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이 아닌 날숨을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17267988
1.
힐끗,
방에서 거실로 나가다보면
식탁 위에 아침이면 하나씩 올라와있는
어머니의 사랑.
사실은, 친할머니의 사랑에
어머니의 사랑이 더해진 것이라 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홍삼이라고 부른다.
포도즙처럼 팩형으로 되어있는 홍삼.
2.
오늘도,
딱히 잘못한 것은 없지만
네 개의 모난 부분 중 하나라는 이유로
한 쪽 귀퉁이를 가위로 자른다.
쭈욱~ 들이킨다.
쪼옥~ 빨아들인다.
후우! 바람을 불어넣는 순간,
3.
선생님도 재수하셨나요?
네, 재수했어요.
힘들 땐 어떻게 하셨나요?
힘들 때 쉴 수 있는 어떤 것을 정해놓으면
몸이 안 힘들어도 될 때 힘들어 하더라구요.
그래서.. 조금 독하지만 힘들 때도 그냥 공부했답니다.
그러면 몸이
‘얘는 내가 힘들다 해도 그냥 하는구나’해서
안 힘들어 했어요.
매번 느끼는 거지만
배울 점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존경합니다.
아직 부족한 사람입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4.
순간, 열흘 정도 된 일이 떠올랐다.
내 말대로, 부족한 사람이
부족한 조언을 하고 말았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질문에 정확히 부합하는 대답이었다.
“어떻게 해야하나요?”가 아닌
“어떻게 하셨나요?”였기에.
하지만, ‘어떻게 해야하나요?’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으면 어떨까?
“존경합니다”라는 나에게 과분한 말을 듣고
그 과분함을 즐기고 만 것은 아닐까?
5.
투우장 한쪽에는 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구역이 있다.
투우사와 싸우다가 지친 소는
자신이 정한 장소로 가서
숨을 고르며 힘을 모은다.
그곳에 있으면 소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소만 아는 그 자리를 스페인어로
퀘렌시아(Querencia)라고 부른다.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이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중-
6.
재수 시절, 나는
나만의 퀘렌시아를 가지고 있었다.
아침마다 어떤 구절을 프스트잇에 써서
겹겹히 쌓아 올리는 것,
매일 2교시 후
건물 앞에 나와 간식을 먹는 것,
점심, 저녁시간에는 줄넘기를 하고,
건물 주위를 도는 것,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시간들이다.
아침마다 계획표에 적는 것만으로도
나를 충전시켜주었던 시간들이다.
그래서 나는 1년간 산속에 갇혀
매일 10시간 이상씩 공부하는 시간들이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내가 견뎌냈던 그곳은,
나의 작은 퀘렌시아들이 모여 만들어진
하나의 큰 퀘렌시아였을지도..
7.
선생님도 재수하셨나요?
네, 재수했어요.
힘들 땐 어떻게 하셨나요?
많이 힘들죠?
그럴 수 있어요.
견디지 못할 힘든 때가 오기 전에
자신에게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게 어떨까요?
저는 매일 하루 중간 중간에
그런 시간들이 있었어요.
할 일로 가득한 시간표들 사이에
마음에 드는 구절 따라 적기.
화장실 다녀오기.
간식 먹기.
운동하기.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사소한 것 같지만
그런 계획이 적혀있어 힘이 났어요.
이렇게 한 번 해보실래요?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그리고 너무 힘들 땐,
잠시 숨을 내뱉어요.
한숨이 아닌 날숨을요.
매번 느끼는 거지만
배울 점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존경합니다.
아직 부족한 사람입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8.
오늘도,
딱히 잘못한 것은 없지만
네 개의 모난 부분 중 하나라는 이유로
한 쪽 귀퉁이를 가위로 자른다.
쭈욱~ 들이킨다.
쪼옥~ 빨아들인다.
아직 조금 남았다.
그런데 아무리 빨아들여도
완전히 공기가 빠진 팩에서는
잔여물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내가 원하면 원할수록
나만 숨이 막힌다. 그러다,
후우! 바람을 불어넣는 순간,
쪼르르
깔끔하게 내 입에 흘러들어온다.
