중엔 다 작게 보인다고.
믿어봐.
11.
확실한 건, 지금 당장은 힘들다는 거.
그리고
그걸 어쩔 수는 없다는 거.
12.
다만, 나는 너보다 좀 더 늙어서,
어떻게 하면 그 문제가 조금은 작게 보이게 되고,
네가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는지 조금은 노하우를 알고 있어.
프로 실패러(?)의 팁을 믿어봐.
그게 뭐냐면...
13.
너 지금 스스로가 불효자라고 생각하잖아...?
불효 좀만 더 해.
제정신이냐고? 응 제정신이야~
원래 큰 불효에서 작은 불효 조금 더해도 티 크게 안 나 ㅋㅋㅋㅋ...
14.
부모님께 돈을 타서 당장 운동 등록해.
근데
이 시점에서 네가 그런 행동 하면, 오히려 부모님께 효도다?
뭔말인진 해보면 알거야.
15.
너란 인간, 집에서 공부하기 참 힘들었잖아. 집중도 안 되고.
그래서 학원도 가고 독서실도 굳이 돈 내서 갔잖아.
그니까 운동도 조금 강제성을 부여하자 이거야.
땀흘리는 운동을,
어디 도장이라도 등록해서 하도록 해. 꼭.
16.
헬스도 좋고, 누군가와 같이 하는 운동도 좋아.
중요한 건 거기에 몰입할 수 있고, 땀 흘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
17.
이게 100% 효과가 있다고 보장은 못해.
그치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널 구원해줄 수 있고,
그게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아픔은 지나가 있어.
적어도 힘들 때, 이것만큼 내게 효과적인 것은 없더라.
18.
운동이든, 다른 것이든 네가 몰입할 새로운 것을 찾아.
사실 몇달 후에 정신차리고 시작하는 거 아는데,
난 그 시기가 좀 더 빨랐으면 좋겠구나.
그래서 이렇게 오지랖을 부려봤어.
19.
입시에 미련이 남는다면 재수를 할 수도 있겠지.
20.
지금의 너에게는, 많은 가능세계가 존재해.
나는 그 가능세계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고
하나를 선택하고...
그렇게 수천만 가지의 선택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어.
21.
지금 너의 눈에 보면,
결국 재수도 하고,
결국 원하던 대학에도 가지 못하고,
결국 방황하다 군대에서 폭삭 늙고, ㅎㅎㅎㅎ
결국 인간관계도 힘들어하고,
결국 네가 계획한 큼직한 일들이 모조리 실패한,
그런 가능세계만을 걸어온 내가
나중에 너의 현실세계가 될까봐 숨이 턱 막힐 수 있겠구나.
22.
청소년사범아! 그치만!
지금 나에게 인생 롤백 버튼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코 그 버튼을 누르지 않게 할 만큼
사이사이에 괜찮은 일들도 참 많았단다.
23.
네가 날 정신승리자로 여겨도 상관 없지만,
정말 많은 분들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그 괜찮은 일들 있지?
실패의 아픔을, 잘못된 선택의 고통을 느껴보지 않았더라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거라 생각해.
24.
원래 인간은말야
알면서도 실수하고
했던 실수 똑같이 또 하고
그러면서 배우는 거야.
간혹 처음부터 똑똑하고 실수 안 하는 사람도 네 눈에 보일 수도 있어.
정말 완벽에 가까운 0.000000001%의인간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네가 모르는 그 사람만의 고민이 있을 거야.
인간 사는 게 그렇더라~ㅋㅋㅋ 고만고만해.
너무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을 찾아.
나 되게 다 산 것처럼 얘기하네... 극혐이다ㅋㅋ
25.
그런 의미에서 너는,
앞으로 다음 구절을 참 좋아하게 될 거야.
26.
Don't bother just to be better than your comtemporaries or predecessors,
"Try to be better than yourself."
또 실수해도 괜찮아.
네가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믿음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어.
그리고 그렇게 일어난 너는 더 나은 사람이 될 거야.
남들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전의 너보다 나은 사람인 것은 확실하고,
'내가 적어도 전보단 나아졌다'는 소소안 위안이
앞으로 계속 살아갈 힘을 줄 거야.
그니까, 희망을 가져도 좋아.
27.
지금 힘내기 참 어렵겠지만, 힘 내!
논술 잘 하고!
원서영역도 포기하지 말고! 그 해 빵구 뚫렸다~^^ 폭발도 많이 일어났고!ㅋㅋ
혹시 알아? 잘 풀릴지.
28.
아, 참고로 난 재수했는데도 망했어!
