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주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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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많았다.
24시간 중 14시간을 독서실이라는 집에서 살았고,
24시간 중 10시간을 왕십리 어느 한 투룸에서 살았고,
한 달 720시간 중 72시간을 대전의 어느 아파트에서 살았다.
그 집들에는, 각각 다른 이들이 모여 살았다.
-첫 번째 집에서
귀하고 또 귀한, 청춘을 '수능'에 바치기로 작정한,
어리석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누구보다도 위대한
사람들이 그 곳에 살고 있었다.
'살아있음'을 '침묵'으로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제각기 다른 사연으로, 제각기 다른 고독의 아픔을
꿋꿋이 버티고 있었던 것.
어떤 사연을 가지고, 이 1년을 그렇게 아프게 보내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언제쯤 우냐고, 묻고 싶었다.
요즘 삶을 살아가면서, 바늘처럼 당신을 찌르는 아픔은
무어냐고 묻고 싶었다.
당신에게 있어, 지금의 시기란 무어냐고도
묻고 싶었다.
허나, '침묵'은 그 집에서 사는 것에 대한 암묵적 동의였기에,
나 또한 '침묵'을 지키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
이내 슬퍼지곤 하였다.
이 집을 떠날 때, 그네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지 못한 채
조용히, 나 홀로, 떠나야 하는 것 또한, 그 집의
규율이었기 때문이다.
그 슬픔에 맞서,
완벽한 타인도 아니고, 완벽한 지인도 아닌,
애매한 타인으로 내 기억 속에 그들을 새기리란
아픔에 익숙해지기로 하였다.
다만, 언젠가는 지워지리라며,
나 자신에게 끝없는 최면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는, 익숙해질 수가 없었던 것.
어느덧, '이웃'들과 작별하게 되었다.
얘기 한 마디도 없이, '침묵'을 풀 겨를없이.
그저, 마음 속으로 눈물의 톳밥으로 그 집의
온기를 붉히며 떠났다.
적응해보기로 한 못난 결심이 끝내,
나를 처참히 짓밟아버린 게다.
-두 번째 집에서
한 사내가 살고 있었다.
2014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국어 98 수학100 영어100 경제48 한국지리50
그는 그렇게 갈망했던 'SKY'에 차석으로 합격했다.
세계를 무대로 거닐겠다는 다짐으로, 큰 지구본을 사게된 것.
허나, '대학'에서의 생활이 그에게는 낯설었다.
자신이 선택한 대학에서, 그가 가진 '이념'을 알아낼 수
없었기에, 또 그를 면밀히 탐구하지 못하였기에,
'학문'이라는 것을 놓아버린 게다.
큰 지구본이 있지만, 어디메가 '아시아' 대륙이고,
어디메가 '아프리카' 대륙인지, 구분할 수는 없었던 것.
다만, 타인들이 이 곳이 '아시아'라고 찍어준 좌표를
따라 -그에 대한 의심없이- 낯설음을 익숙함으로
바꿔보고자 노력해왔던 것.
그는 내게 무서운 존재였다.
밤마다 내가 들어오면, 자신의 그 고난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내게 풀어버리었던 것.
나의 인격을 철저하게 부정했던 그였던 것.
그래서, 하루 10시간을 보내는 이 집에서,
나는 '명식'처럼 가면을 쓸 수 밖에 없었다.
페르소나(persona)를 위한 저항을 꿈 꾸기란
쉽지 않았던 공간이었고, 그림자(shadow)를 만들어
숨기에 매우 적당한 공간이었다.
시집을 읽는 것을 좋아했지만,
무서운 그 앞에서, 김광균의 을
제대로 낭독하기란 쉽지 않았다.
책 속에는 아리따운 회화가 글로 그려져 있지만,
이 집 안에는 차가운 암흑이 내 망막에 서리어 있었으므로.
그래서 끝내, 시집 대신, '가면'을 택했던 게다.
고민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 '이웃'과 토론하기 보다는,
아무런 고민없는 청년처럼 보이기 위해, 대중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드라마' 시청을 택했던 게다.
-세 번째 집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아버지는 경제학 박사이고, 수능을 출제하셨다.
어머니는 '카프 문학'을 전공한 교수다.
처음 둘이 만나서 결혼을 했을 때는,
참 기가 막혔다고 한다.
바퀴벌레와 하루살이들이 가득한
13평 집에서 살았다는 것.
허나, 사랑의 힘이 큰 덕분이었는지,
지금은 한 달에 일정수입이 나오는 건물을 갖게 된
'건물주'들이 되었다는 것.
그 돈으로, 나를 키웠다는 것.
그 돈으로, 대치동 사교육비를 감당했다는 것.
그 집에 있을 때는, 그 고마운 생각들이 스쳐지나가면서,
그네들이 내 부모여서, 영광이고 또 영광이란
생각을 자주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요새, 단 둘이
여행을 가신다고 한다.
휴일 때가 되면, 같이 골프를 치기도 한다고 한다.
아버지는
평일에는 경제, 역사, 사회에 관해 다루는
책을 읽으며 대학 수업 준비를 하고 계시고,
어머니는
평일에는 구피의 밥을 주며
집안일을 재미있게 하고 계신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나의 부모가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생각에
남 몰래 '동기부여'를 받고는 했다.
그래서, 그 집에 있을 때는
강남역의 죽은 거리와는 비교도 안 될
좋은 기운들이 내게 오고 있음을 느끼지 않으면
안되었다.
-삼주기행
세 개의 집에서 살아왔던 것.
어떤 집에서든, 그 공간에서 만큼은
내가 온전한 나로 남기를 바랐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그렇지 못한 삶을 살았음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조금 더 나은 '이웃'으로 남았을 수는 없던 것인가.
그런 생각에, 오늘도 보잘 것 없는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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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후배 사진 유출할순 없으니 잡담태그로 제 얼굴이나 올릴게요 ㅎ. ㅈㅅ
생각보다 장수생이시네요ㄷㄷ
꺼내기엔 아플 수도 있는 말들을 해줘서 고마워요
언제나 응원합니다 오롯이 정착할 수 있는 당신만의 집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길.

그동안 읽은 글 중에 제일 와닿았어요... 역시 공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