그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안녕하세요. 바나나기차입니다.
6평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어떻게 지내시는가요?
1년에 한 번, 제 페북에 이런 글이 올라옵니다.
“공부가 안 되니 공부나 해야겠다.”
허세도 이런 허세가 없죠.
네, 제가 고3 시절에 쓴 글인데
‘몇 년 전 오늘’이라는 명목으로
자꾸 저를 괴롭히네요.
공부한다던 놈이 왜 페북을 켜서
굳이 저런 글을 남겼는지 의문입니다.
(그래서 재수를 했을 수도 있겠군요.)
고3 때는 말로만 그랬는데,
재수 때는 정말 온몸으로 실천했어요.
정신이 제 몸을 지배했던 때이죠.
저는 제가 그 시절 정말 극한의 상황에서
극한의 힘듦을 겪어냈다고 생각하며
나름대로의 자부심을 느끼며 살았는데
알고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네요.
여러분들은 혹시
여러분들의 힘들어 하는 모습을
정신력의 부족,
나약함 또는 나태함이라고만 생각해
자책하고, 괴로워하며
한숨을 내뱉고 있지는 않나요?
만약 그렇다면 한숨 대신에
매일 하루 중간 중간
날숨을 내뱉을 수 있는
그런 시간을 넣어보는 것은 어떤가요?
나만의 퀘렌시아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공기가 다 빠져 숨 막히는 여러분의 일상에
한숨이 아닌 날숨 한 번 내뱉는 건 어떨까요?
가끔 그런 시간 가질 수 있게,
반듯한 생각이 담긴 글로 찾아뵐게요.
그러지 못할 때에는
멀리서라도 조용히 응원할게요.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난 내일 피파만 팔까 14
팀 갖다 팔까
-
공부용으로 기출지문분석 / 해설집기능만들어봤음요 여기서 더 상세하게 모르는거도...
-
진짜 송도 기숙사에서 으챠으챠 팟팟 쭈왑쭈왑 하나요 8
절실합니다 답변 부탁드려요
-
하는 건 농도 100 개잡소리인데 ㅠ 저랑 취향이 같으신듯
-
기철햄 들으면 개씹좆노베여도 3등급까지 떠먹여주는데 ㄹㅇ.. 홍보를 안해서 그런건가
-
Prograssive Examination Analysis for advanced...
-
그냥안아주셈… 23
딴건아무것도필요없음
-
잘자 7
ㅎㅎ
-
근데안되는거암
-
오노추 4
노엘 피처링 너무너무너무 좋고
-
살. . .인 개웃긴거같음
-
님드라! 14
한 며칠정도 과탐만 해보는거 어때! 이거 감 좀 잡고싶어... 맨날 개념도 까먹고..
-
올해 초에 오르비 뒤집었다가 탈릅한사람 아닌가
-
그낭 하루종일 놀아버렸어 얼불춤 좀만 더하다 자야지
-
n제 여러권 추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ㄹㅇ 공부의지 활활
-
얼굴 형이나 하관이 얄쌍한게 외모에 미치는 영향이 큼? V라인이라고하죠
-
어느순간부터 한동훈 방송이 계속 알고리즘아 뜬다 씹 ㅋㅋㅋㅋㅋㅋㅋㅋ
-
미안해ㅠㅠ. . .
-
먼저 자야겠네요 9
잘자요
-
과연 내년에 입학하고서 연뽕이 얼마만에 빠질까.
-
수학 풀이에 관하여 11
자기 맞는 풀이대로 푸세요 다만, 남(주변이든, 강사, 교사 등 선생님이든..)...
-
단과 가면 조교하는 고등학교, 대학 동문들한테 조리돌림 당해서 무서움 ㄹㅇ
-
공부 안하던데 왜 잘하는거지
-
무슨 얘기하는지 모르겠네
-
무슨일 있었는지 쭉 요약해주는 분 500덕 30분까지 제일 상세히 설명해주는 1분께 드림.
-
옛날 유저신가요 1
처음 들어보네요 반응 왤캐 뜨거움
-
시반이 누구여 2
시대반수 줄임말임?
