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입시에 지쳐가는 당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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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형, 만약에 형이 군대를 다시 가야하거나 재수를 다시 해야 한다면 뭘 선택할래?”
이 질문에 대한 내 답은 “둘 중 하나를 고를 수밖에 없다면, 난 재 입대할래.” 이다. 누군가는 나한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아 형, 군 생활할만했나 보네?” 라고. 군대를 다녀온 대한민국 남자라면 알겠지만, 그 누구도 어떤 군대를 가더라도 소위 말하는 ‘꿀 보직’에서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더라도 절대 군 생활을 다시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나 또한 그렇다. 혹여나 내가 군 생활을 편하게 보냈다 할지언정(실제로는 마냥 그렇지도 않다.) 저 두 선택지 중 재 입대를 선택한다는 것은, 군 생활을 다시 한 번 하는 것도 끔찍하지만 그것보다 더 끔찍한 것은 재수생활이었다는 의미이다.
내 재수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모든 내용들을 온라인에 공개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내 재수생활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니 25년간 살아오면서 적어도 지금 까지는 내 인생에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고.
그 시절의 기억은 아직도 나에게 생생하다. 2011년 2월 16일 처음으로 강남 xx학원 재수 종합 반에 들어갔던 날.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웠다. 내가 배정받은 반은 0X반. 화장실 복도 끝 구석에 있던 강의실로 들어가 중간 즈음에 자리를 잡고 새로운 시작을 철없이 기다렸다. 철이 없었기에 설레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내 옆자리에 앉았던 학생에게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감상에 빠졌던 순간은20분이 채 되지도 않았다. 담임이라는 직책을 맡았던 강사가 문을 열고 터벅터벅 들어와서 말했던 첫마디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너네는 작년 입시에서 실패했고, 벌써 또래에 비해 1년이나 뒤쳐진 존재들이다.
1년간의 노력이 이를 따라잡기 위한 1년이 되길 바란다.”
큰 충격을 받았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어서 충격을 받은 것이 아니다. 나도 내가 왜 그 자리에 있어야 했는지를 몰랐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약해질 대로 약해진 존재였고, 당시에 나는 누군가 위처럼 자극적인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상처를 받을 대로 받은 상태였다.
물론 저 한 마디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약간의 트라우마도 생긴 것 같았다.
그 이후 항상 이런 생각들이 나와 함께 했다.
‘나는 남들에 비해 뒤쳐져있어.’
‘내가 지금 공부하지 않으면 또다시 뒤쳐지게 될 거야.’
‘왜 나는 똑같이 열심히 했는데 실패했을까.’
‘나는 안 될 사람인가.’
사실, 나는 독학 재수생이다. 앞에서 언급한 강남 xx학원은 1달을 채우고, 그 이후 남은 기간은 스스로 독학을 통해 공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수를 처음 시작했을 때 들은 저 첫 한마디는 내 1년간 재수생활 동안 함께한 내 사고방식이 되어버렸다.
너무 피곤해 졸음을 참지 못하고 잠들었을 때 나는 나를 자책했다. 누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공부하고 있을 건데, 또 뒤쳐지고 싶냐며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모의고사를 잘 본 날에는 기분이 좋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순간도 잠시일 뿐, 몇 시간 뒤에는 굉장히 자조적이게 되어버렸다. 그러면 뭐해 작년에 합격하지 못한 사실은 그대로인데 라고 생각하면서. 모의고사를 못 본 날? 그 날은 최악의 날이다. 남들에게 티 내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에 나는 스스로 모든 스트레스를 감당해낼 역량은 없었던 것 같다. 스스로를 자책하며, 괴로움에 시달렸다. 모의고사를 예상보다 못 본 날, 편하게 잠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공부를 하는 1년간 항상 강박에 시달렸다. 온전한 공부만을 위해서 에너지를 소모했어야만 하는데,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위해서 에너지를 소모하는 경우도 많았다. 가끔 정말 힘든 날에는 트레이닝 복 차림으로 휘문고 앞 편의점에서 커피 한 잔을 사서 운동장을 아무 생각 없이 돌기만 했다.
이 정도만 얘기를 해도, 앞서 내가 받은 질문에 대해 내가 한 답이 납득되지 않을까 싶다. 군대라는 상황은 물론 고통스러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스스로에 대한 불신, 이로 인한 강박적인 스트레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군대에 입대할 시절은 내가 대학교에 입학 후 어느 정도 자신감을 되찾던 시기였으니 이러한 문제가 조금은 해결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재수 시절의 기억은 아직도 나에게 좋게 다가오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다 추억이 된다고 한다던데, 아직은 추억이 될 만큼 시간이 많이 지난 것 같지는 않다.
