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기차 [477377]

2018-04-25 17:18:46
조회수 8205

나오지 않던 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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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역시의 변두리에 있는 작은 도시.



많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 창문 너머로는 



산, 들 그리고 밭이 더 많이 보이는 곳.



이런 곳에 이사 온 바람에,



쓸 만한 볼펜을 사려면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 앞의 작은 문구점으로 가야한다.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문구점에는 내가 지금 쓸 만한 물건보다는



내가 어릴 적 썼던 물건들이 더 많아 



추억이 담긴 곳이기도 하다.





2.


아무튼 나는 2주 전에 이곳에서 볼펜 하나를 사러 갔다.



2주 전의 또 2주 전에, 그러니까 약 한 달 전에도 



하나 샀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샀던 볼펜은 나오지 않아서 버려버렸다.



그냥 운이 안 좋았거니 하고 다시 사러 간 것이다.



들른 김에 250매짜리 A4용지도 같이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3.

 

젠장.



한 번 당했으면 확인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필통에서 새로 산 펜을 꺼내어 수업 준비를 하려는데



이번에 산 볼펜도 조금 써지더니 나오지 않았다. 



툴툴거리며 다시 펜을 필통에 넣고 샤프를 꺼냈다.



그제서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볼펜은 만들어진지 얼마나 오래 되었을까?





4.


돌이켜보니 수험 생활이 끝나고 나서는 



연필이나 샤프 대신 볼펜을 더 많이 썼던 것 같다.



초등학생들에게 볼펜이란?



‘선생님들이 쓰는 연필’ 정도가 아닐까 싶다.



아직은 수험생이라는 말도 모르는 초등학생들에겐



아직은 많이 서툴러, 썼다 지우고를 반복해야하는



연필이 더 필요할 것이다.





5.


그러면 다시,



이 볼펜은 만들어진지 얼마나 오래 되었을까?



아마도 한참은 되었을 것이다. 



종류마다 스무 개씩은 꼽혀있던 그 많은 볼펜들.



짧게는 1~2년, 길게는 수 년,



개중에는, 다른 펜들과 차이가 없음에도 



단지 운이 없어서 선택받지 못한 채, 



문구점의 역사와 동일한 역사를 써나가는 



그런 펜들도 있을 것이다.



의도치 않게 그런 펜들을 구원해준 것인가..



그럼 보답이라도 해주던지.. 나오지도 않고..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하고 할 일이나 하자.’





6.


어라?!



그러고 나서 며칠 전에 신기한 경험을 했다. 



나오지 않던 볼펜으로 작업을 계속 하고 있던 것이다.



사실, 볼펜이 익숙해진 탓에 나도 모르게



샤프 대신 볼펜을 꺼내 쓰려다가 ‘에잇’하며



다시 넣어두기를 반복 했었다.



그런데 그 날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잘 나오기만 해서



내가 금방 알아차리지도 못한 것이다.





7.


왜 그럴까?



짧은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따뜻함이다.



나는 첫 번째 나오지 않던 펜은 버렸다.



영영 쓰이지 못한 채 버려졌다.



두 번째 나오지 않던 펜은 필통에 넣어 보관했다.



나오지는 않았지만, 조금은 더 따뜻한 곳에.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만약, 필통이 원인이 아니라면?



매번 쓰려는 시도를 하며 따뜻하게 쥐었던 손이리라. 



그것도 아니라면?



뭐 어떤가, 나는 그냥 이렇게 생각하련다.







안녕하세요. 바나나기차입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리네요.





우리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우리라 하기 이전에



저도, 한 때 나오지 않던 펜이었습니다.



모의고사를 쳐도 어느 순간부터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았고 결국, 실패했죠.



저는 첫 번째 나오지 않던 펜처럼 버려질 뻔 했습니다. 






그렇지만 다행히, 두 번째 나오지 않던 펜처럼



목표, 그리고 이라는 필통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안에서 



다짐이라는 따뜻함,


노력이라는 따뜻함,


열정이라는 따뜻함을 받아 



여러 번 시도한 끝에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죠.





때로는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서 힘들기도 했었어요.



지금 그런 학생들이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글을 남겨요.



중간고사를 망쳤다거나,


지난 해 수능을 망쳤다거나,


3, 4월 모의고사를 망쳤다거나..



나오지 않는 펜이라 버리지 마세요.



‘아직’ 나오지 않은 펜이니까요.




응원할게요.



글로 따뜻함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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