-
다다음주부터 과외만 주 14시간 학원은 주 19시간 빨리 사직서 내야하는데 하아
-
25를 그렇게 내고 26을 불로 안낸단게 말이안ㄷ
-
조용하면 커뮤가 아니긴 해
-
좋다
-
비상교육 교과서에는 아예 없네 원래 직접적으로 언급은 안해도 문제로는 있던데
-
네.. 18
-
오늘 죽은거 3
어제의 나
-
오늘 산거 10
냄새 ㅆㅅㅌㅊ
-
우우
-
뭐냐 악우 갔네 0
연탈프계정은 살아있거늘
-
자라고 욕해줘요 9
왜안잠 얘
-
라면추천좀 10
ㅈㄱㄴ 진짬뽕굴진짬뽕스낵면참깨라면진라면 너무많이먹어서 다른거 먹고싶어요
-
잇올 업키 3
성적 한 과목이라도 오르면 해주는거에요?
-
메인 무슨일임 6
왜 저분은 저격당한거죠
-
2028부터 삼각함수 덧셈정리는 간접범위에도 없음? 3
삼각함수 덧셈정리는 만국 공통으로 고딩때 배우고 들어온다고 가정해서 대학교재...
-
3합 6이상인 대학 지원할거고, 과탐1개 반영대학 지원할예정이어서요 수학...
-
오늘도 0
찬우쌤 강의 듣고 마무리 문학 공부까지 해서 너무 좋다. 찬우쌤 사랑해요. 심찬우
-
쇼츠로 보는데 꿀잼
-
국수영탐 백분위 85 94 2 96 91
-
정시가 바늘구멍 된다는건지 아니면 진짜 없어진다는 것인지?
-
무슨 말을 못하겠다 ㄹㅇ ㅋㅋㅋㅋ
...좋은...글입니다...
힘내요~ 말 이쁘네요, 닉프일치네욥!
위에 언급한 같은 책의 다른 부분에 이런 말이 있어요.
화가 나면 마음의 거리가 멀어져서
그 거리만큼 크게 소리치게 된다.
그러면 더 멀어지게 되고
소리는 더 커지게 된다.
저는 보통 조용히 게시판을 둘러보는 편인데요,
요즘엔 이전과는 다른 모습들이 많이 보여요.
서로가 서로 사이에 한숨 대신 날숨을,
한 박자 쉬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와 글 진짜 잘쓰신다....
좋아요
감사해요
그러나 더 많이 노력할게요!
춫첯 핯곷갗닟닽 잋륯 곷곷 ~~
ㅋㅋㅋㅋ 신종 화법인가요

너무 좋아감사합니다~~!
언제나 위로받고가요~ 바추!
위로가 된다니 다행입니다~!!
무심코 지나칠법한 일들을 이렇게 묘사하시다니....멋있어요.
워낙 생각이 많아서리...

글쓰는사람은 다르네요직업적으로 쓰는 사람은 아니구요ㅜ 그리고 아직 부족합니다! 더 노력해야지요!
매번 느끼는 거지만
배울 점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존경합니다.
그래~ 다시 잘 하고 있지?
제 퀘렌시아는 한번씩 쌤 보는걸로..
ㅌㅋㅋㅋ 그래
이하이 - 한숨
바나나기차 - 날숨
ㅋㅋㅋㅋ 현웃이요ㅋㅋㅌㅋㅋㅋ
감각이 남다르신데요??
3줄요약좀;;
저 고양이처럼 너무 긴장하고 숨막히게 살고 있진 않은지 되돌아보고
자신만의 피난처를 찾아 힘을 얻어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 좋을 것 같다!
라는 뜻입니다. 세 줄 요약하려니 힘드네요..ㅜ
고양이 너무 귀엽네요..
홍삼 먹을 때 진짜 후 불어야 잘나오는데...
그런 사소한 일상을 포착해서 글을 쓰셨네요. 저도 한 발 쉬었다가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많이 생각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글에 공감이 잘 되네요. ㅎㅎ
읽는데 울컥하네요 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