이 정도면, 재수를 하지 않은 사람도 재수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 예시는 정말로 개인적인 ‘나’만의 생각이라 일반화하긴 어렵다. 누군가는 재수 생활이 재미있었다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재수생이 그럴 것이다. 1년이라는 기간 동안 입시라는 시스템 속으로 한 번 더 들어가는 상황 자체가 충분히 자신에 대한 신뢰나 믿음을 잃게 만들 만큼 압박적이다. 재수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을 한 번 달성하지 못했기에, 실패라는 아픈 상처를 가지고 다시 한 번 극복하고자 시도하는 사람들이다. 용기 있는 결단력을 내렸고, 자신의 소중한 20살 청춘의 시간을 포기해가며 미래를 위해 정진하는 멋진 모습으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면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이라는 괴물과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 존재들이 재수생이다. 재수생들은 정말로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그럼 왜 이런 글을 쓰는가. 지금까지 글을 읽은 사람들은 의아해할 것이다. 글의 의도는 분명 재수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쓴 글인 것 같은데 왜 자신의 힘들었던 경험만을 이렇게 길게 나열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다. 내 재수생활은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기억이고, 정말로 내 인생에서 스스로에 대한 불신과 자괴감이 가득 찼었던 시기라고. 그리고 부탁하고 싶다. 여러분들은 그런 재수생활을 보내시지 말라고.
대학에 입학한지 햇수로 5년 차가 되었다. 그 사이에 나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내가 대학에 입학 당시 고민했던 진로가 바뀌었다. 물론 남자라면 다녀와야 하는 군복무의 의무도 충실히 수행했고, 5년간 정말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고 성장했다. 당시에는 별거라고 생각했던 고민들이 사실 지금이 되니 아무것도 아닌 고민들이 되어버렸고.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기회들이 어렴풋이 보이기도 하며, 내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에 대해서 목표로 삼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나 자신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넘쳐난다. 예전에는 내면에 있었던 불안이나, 부족함, 스스로에 대한 불신을 숨기고자 겉으로는 소위 말하는 ‘허세’도 부렸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으려고 노력하고도 있다.
그래서 지금 돌이켜보면, 내 재수생활은 참 별로였던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때는 왜 그렇게 스스로를 믿지 못했을까, 왜 스스로를 그렇게 자책했던 것일까. 내 노력이 부족했나, 내 머리가 멍청한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에게로 탓을 돌렸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내가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충분히 내가 이뤄내고 싶은 것들을 노력으로 얻어낼 수 있는 역량이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시절 그렇게 자책하면서 시기를 보내지 않았어도 충분히 성취가 가능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사실 왜 지금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하지만, 이에 대한 얘기는 잠시 접어두고 싶다. 나의 재미없는 이야기보다 여러분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강조하고 싶다. 오늘은 2016년 2월 12일이다. 내가 2011년 2월 16일에 재수를 시작했으니 그때와 비슷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재수생활을 시작하는 여러분들이 나와 같은 상황이라고 상상하고, 나와 같은 여러분들이 강의실에 앉아 재수의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여러분들은 실패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외부적인 시선에 신경 쓰지 마세요. 오직 여러분들을 위해서만 시간을 사용하세요. 여러분들은 충분히 잘났고, 잘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재수를 위해 사용하는 1년은 남을 ‘따라잡기’ 위한 1년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부족함을 매우고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시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2016년 2월 12일
입시에 재도전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마지막 날자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위 글은 재작년에 썼던 글입니다. 진심을 담아 쓴 글이라 다른 분들께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다시 올려 보게 되었습니다. 오르비에서는 재업하는 글인데요. 도움 되시면 좋아요라도 하나 부탁드립니다. 도움 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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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이 차라리 군대를 대신 간다니 ㅠㅠㅠ
대단하시네요. 저는 진짜 다시는 못가요
ㅠㅠ...
사실 군대가 할 만한거임.
글쓴이가 입대했을 2010년대 초중반은 여전히 좃같았는데,
2017년 기점으로 똥별들 갈려나가고, 국방개혁 2.0과 선진병영 강한육군 붐빠붐빠하면서 엄청 편해짐.
논산에 에어컨 있으니 말 다했지.
2년전 고3때저걸보고감명받았는데..
2년후지금은 아직도보고있는 제가 참 씁쓸하네요
2월이 아닌 10월에 보고있는나는 .... fail
진정성이 느껴지는 글..ㅜㅡㅜ
제가 1년 더 재수할테니 저 대신 군대 좀 가주실래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