만약에 네가 내 말이 들리고 뭔갈 좀 알아먹었다면
역시 뒷북이지만, 학생들 가르치며 느낀, 재수 망하지 않는 방법들 이야기해줄게.
참 무책임하지만
내가 선생으로서 학생들 100% 성공은 못 시켜도
이러면 재수든 N수든 열에 아홉은 수능 실패한다는 말은 자신있게 해줄 수 있어.
그게 뭐냐면,
0 XDK (+20)
-
10
-
10
-
10만덕 받을사람? 12
ㅁㄱ
-
약력 지금까지 수능 현역 망 언미영물1화1 재수 망 언미영지1물2 삼(반)수 망...
-
풀고있는데 생각보다 엄청 어렵진않아서...
-
언제부터 공부 시작하실 계획이신가요?
-
반수나 그런 건 이해하겠는데 대학 멀쩡히 다니고 입시랑 거리가 먼 사람은 오르비하는...
-
팜하니 닉 복귀를 위해 귀찮아도 한번씩 주고 가세요
-
오늘의 저녁
-
공부잘하고싶어요 1
-
이제 술못마셔요 살려주세요.
-
만약 있으면 정말 감사합니다
-
적당한 열등감은 내가 노력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되는데 저런거는 내가 아무리 평생을...
-
훈련소때 2
구두약 주머니에 넣은거 까먹고 세탁기 돌려서 욕 개쳐먹고 수료식 전날 애들하고...
-
이름: 신정환 전 남자입니다 ^^
-
국어수학1등급맞고고민하는게효율적이려나
-
. 1
-
의반이 탐구는 몰라도 국수 등급컷에 영향을 미치긴 힘들지 않을까 10
의반 아무리 많아도 5천명 이하일 것 같아가지고
-
덕코를 모으며.
-
저 기만해봄 5
테니스 선출 이였음
-
지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네
-
잠실쪽 일반고 4
이과로 서성한 이상 가려면 전교에서 몇등정도해야하나요?
-
나도기만좀해봄 5
테1무팜랜드해서2000원벌었어요
-
도수 모르고 먹었다가 힘들었음..
-
수능공부는 진짜 6
엉덩이 싸움인듯
-
선배님들의 고견을 정말 부탁드립니다!! 정시 최종 예비5번으로 떨어졌는데요 그 과에...
-
문과 가는데 수학을 왜 봐요? 에 대한 교수님의 답변 13
문과 가는데 수학과목을 왜 해야 하냐는 것에 대한 문과 교수님의 답변. 그 과목...
-
군대 특 2
지능이 실시간으로 떨어지고 있는걸 실감함 ㅋㅋㅋ
-
인생 3
몇살때부터 즐거워지나요? 스무살인데 우울하네요
-
저도 남친생겼어요 22
작년 11월 14일부터 사귀게 된 친구인데 귀엽져 ㅎㅎ
-
혼자서 꼭 못풀어도 이해되면 충분? 제발 그렇다고 말해줘라
-
맥주도 취하나 5
살짝 어지러워지려 하네 흠
-
현역 수시로 최저 3합6만 맞춰서 서강경제 성대 글제 합격하고 다녔는데 아쉬움이...
-
그… 유빈이라고… 항상 같이 공부하는 친구 있어요 ㅎㅎ
-
학교에서 화학물질을 너무 만져서 그런가 지능이 떨어진 것 같음 수능 공부를 하기...
-
학군지때매
-
다 비켜라 1
인초상은 내꺼임 ㅇㅇ
-
역시 강원도 쵝오~~~
-
흐흐
-
웹툰 병맛인데 꿀잼ㅋㅋㅋㅋ
-
주식 ㅇㅈ 12
외화 유출 ㅇㅈ ㅅㅂ
-
올해는 대학가야되니까 공부를 해볼게요
-
나같은 괴물이 나오지 않앗을것.
-
현실에선 쭈뼛쭈뼛 아무 말도 못하고 주눅들어있는 개찐따들이 여기서라도 날개 피고...
-
명언 투척 4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내일도 할 수 있다!"
-
대학에서 수학을 많이 보는 이유가 뭘까요 사고력측면에서 제일 중요해서? 변별해야해서?
-
아이돌 연습생 출신 오르비언이라도 있는 거임?
-
소독의 개념
-
챗지피티사야되네 6
연간결제 ㅅㅂ
-
물론 누백 일대일 대응이 의미는 없겠지만 올해 기준 연고대 고려대 학부 통계 정외...
-
상대적 박탈감 유발
어느새 청자는 바뀌어버림 진심어린 충고로 받고 열심히 살게요
가능세계!
힘내요.
수능보고 울적했는데 이 글 보고 기분나아졌어요 고맙습니다
좋은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